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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보이는 피아졸라 탱고 “춤과 악기의 실내악이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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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호 24면

[아티스트 라운지] 피아니스트 조재혁·첼리스트 송영훈

춤과 음악은 세트다. 춤 공연을 볼 땐 늘 음악이 들리지만, 국립발레단의 올 시즌 개막작 ‘댄스 인투 더 뮤직’에선 음악이 ‘보인다’. ‘클래식 대중화의 아이콘’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음악감독을 맡아 첼리스트 송영훈과 함께 무대에 올라 무용수들과 혼연일체가 되는 무대다.

국립발레단 ‘댄스 인투 더 뮤직’ #클래식 음악의 길잡이 조재혁 #“반주 넘어 발레와 대등한 무대로” #춤에 대한 로망 여전한 송영훈 #“청중과 배움의 삶 나누고 싶어”

“음악과 춤이 대등한 무대예요. 일종의 실내악이죠. 발레와 한다고 특별한 게 아니라 서로 호흡 맞추며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니 음악가들과 실내악 할 때와 똑같아요.”(조재혁) “같은 곡도 댄서와 호흡 맞추니 오히려 자유로움이 생겨요. 박자 안에서 고정관념이 있던 것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마음이 더 편해졌죠.”(송영훈)

두 사람은 요즘 부쩍 한 무대에 서는 일이 많다. 지난 20일 KBS 클래식FM 4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도 베토벤 협주곡을 협연했다. “라디오 방송 인연으로 최근 자주 만나게 됐지만 사실 오래된 사이에요. 예고 시절 동기인 바이올리니스트 송정훈의 집에 가면 동생인 영훈씨가 반바지 입고 뛰어나왔죠.(웃음) 이번에 곡 리스트를 보니 자연스레 첼로와 듀엣으로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지젤’의 파드되도 비올라를 첼로 파트로 편곡해서 리허설을 해보니 영훈씨의 아름다운 리리시즘과 잘 어울리고, 마치 오리지널 첼로곡처럼 들려 기뻤어요.”(조)

조재혁(오른쪽)과 송영훈이 함께하는 '댄스 인투 더 뮤직'은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신인섭 기자]

조재혁(오른쪽)과 송영훈이 함께하는 '댄스 인투 더 뮤직'은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신인섭 기자]

무용수들과의 호흡은 어떤가요.
"조 선생님 덕분에 4곡이나 초연을 하게 됐는데, 내 파트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도대체 어떤 그림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무브먼트가 나올까 생각하면서 하니 참 특별한 경험이죠.”

"긴장의 팽팽한 줄이 계속 걸려있죠. 흥미로운 게 첫날엔 불안감도 섞여있고 조심스럽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쿵’ 하면 ‘척’이 나오거든요. 첫공과 막공은 전혀 다른 다이내믹이 나온다는 게 재미있어요.”

단 두 사람의 연주가 썰렁하진 않을까요.
"어떤 무대건 곡 선정이 중요하고, 잘 준비해서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다면 한 명이든 여럿이든 상관없어요. 여운이 남아 박수치기조차 두려운 연주는 보통 조용한 무대죠.”

"발레도 섬세하고 느린 동작에서 감동을 주는 것처럼, 음악도 소리 안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소름이 돋죠. 영화도 조용한 음악으로 끝나며 크레딧 흐를 때 못 일어나지 않나요.”

음악적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면.
"마지막 피아졸라 탱고가 클라이맥스죠. 오르간과 첼로 조합이 역발상인데, 영훈씨가 피아졸라 전문가라 탱고의 정열을 잘 표현할 거예요. 오르간도 혼자서 오케스트라 역할을 하는 악기인 만큼 웅장하고도 다양한 음색을 들려드릴 겁니다.”

"아르보 패르트 음악에 맞춘 김용걸 교수의 신작이 첼로가 아주 화려해요. 덕분에 정말 좋은 곡을 배웠어요. 그야말로 첫 음부터 끝 음까지 음악 자체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 주죠. 알고보니 제목이 ‘더 로드’더군요.”

리허설 중인 조재혁(오른쪽)과 송영훈.

리허설 중인 조재혁(오른쪽)과 송영훈.

조재혁은 ‘댄스 인투 더 뮤직’을 함께 기획하고 ‘안나 카레니나’의 반주를 맡는 등 국립발레단과 인연이 깊다. 송영훈도 춤에 대한 로망이 있다. “유럽 살 때 플라멩코를 너무 좋아해서 용돈 털어 투어 공연을 졸졸 따라다녔는데, 그때 신인이었던 댄서를 평창올림픽 기념공연에서 만났어요. 20여 년이 흐른 지금 더 열정적이더군요. 그런 게 제 꿈이에요. 나이가 들면서 음악이 계속 깊어지고, 같은 곡도 점점 더 알아가는 거죠.”(송)

연주자의 삶은 외롭다. 연습실에서 베토벤과 홀로 씨름하면서, 서로의 소리를 알아주는 음악적 동지를 갖는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운동 좋아하던 우락부락한 소년이 언제 이렇게 섬세해졌나 싶어요. 송영훈만의 소리가 있거든요. 읊어준달까, 어루만진달까. 팬들이 바로 그런 소리를 들으러 오는 것이겠죠.”(조) “음악가들은 실력이 뛰어나도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경우가 많아요. 음악적으로 잘 맞아도 같이 밥 먹고 싶지는 않은 게 보통인데, 조 선생님과는 둘 다 같이 하고 싶어요. 든든한 동반자로 같은 길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죠.”(송)

두 사람은 ‘클래식 대중화의 아이콘’이란 수식어엔 동의하지 않았다. 음악의 길잡이 역할을 할 뿐, 수준을 낮춘 적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 단어가 하나씩 들리다가 점차 다 들리는 것처럼, 음악이란 언어를 잘 알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연주자로서 청중과 공유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거죠.”(조) “대중과 만나면서 제가 더 배우게 되요. 결국 배움의 삶이죠. 정명훈 선생님이 말러는 이제 조금 알겠는데 부르크너는 아직도 모르겠다고 하는 것처럼, 첼로를 마지막 켜는 날까지 갈망하고 싶어요. 그런 애정을 청중과도 나누고 싶을 뿐이죠.”(송)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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