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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위해 슬퍼말라" 자살한 굴원이 오래 추모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준태의 자강불식(6)

중국 굴원사당에 세워진 굴원(BC 343년 추정 ~ BC 278년 추정)의 동상. [중앙포토]

중국 굴원사당에 세워진 굴원(BC 343년 추정 ~ BC 278년 추정)의 동상. [중앙포토]

말할 수 없이 무도한 세상을 만나 그 몸을 버렸구나
아아 슬프다! 좋지 않은 때를 만났으니
봉황은 숨어 엎드렸는데 올빼미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구나
나쁜 사람이 귀한 몸이 되고 아첨하는 자들이 뜻을 얻었도다
성인과 현인이 끌려다니고 올곧은 사람들이 뒤바뀐 자리에 놓였네

한(漢)나라의 천재 학자 가의(賈誼)가 지은 ‘조굴원부(弔屈原賦)’의 한 대목이다.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머나먼 외지로 부임하던 길, 그 답답한 마음을 굴원에 대한 조사(弔辭)를 빌려 토로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수많은 선비가 노래한 굴원

비단 가의 뿐만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수많은 선비가 굴원을 노래했다. 마음속에 품은 포부를 펼쳐 보이지 못하는 슬픔. 자신의 재주와 뜻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한탄. 정의가 사라지고 불의가 판치는 시대에 대한 절망. 이 모든 것을 한 몸에 안은 이가 바로 굴원이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에서 태어난 굴원은 학문과 능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외교에 탁월했다고 한다. 내정 개혁에도 앞장서며 초나라를 강하게 만들고자 했다.

이런 굴원을 초나라의 귀족들은 고깝게 보았다. 갖은 중상모략이 쏟아졌고 이내 그는 한직으로 좌천됐다. 이때 굴원은 ‘이소(離騷)’라는 글을 짓는다. “님과 이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님의 마음 자꾸 바뀌시는 것이 가슴 아파라.” 간신의 말에 휩쓸려 줏대 없이 흔들리는 임금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난다. 사마천의 말처럼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았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당했으니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굴원은 우국충정의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초나라 임금 회왕이 진나라와 제나라 사이에서 어리석게 행동하다가 위기를 초래하자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애썼다. 회왕이 진나라에 속을 때도 홀로 나서 간언하며 임금을 깨우쳐주려고 노력했다. 그 충고를 듣지 않은 탓에 회왕은 진나라에 억류되었고 객사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정상적인 세상이라면 이와 같은 굴원의 노력이 받아들여졌어야 했다. 적어도 그의 뜻과 헌신만큼은 높이 평가받아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굴원의 시련은 계속된다. 무릇 소인이 군자를 공격하는 이유는 군자로 인해 자신의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초 회왕을 잘못된 길로 내몰았던 신하들도 본인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굴원을 헐뜯고 공격했다. 그리하여 굴원은 추방형에 처한다. 충격이 컸던 것일까. 초췌하고 잔뜩 야윈 채로 물가를 거닐며 탄식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고 한다.

굴원에게 닥친 시련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굴원은 결국 강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고 만다. 굴원이 투신한 멱라에 세워진 기념 사당. [중앙포토]

굴원에게 닥친 시련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굴원은 결국 강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고 만다. 굴원이 투신한 멱라에 세워진 기념 사당. [중앙포토]

당시 그가 지은 ‘어부사(漁父辭)’를 보면 그는 “세상은 온통 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세상은 모두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서 이렇게 추방당한 것”이라고 말한다. 왜 세상의 추세를 따라 적응하지 않느냐는 어부의 질문에 “차라리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례를 지낼지언정 어찌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습니까”라고 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자신의 신념과 지조를 굽힐 수 없다는 것이다.

망국의 한 품고 자살하며 남긴 절명시

그러나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악화했고 굴원이 사랑하던 조국 초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망국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 모습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굴원은 결국 강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는 길을 택한다.

그의 절명시 ‘회사(懷沙)’를 보면, “한을 참고 분노를 삼키고 마음을 눌러 스스로 애쓰면서 어두운 세상을 만났어도 내 절개를 바꾸지 않았다”, “나의 능력은 무겁고 큰 임무를 짊어지고 견딜 수 있건만 꺼지고 막혀 성취할 길이 없구나”, “마을의 개들이 떼를 지어 짖어대는 것은 저들 눈에는 내가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이겠지”, “세상이 혼탁하여 나를 알지 못하니 내 마음을 말해 무엇하랴? 죽음을 사양할 수 없음을 알기에, 바라노니 나를 위해 슬퍼하지 말라”라는 말들로 채워져 있다.

흔히 고난과 절망의 시간이 닥쳐오더라도 언젠가는 끝날 거라 믿으며 맞서 싸우라고 말한다. 노력을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격려한다. 하지만 끝내 그 시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실패와 좌절이 계속되고 질식할 것 같은 세상의 어둠이 더욱 짙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어떤 실존적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현실에 타협하는 것, 현실에 적응하는 것,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 현실을 거부하는 것, 그 어느 쪽이든 정답은 없다. 단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은 굴원의 삶이 왜 수천 년 동안 추모의 대상이 되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준태 동양철학자·역사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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