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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혁백의 퍼스펙티브

미·중 패권 경쟁 때 한국은 미국 선택하는게 합리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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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반도의 선택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지난 3월 5일 리커창 중국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발도상국”이라고 선언했다. 2012년 시진핑 국가주석은 신형 대국을 선언하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여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2018년부터 왕이 외교부장,리 총리와 시 주석은 중국이 아직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면서 몸을 낮추고 미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시진핑의 중국몽이 일장춘몽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 개발도상국론’은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하겠다는 전술적 수사일 뿐이다. 중국은 실제 행동에서는 패권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시진핑은 3월 23일 로마에서 주세페 콘테 총리와 이탈리아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참여에 합의함으로써 일대일로는 실크로드의 종점인 로마에 도달했다.파키스탄 과다르항을 허브로 하는 인도~태평양 ‘진주 목걸이’ 구축을 통해 중동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미국의 대중국 봉쇄호(弧)를 역으로 포위하겠다는 중국의 패권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중국은 미 패권에 도전할만한 #군사력·경제력·기술력 없어 #미·중 패권 경쟁 격화할 때 #한국은 미국 입술 역할 해야

그러나 중국이 당분간 패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이유는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드파워에서 미국은 다른 경쟁국들의 국방비를 합한 것보다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다. 또 전 세계 오대양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대양 해군을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많은 전문가가 2015년에 중국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과는 달리, 현재까지 미국은 넉넉한 차이로 GDP에서 중국을 앞서고 있다. 미국은 종족적·종교적 관용, 멜팅팟으로 불리는 포용력으로 다른 나라를 친구로 만들 수 있는 스티키파워(점성권력·粘性權力)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네트워크 제국이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주(州)간 하이웨이와 공해(AirSea) 하이웨이를 구축하였다. 인터넷을 발명하여 온라인 정보 하이웨이를 열어 3차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열었으며, J.F. 케네디의 ‘달로 간다’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우주 하이웨이 시대를 열고 있다.

지식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스마트 파워에서 미국은 부동의 선두 주자다. 노벨상 수상자, 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SCI)급 과학지 게재, 특허, 연구개발(R&D) 투자에서 미국은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텔은 윈텔(Wintel)제국을 건설하였고,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산업과 할리우드의 콘텐트 산업을 결합하여 실리우드(Sillywood)제국을 구축했다.

덩샤오핑은 후배 지도자들에게 미국 패권에 도전하려는 꿈을 꾸지 말고 ‘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르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백년대계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도광양회는 시진핑의 대국굴기로 끝이 났고, 미·중 패권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신흥 패권 도전국인 아테네에 대한 패권국인 스파르타의 두려움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이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 불렀다. 그러나 미·중 패권 경쟁이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같은 패권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아직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할 만큼 강력한 군사력·경제력·기술력·문화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첫째, 중국은 군사적으로 해·공군이 극히 취약한 ‘세계 최대 군사 개도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진주 목걸이’ 는 미국의 대중국 해양 봉쇄호(弧)를 뚫을 수 없다. 오바마의 ‘아시아로 이동’ 전략과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안보 다이아몬드로 중국을 옥죄는 트럼프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대중국 봉쇄망은 더욱 촘촘하고 두터워지고 있다.

둘째, 에너지 패권 전쟁에서 중국은 압도적 열세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으로 에너지 자급이 가능하지만, 중국은 터키·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 의해 유사시 파이프라인을 차단당할 수 있다.

셋째, 기술력에서 5G를 제외하고는 ICT와 4차 산업혁명 전 분야에서 미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을 압도하고 있다. 2007년 시가총액 기준 5대 기업은 페트로차이나·엑손모빌·GE·차이나모바일·중국공상은행이었는데 2017년에는 모두 미국 기업인 애플·알파넷·MS·아마존·페이스북으로 바뀌었다. 이는 중국이 아직 3차 산업혁명 시기에 머물러 있는 ‘개도국’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술 기업은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이다. 이 때문에 미국을 ‘FAANG 제국’ 또는 ‘실리콘 스테이츠’라고 부른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저서 『중국 이야기』에서 미국과 중국의 승리지상주의자들을 비판하고 미·중이 협력과 공진(共進·co-evolution))할 것을 권고했다. 키신저의 공진론은 현실주의 이론으로 1815년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유럽협력체제(Concert of Europe)에서 적용되었던 강대국주의(plurilateralism)에 기초하고 있다. 키신저는 미·중 수교를 위해 대만을 희생한 것처럼, 미·중 협조체제를 위해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한국의 안보 이익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북한이 취해야 할 전략적 선택은 무엇일까.

첫째, 미국과 중국에서 승리지상주의자들이 득세하면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미·중이 각각 남한과 북한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하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할 것이다. 이 경우 한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 전략을 채택하여 단독 또는 북한과 공동으로 미국의 ‘입술’이 돼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에 나서야 한다. 북한 역시 단독 또는 한국과 공동으로 미국의 대중국 완충자 역할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둘째, 미국의 패권이 지속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한국은 계속 미국에 ‘편승’(bandwagoning)하여야 한다. 이 경우 미국에 ‘방기’(abandonment) 당하지 않도록 미군 주둔 비용을 부담하고 주한미군을 ‘인계철선’(trip wire) 삼아 미국을 계속 한국에 ‘연루’(entrapment)시켜야 한다. 북한도 중국을 버리고 미국과 타협을 통해 미국 패권에 편승하고 팍스아메리카나 질서에 편입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셋째, 패권 경쟁이 격화되어 미·중 ‘비동조화’(decoupling)가 강화되면, 한국은 대미 편승과 중국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선제적 헤징’(hedging)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반면 미·중 비동조화는 중·미 모두에게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상승시킬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은 헤징을 통해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 합리적이다.

넷째, 미·중 공진과 ‘동조화’(coupling)가 강화되면, 한국은 미·중 동조를 이용하여 동북아지역공동체 구축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고, 북한은 비핵화와 개방개혁으로 7000만 한반도경제공동체에 참가하여 평화와 번영을 도모할 수 있다.

다섯째, 미·중 비동조화가 강화되었을 때, 미국이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을 채택하여 한국에 비용을 전가하면, 한국은 이를 수용·부담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북한은 중국에 대한 나진항의 해상 전략 가치가 높다는 것을 이용해서 중국으로부터 커다란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

임혁백 광주과기대(GIST) 석좌교수·고려대 명예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