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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의 심스틸러] 피라미드 위로 올라간 남자 김병철

중앙일보

입력

‘닥터 프리즈너’에서 서서울교도소 선민식 의료과장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배우 김병철. [사진 KBS]

‘닥터 프리즈너’에서 서서울교도소 선민식 의료과장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배우 김병철. [사진 KBS]

KBS2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의 상승세가 무섭다. 지난 20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방송 4회 만에 시청률 14.5%(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수목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 22.7%로 종영한 ‘왜 그래 풍상씨’의 덕을 봤다고 하기엔 형보다 훨씬 나은 아우다. 주말 가족극을 그대로 평일로 옮겨온 꼼수를 쓰거나 5남매가 돌아가며 사고를 치는 막장으로 치닫는 대신 스토리와 캐릭터를 앞세운 정면승부로 얻어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SBS ‘빅이슈’나 MBC ‘더 뱅커’가 3%대에 머물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나홀로 독주다.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서 선민식 역할 #교도소 의료과장으로 막강한 권력 과시 #18년만 첫 주연…눈빛ㆍ주름까지 연기 #‘도깨비’ ‘SKY 캐슬’ 차파국 잇는 인생캐

‘닥터 프리즈너’는 교도소라는 배경과 메디컬 드라마를 결합한 새로운 장르물이다. “모두가 병을 고치는 데 관심을 가질 때 병을 만드는 의사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박계옥 작가의 질문에서 시작돼 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권력관계에 집중한다. 전직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 등 사회에서 힘깨나 있는 분들이 모여들지만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어하는 공간이라는 특수성을 역이용한것. 경찰 혹은 검찰에 집중했던 기존 장르물과 달리 의사에게 그 권력을 쥐여주면서 신선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닥터 프리즈너’에서 교도소 왕 자리를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는 김병철과 남궁민. [사진 KBS]

‘닥터 프리즈너’에서 교도소 왕 자리를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는 김병철과 남궁민. [사진 KBS]

그중에서도 배우 김병철(45)이 맡은 서서울교도소 의료과장 선민식 역할은 특히 흥미롭다. 3대째 의사가문으로 태어나 형제는 물론 사촌들까지 모두 대학병원 교수 자리에 오르는 상황에서 홀로 경쟁에서 밀려난 미운 오리 새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교도소에 갇힌 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줄 수 있는 형집행정지와 구속집행정지라는 무기를 장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권력층을 통제할 수 있는 또 다른 권력을 갖게 된 것이다. 해당 제도를 악용한 영남제분 사모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2015)와는 전혀 다른 관점이다.

덕분에 그는 데뷔 18년 만에 주연을 맡은 이번 작품에서 한층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권력을 향한 강한 의지는 전작 ‘SKY 캐슬’의 차민혁 교수와 공통분모긴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구성 요소는 전혀 다르다. 세탁소집 아들로 태어난 검사 출신 로스쿨 교수는 피라미드 꼭대기를 향해 올라갈 것을 꿈꾸지만, 이미 피라미드 상층부에 있는 집단은 자기 혼자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지켜야 할 게 많단 얘기다. 조바심보다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의 진폭이 더 클 수밖에 없다.

‘SKY 캐슬’에서 차민혁 교수 역할을 맡은 김병철. 피라미드 꼭대기를 향해 달려간다. [사진 JTBC]

‘SKY 캐슬’에서 차민혁 교수 역할을 맡은 김병철. 피라미드 꼭대기를 향해 달려간다. [사진 JTBC]

그를 둘러싼 인물 모두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것도 인상적이다.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후임 의료과장으로 온 나이제(남궁민)는 물론 퇴임 후 점찍어둔 태강병원 VIP 센터장으로 가기 위해 이사장 모이라(진희경)와 그룹 본부장 이재준(최원영) 사이에서 시시각각 얼굴을 바꿔가며 다음 수를 놓는다. 그간 눈빛으로 말하는 배우는 많이 봤어도 주름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김병철이 처음이다.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 웃고 덜 웃고의 차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복잡다단한 표정 연기를 펼쳐 보인다.

극중 이들이 ‘공생 진화’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사실 김병철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공생 진화의 바람직한 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김은숙 작가와 인연이다. 2001년 연극으로 연기에 발을 담근 그는 2003년 영화 ‘황산벌’과 2010년 드라마 ‘주홍글씨’로 연기 반경을 넓혔지만 그다지 주목받는 배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2016)에서 ‘우럭 닮은’ 박병수 대대장을 시작으로 ‘도깨비’(2017)에서 ‘파국’을 외친 간신 박중헌, ‘미스터 션샤인’(2018)에서 ‘해드리오’ 일식이까지 김 작가와 만났다 하면 인생캐를 경신하는 놀라운 캐릭터 소화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스터 션샤인’에 함께 출연한 조우진과 김병철. 두 사람은 닮은 꼴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 tvN]

‘미스터 션샤인’에 함께 출연한 조우진과 김병철. 두 사람은 닮은 꼴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 tvN]

김은숙 작가가 애정하는 또 다른 배우 조우진(40)과 인연도 그렇다. 똑 닮은 두 사람이 1인 2역인 줄 알고 헷갈리는 나 같은 시청자를 위해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아예 두 사람이 조우하는 장면도 종종 등장했다. 본인들도 인정할 만큼 닮은 부분이 있지만, 덕분에 한 번 더 눈길을 끌게 되고, 두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오죽 인상적이었으면 ‘SKY 캐슬’의 차 교수와 ‘도깨비’의 파국을 더해 ‘차파국’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으니 이제는 그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더 적지 않을까. 조우진 역시 ‘도깨비’ 이후 출연한 영화만 15편에 달할 정도로 두 사람은 동반 성장하고 있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잘 적응하는 놈이 살아남는다.” 남다른 속도감을 자랑하며 마구 쏟아지는 ‘닥터 프리즈너’의 명대사 중 유독 귀를 붙든 말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빌린 말이지만, 오랜 무명 생활 끝에 더 주목받고 있는 이들 배우에게 꼭 맞는 말이어서다. ‘SKY 캐슬’이 끝나기가 무섭게 새 작품에 들어간 김병철은 “뻣뻣함과 유연함이 공존하는 인물이라 매력적”이라고 선택 이유를 밝혔다. 그가 앞으로 또 어떤 표정을 빚어낼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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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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