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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서 귀국하는 양정철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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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도쿄총국장

서승욱 도쿄총국장

“책 내용 그대로 갈 겁니다. 그대로 갑니다.” 꼭 4년 전인 2015년 3월 서울 여의도 한정식집에서 그가 했던 말이 생생하다. 그해 2월 전당대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의 수장으로 선출된 문재인 대표의 향후 행보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지방대 교수 명함을 들고 다니는 정치 야인이었지만 답변엔 확신이 넘쳤다.

그가 말한 책은 2012년 대선에서 진 문 대통령이 꼭 1년 뒤에 펴낸 『1219 끝이 시작이다』였다. 그리고 “그 책을 보면 앞으로의 문재인이 보일 것”이라고 말한 ‘그’는 ‘문재인의 복심’ 양정철이었다.

『1219 끝이 시작이다』는 자기고백 형식의 패배 보고서다. 재기를 노리는 문재인 진영의 고뇌가 담겨있다. 서두에 문 대통령은 “책을 꼭 써야 할까 많은 생각을 했다. ‘패장은 말이 없다’는데 책이 변명이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보고서를 제출하는 건 패장에게 남은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전략 미스에 대한 뼈아픈 반성, 다시는 지고 싶지 않다는 권력의지가 들여다보였다. 특히 자기비판이 신랄했다.

“안보에 대한 신뢰 없이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 “5060세대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우리에겐 일종의 근본주의가 남아 있다. 유연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막고 있다. 통합을 말하면서도 선을 긋고 편을 가른다”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성장인데, 그에 대한 담론이 부족했다”….

그는 책 속 자기비판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2015년 당 대표가 된 다음 날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보수성향 종교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찾아갔다. 탕평을 약속했고, 실제로 당내 ‘비노(비노무현)’ 인사들에게 기회를 줬다. 이런 회심의 프로젝트를 문 대통령과 함께 고민한 이가 바로 양정철이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2년 가까이를 해외에 머물던 그가 곧 서울로 돌아간다. 집권 여당의 싱크탱크 수장이 그의 새로운 임무다. 진영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편과 남의 편에 선을 긋지 않고, 복지뿐 아니라 성장에도 힘을 쏟겠다는 건 문 대통령과 양정철이 함께 고민했던 2013년의 초심이었다.

6년 전 ‘패장 문재인’의 절박했던 초심과 ‘집권 3년 차 대통령 문재인’의 현재 모습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는 국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간극을 메우는 양정철의 역할을 기대한다. 도쿄 생활에선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혹시 반일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을 서울에서 만난다면 따끔한 충고 한마디도 해줬으면 한다.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