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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法석]검찰 첫 노사협의회 꿈틀, 민주노총 소속 법원노조는 검찰과 각세워…법조계도 勞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야단법석(야단法석)'에서는 법조계의 각종 이슈와 트렌드를 중앙일보 법조팀 기자들의 시각으로 재조명합니다. '야단法석'을 통해 법조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세요.

29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동관과 서관에 걸린 노란 현수막 4개. 이수정 기자

29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동관과 서관에 걸린 노란 현수막 4개. 이수정 기자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에 노란빛이 드리워졌습니다. 개나리가 채 피기도 전인 지난 24일, 법원 동관과 서관에 노랑색 대형 현수막 4개가 걸린 겁니다. 현수막에는 "검찰은 법원 청사 안에 있는 공판실에서 당장 퇴거하라!", "법원과 검찰의 유착 의혹으로 철수한 법원 내 공판검사실! 전국에 유일하게 여기에만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혔습니다. 25일에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 본부가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은 당장 법원에서 나가달라"고 주장했습니다.

29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 걸린 현수막. 검찰은 당장 법원에서 퇴거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수정 기자

29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 걸린 현수막. 검찰은 당장 법원에서 퇴거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수정 기자

법원 안에 검찰 있다?…공판검사실 가보니

공판검사실이 대체 뭐길래 법원에 대형 현수막까지 걸렸을까요. 29일 법원 청사 서관 12층에 있는 공판검사실에 가봤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 내리니 갈림길이 나옵니다. 오른쪽은 서울중앙지검 공판1부가, 왼쪽에는 서울고등법원 형사부가 사무실을 쓰고 있습니다.

검찰에서 재판에 넘긴 사건 중 주요한 사건은 사건을 수사한 검사가 재판 과정까지 담당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수사 검사와 재판 과정인 공판을 담당하는 검사가 따로 있습니다. 법원 12층에 있는 공판검사실은 이 공판 담당 검사들과 수사관, 실무관들이 쓰는 사무실입니다. 부장검사실과 사무실 2개로 나뉘어 있는 공판1부는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무실 안에는 검사복도 걸려있습니다. 통로 한쪽에는 직원들의 소소한 먹거리와 사무용품이 비치된 탕비실도 있고, 열람·등사실도 안쪽에 마련돼 있습니다. 통로 끝까지 가 문을 열어보니 법정으로 바로 가는 엘리베이터도 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12층 왼쪽 사무실은 고등법원 형사과가, 오른쪽은 서울중앙지검 공판1부가 쓰고 있다. 이수정 기자

서울고등법원 12층 왼쪽 사무실은 고등법원 형사과가, 오른쪽은 서울중앙지검 공판1부가 쓰고 있다. 이수정 기자

1989년 서초동 법원 종합청사가 만들어지면서 서울지검 공판 1·2부가 법원에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1부만 남아 있습니다. 공판 1부에서 근무하는 한 실무관에게 법원 노조에서 퇴거 요청한 것을 아느냐고 물으니 "오래전부터 법원에 있었던 건데, 왜 지금 나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법원 내 다양한 목소리 내는 법원노조 

민주노총 소속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 지부는 이 공판 검사실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법원 내 검사실이라며 비워달라고 주장합니다. 법원 직원들이 쓸 사무 공간도 부족하다는 겁니다. 또 이곳에 상주하는 검사들이 '마스터키'를 사용해 법원 청사 전역을 자유자재로 드나들어 마음만 먹으면 판사실도 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법원 청사에서 장기간 근무한 직원들이 "판사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판사실로 향하는 게이트 도어 등에서 얼굴이 익은 검사들을 가끔 봤다"는 증언 등을 근거로 판사와 검사 간 유착 의혹을 제기합니다. 법원 노조는 검찰 측에 퇴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별다른 답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대검찰청도 이에 대해 "특별한 입장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과거에도 법원 내에서 검찰에 '나가달라'고 요청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최인석 전 울산지방법원장(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재판부 출입로에 웬 검사?'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재판부가 드나드는 법관 출입문으로 검사들이 출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를 공식적으로 통보해 바로잡았다는 글이었습니다. 이렇게 법원 내부 게시판에 법관이 문제를 제기한 경우는 있었지만 법원 노조가 공판 검사실을 없애달라고 법원 청사에 대형 현수막까지 내건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전공노 법원 지부는 법원에서 일하는 6급 이하 공무원들이 가입 대상입니다. 이들은 공판 검사실 문제뿐 아니라 법원 내 다양한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소환 당시 양 전 원장이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려고 하자 법원 노조가 이를 원천 봉쇄하겠다며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7일에는 전공노 법원 본부와 법원 간 단체교섭 체결식도 있었습니다.

교섭 결과에는 법원 일반직 공무원들과 다르게 처우 받는 별정직 보안관리 대원, 전문임기제 속기사 등의 신분상 지위와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 법원 내에서 시설·기계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용역 직원들을 공무직으로 채용하는 정규직화를 2020년부터 점차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노조 황무지' 검찰에 붙은 노사협의회 설치 공고

지난 19일 대검찰청 노사협의회는 설치 준비 근로자 위원 4명을 확정하고 노사협의회 설치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대검찰청 제공]

지난 19일 대검찰청 노사협의회는 설치 준비 근로자 위원 4명을 확정하고 노사협의회 설치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대검찰청 제공]

 전공노 법원 본부는 1999년 서울지법 공무원직장협의회를 시작으로 전국 법원 직장협의회가 결성된 게 그 시작입니다. 이 직장협의회는 2004년 총투표를 통해 법원 공무원노동조합으로 전환했고, 2005년 법원 노조가 탄생했습니다. 반면 법원과 길 하나를 두고 맞닿아 있는 검찰에는 아직 노조가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검찰에서도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생겼습니다. 19일 검찰 청사 내에 붙은 공고입니다. 노사협의회 설치와 관련된 내용이 나옵니다. 대한민국 검찰 내에 생기는 첫 노사협의회입니다.

검찰 내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2019년 1월 1일 자로 정규직으로 전환됐습니다. 이에 노사협의회 설치가 필요해졌습니다.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은 상시 30인 이상이 고용된 사업장에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도록 규정합니다. 노사협의회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협력관계를 높이기 위해 노사 동수로 만드는 협의회입니다. 3개월마다 한 번씩 정기 회의를 열고 의견을 나눕니다.

노사협의회는 노동자들이 주체가 돼서 만드는 노동조합과는 다르고, 단체 교섭이 아닌 '협의'를 하는 정도입니다. 대검찰청 노사협의회 가입 대상은 검사나 검찰 공무원이 아닌 사무원, 환경직, 시설직, 청원경찰 등 공무직 근로자 1953명이 대상입니다.

25일부터는 전국에서 이들을 대표할 6명을 뽑는 선거도 시작합니다. 법원 공무원들이 주축인 법원 노조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검찰 내 노동자 조직이 아예 없던 것에서 생겨난 새로운 바람입니다. 법원 노동조합 간부는 "당장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공노도 이전에는 직장협의회에서 출발했다"며 "노사협의회가 노조가 조직적으로 갖춰지기 위한 첫걸음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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