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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 ‘땅콩 회항·물컵 갑질’ 끝내 아버지 발목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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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장녀의 땅콩 회항으로 한진가의 수난이 시작됐고, 차녀의 물컵 갑질은 오너가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매개가 됐다. 두 사건으로 조양호 회장은 20년 만에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7월 5일 조 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출두하고 있다. [중앙포토]

장녀의 땅콩 회항으로 한진가의 수난이 시작됐고, 차녀의 물컵 갑질은 오너가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매개가 됐다. 두 사건으로 조양호 회장은 20년 만에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7월 5일 조 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출두하고 있다. [중앙포토]

장녀의 ‘땅콩 회항’이 시작이었다. 2014년 12월 5일 미국 뉴욕 JFK공항. 조현아(45)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인천행 KE086편 일등석에 타고 있었다. 조 전 부사장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던 비행기에서 승무원의 마카다미아 제공 서비스를 문제삼았다. 조씨는 비행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고 박창진 사무장을 질책하며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한진가는 잠시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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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녀의 ‘물컵 갑질’은 기폭제가 됐다.

지난해 4월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36)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의혹이 제기됐다. 조 전 전무가 던졌다는 ‘물컵’은 검찰에서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사내외에 쌓여 있던 한진 오너가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매개가 됐다. 대한항공 직원 수천 명은 카카오톡 익명 대화방을 개설해 그동안 쌓여 있던 총수 일가의 각종 갑질 의혹을 쏟아냈다.

수백 명의 직원은 광화문에서 총수 일가의 갑질 경영을 규탄하는 시위도 벌였다.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갑질 폭행’ 사건까지 세상에 공개되면서 한진가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갑질 논란은 한진가의 밀수와 탈세, 배임, 횡령 의혹으로 번졌다. 한진 오너 일가는 각종 위법 혐의로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의 표적이 됐고, 이 전 이사장과 조 회장의 두 딸은 포토라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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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의 갑질 논란은 결국 조양호(70) 한진그룹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은 대한항공의 상징과도 같은 조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는 데 촉매 역할을 했다. 갑질 나비효과다.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표직을 잃었다. 주주 손에 밀려난 첫 대기업 총수라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조 회장도 대한항공 납품업체로부터 기내 면세품을 총수 일가가 지배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중개수수료 196억원을 받은 혐의(특경법상 배임)로 기소되는 등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조 회장의 이 같은 혐의는 경영인으로 부적절하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국민연금은 26일 “조 회장이 기업 가치 훼손 및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7일 대한항공 주총장에선 조 회장이 대한항공을 일군 업적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주의 목소리도 나왔다. 조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후 사세가 확장하며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글로벌 항공사로서의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조 회장은 항공 및 운송사업에 40년 넘는 세월을 투자했다.

또 전 세계 120개국 287개 민간 항공사가 회원국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올해 서울에서 열리는 IATA 총회 유치도 주도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오너 일가의 일탈행위와는 별개로 경영 능력 검증도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편 조 회장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있는 별장에서 칩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건강상 문제로 미국에 머무르며 귀국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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