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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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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희망을 봤다고 할까요. 무슬림들이 극단주의자만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인간이란 걸 이해하는 데서 감명받았어요.”

이 말을 한 이는 터키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이슬람교도인 알파고 시나씨. 한국인으로 귀화하고 여러 권 책까지 낸 그는 이따금 외신으로 들려오는 이슬람 극단주의자 테러 소식에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두 군데 모스크(이슬람사원)에서 발생한 총기 테러로 50명이 숨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반이민·반이슬람주의자 손에 애꿎은 시민들이 희생됐지만 이슬람과 이민이 분열과 대립의 원인으로 비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런 그에게 ‘희망’이 된 이는 사고 수습을 이끌고 있는 39세 여성 총리 저신다 아던이다. 아던 총리는 테러 당일부터 흔들림 없이 무슬림 공동체를 향해 “뉴질랜드는 여러분들과 함께 애통해하고 있다”며 “우리는 하나”라고 강조했다. 특히 “테러범의 이름을 절대 언급하지 않겠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그가 테러를 저질러 악명을 얻으려 했던 “한낱 테러리스트이자 범죄자일 뿐”이라면서다.

테러의 효과는 현장 살상자 숫자가 아니라 그로 인해 파급되는 공포와 위협으로 판가름난다. 소위 선진국의 안전지대에 있는 시민을 상대로 한 테러가 더 요란하게 회자되는 이유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는 이 공포와 위협을 보다 빠르게 보다 멀리 전파하면서 또 다른 정서까지 확산시키고 있다. 혐오다. 정제되지 않은 1인 미디어에 실린 혐오와 극단주의는 가짜뉴스와 뒤엉키면서 실제보다 위협을 부풀리는 효과를 낳는다.

뉴질랜드 테러가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됐을 때 이를 시청한 이는 200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4시간도 채 안돼 페이스북에 올라온 편집영상은 150만 개가 넘었다. 페이스북이 이를 삭제하는 동안에도 영상은 독버섯처럼 퍼져서 공포·위협·혐오를 전파했다. 개인들의 동조 없이 불가능하다. 그 결과는 이슬람포비아에 잠식당한 공동체의 균열이다.

때문에 아던 총리는 테러범의 이름을 부르길 거부했다. 테러범이 얻고자 한 악명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대신 희생자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다. 하나하나 꽃 같은 생명들, ‘무슬림’이라는 카테고리로 설명되지 않는 개인들, 극단주의자가 아닌 너와 나 같은 인간들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기자 역시 테러범의 이름은 잊었다. 대신 저신다 아던은 남았다. 이젠 한국인이 된 무슬림 알파고 시나씨가 ‘공감의 이름’으로 그를 기억하듯 말이다. 지금도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자극적인 사건과 뉴스에서, 우리는 누구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가.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