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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 땅콩회항·조현민 물컵 갑질…결국 발목잡힌 조양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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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대한항공 주주들은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빌딩에서 열린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을 부결시켰다. [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대한항공 주주들은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빌딩에서 열린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을 부결시켰다. [연합뉴스]

'땅콩·물컵 갑질'로 경영권 제동 걸린 조양호 회장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이 결국 조양호(70) 한진그룹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총수가의 갑질 논란은 대한항공의 상징과도 같은 조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는데 촉매 역할을 했다.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표직을 잃었다.

시작은 이랬다. 지난 2014년 12월 5일 미국 뉴욕 JFK 공항. 당시 조현아 부사장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던 인천행 KE086 항공기 일등석에서 승무원의 마카다미아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았다.

 조 전 부사장은 비행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고 박창진 사무장을 질책하며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다. 땅콩 회항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한진가는 잠시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지난해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36)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이 일었다. 조 전 전무가 던졌다는 물컵은 검찰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사내외에 쌓여있던 한진 오너가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대한항공 직원 수천 명은 카카오톡 익명 대화방을 개설해 그동안 쌓여 있던 총수 일가의 각종 갑질 의혹을 쏟아냈다.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갑질 폭행’ 사건까지 세상에 공개되면서 한진가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횡령·배임 의혹으로 번진 갑질 논란

갑질 논란은 한진가의 밀수와 탈세, 배임, 횡령 의혹으로 번졌다. 한진 오너 일가는 각종 위법 혐의로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의 표적이 됐고, 이 전 이사장과 조 회장의 두 딸은 포토라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조 회장도 대한항공 납품업체로부터 기내 면세품을 총수 일가가 지배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중개수수료 196억원을 받은 혐의(특경법상 배임)로 기소되는 등 270억원 규모의 횡령ㆍ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조 회장은 또 지난 2010년에서 2012년 인천 중구 인하대 병원 인근에 ‘사무장 약국’을 차명으로 운영하면서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건보재정 1522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도 기소됐고 밀수, 탈세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조 회장의 이 같은 혐의는 경영인으로 부적절하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대한항공 지분 11.56%를 보유한 2대 주주 국민연금은 이틀간의 회의 끝에 오너 일가의 논란이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며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키로 했다.

국민연금 "조 회장,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 침해 이력" 

국민연금은 26일 “조 회장이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를 결정했다”고 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주총에서 대리인 자격으로 참석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주주 발언에서 “땅콩 회항부터 지금까지 조양호 회장 일가의 전형적인 황제 경영으로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외국인과 기관 소액주주도 조 회장에게 등을 돌렸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서스팀베스트 등도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에 반대 투표를 권고했다. 결국 조 회장은 주주 손에 밀려난 첫 대기업 총수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조 회장, 대한항공 글로벌 기업으로 일궈…"일탈 별개로 경영 능력 검증" 목소리도

 조 회장은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을 글로벌 기업으로 일군 업적도 있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조 회장은 1980년 오일쇼크와 1997년 외환 위기를 극복하면서 대한항공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전 세계 120개국 287개 민간 항공사가 회원국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올해 서울에서 열리는 IATA 총회 개최도 주도했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선 오너일가의 일탈 행위와는 별개로 경영 능력 검증도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엔 실패했지만,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한 조 회장 일가의 지분이 있어 경영권 박탈을 의미하진 않는다. 대한항공 주식 지분은 조 회장과 한진칼(29.96%) 등 특수관계인이 33.35%를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사내이사로 남아 있지만, 대한항공에 대한 총수가의 영향력은 약해질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부결에 대해 “막 결정됐으므로 향후 절차에 따라 논의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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