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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의 '땅콩·물컵 갑질'이 아빠 조양호를 끌어내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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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왼쪽)과 장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연합뉴스, 뉴스1]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왼쪽)과 장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연합뉴스, 뉴스1]

 한진가 수난 시작은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장녀의 ‘땅콩 회항’이 시작이었다. 2014년 12월 5일 미국 뉴욕 JFK공항. 조현아(45)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인천행 KE086편 일등석에 타고 있었다. 조 전 부사장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던 비행기에서 승무원의 마카다미아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았다. 조씨는 비행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고 박창진 사무장을 질책하며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한진가는 잠시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조현민 전무 '물컵 갑질' 논란… 각종 의혹 기폭제로

차녀의 ‘물컵 갑질’은 기폭제가 됐다.
 지난해 4월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36)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의혹이 제기됐다. 조 전 전무가 던졌다는 물컵은 검찰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사내외에 쌓여있던 한진 오너가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매개가 됐다. 대한항공 직원 수천 명은 카카오톡 익명 대화방을 개설해 그동안 쌓여 있던 총수 일가의 각종 갑질 의혹을 쏟아냈다.

수 백명의 직원은 광화문에서 총수 일가의 갑질 경영을 규탄하는 시위도 벌였다.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갑질 폭행’ 사건까지 세상에 공개되면서 한진가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갑질 논란은 한진가의 밀수와 탈세, 배임, 횡령 의혹으로 번졌다. 한진 오너 일가는 각종 위법 혐의로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의 표적이 됐고, 이 전 이사장과 조 회장의 두 딸은 포토라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 [중앙포토ㆍ연합뉴스]

조현민 전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 [중앙포토ㆍ연합뉴스]

갑질 나비효과…20년 만에 대표직 잃어

두 딸의 갑질 논란은 결국 조양호(70) 한진그룹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총수일가의 갑질 논란은 대한항공의 상징과도 같은 조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는데 촉매 역할을 했다. 나비효과다.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표직을 잃었다.

조 회장도 대한항공 납품업체로부터 기내 면세품을 총수 일가가 지배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중개수수료 196억원을 받은 혐의(특경법상 배임)로 기소되는 등 270억원 규모의 횡령ㆍ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조 회장의 이 같은 혐의는 경영인으로 부적절하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국민연금은 26일 “조 회장이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를 결정했다”고 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대한항공 주주들은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빌딩에서 열린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을 부결시켰다. [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대한항공 주주들은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빌딩에서 열린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을 부결시켰다. [연합뉴스]

"대한항공 글로벌 항공사 도약 성장 발판 주역" 평가도

하지만 27일 대한항공 주총장에선 조 회장이 대한항공을 일군 업적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주의 목소리도 나왔다. 조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후 사세가 확장하며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글로벌 항공사로서의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조 회장은 항공 및 운송사업에 40년 넘는 세월을 투자했다. 1980년 오일쇼크와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유리한 조건으로 항공기 구매 계약 등을 진행하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그가 대한항공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IATA총회 한국 유치도…조 회장, 건강 문제로 미국 체류 중

또 전 세계 120개국 287개 민간 항공사가 회원국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올해 서울에서 열리는 IATA 총회 개최도 주도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과 조직위원장을 맡으며 민간 외교관의 역할도 담당했다.

조 회장은 한국 항공산업과 관광산업의 전기를 마련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오너일가의 일탈 행위와는 별개로 경영 능력 검증도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두 딸의 갑질 논란을 극복하지 못했고 주주 손에 밀려난 첫 대기업 총수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한편 조 회장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있는 별장에서 칩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건강상 문제로 미국에 머무르며 귀국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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