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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오늘만 살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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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윤정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윤정민 콘텐트팀 기자

윤정민 콘텐트팀 기자

한때 귀가 아플 만큼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수사권 조정’이다. 경찰이나 검찰을 취재할 땐 거의 매일 듣거나 말했다. 국민 다수가 필요하다고 느낀 일이었다. 영화 속 검사는 대부분 부패하거나 무능하거나 혹은 둘 다인데, 우린 현실에서도 그런 검찰의 모습을 너무 오래, 자주 봐왔다.

그러나 최근 미묘한 태도 변화가 느껴진다. 여론이 잠잠해진 데다, 버닝썬 사태 등으로 경찰의 신뢰가 무너진 것이 이유인듯하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은 이렇게 흔들릴 만큼 간단하고 얕은 문제가 아니다. 검찰이 제대로 견제받지 않은 채 저질러온 부정은 우리가 안은 병폐였다. 다른 병이 생겼다고 이미 곪은 곳을 방치하는 건 옳은 치료가 아니다. 경찰의 비리가 검찰의 품격을 높여주지도 않는다. 버닝썬 사태가 수사권 조정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걱정된다.

문제가 속한 차원은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지구 온난화’를 떠올린다. 역시 한때 귀 아프게 듣던 말이다. 그 심각성을 꼬마인 내 또래들도 다 알만큼 자주 강조했지만, 최근엔 미세먼지의 심각성 때문인지 한국 정부로부터 뒷전으로 밀린 느낌이다. 정부와 국회는 얼마 전 미세먼지를 이유로 LPG 차 규제를 완화했다. 그러나 미세먼지나 단기적 환경 비용 절감에 ‘미세한’ 도움이 된다고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한다는 점까지 무시해도 되는 건 아니다. 실제 정부가 온실가스 문제에 비교적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하다. 미세먼지를 가장 앞에 둘 순 있지만, 그 핑계로 다른 모든 환경문제를 덮어둘 순 없다.

수사권 조정이든 환경 문제든 식상하고 근시안적인 ‘강경 대응’보단, 근본적인 대책과 설계가 필요하다. 오늘만 사는 방식으론 거대한 국가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들을 올바로 해결할 수 없다. 영화에선 오늘만 사는 잘생긴 ‘아저씨’가 그 절실함으로 내일만 사는 악당을 무찌른 경우도 있지만, 정책과 정치는 아니다. 더 치밀해야 한다. 또한 국가의 내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언젠가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 더 멀리 보는 눈이 아쉽다.

윤정민 콘텐트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