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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이 성차별주의 전파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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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때론 바깥에서 더 잘 보일 때가 있다. 외부자로써 관점이 다르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어서다. 버닝썬 사태를 다루는 국내·외 시각차가 그렇다. 국내에선 경찰 커넥션, 마약·몰카 범죄, 연예인 등 등장인물에 관심을 둔다. 해외 언론은 만연한 성매매와 한글을 그대로 옮긴 ‘몰카(molka)’를 설명하며 한국 여성의 취약한 인권문제를 함께 다룬다.

한국 대중음악인 K팝이 성차별주의(sexism)를 조장한다는 주장은 해묵은 논쟁거리다. 여성 아이돌의 깡마른 몸매, 노출 의상, 섹시한 춤, 성형수술 관행을 특히 서구 사회에선 비판적 시각으로 본다. 아이돌 필수품인 ‘애교’는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aegyo’라고 쓸 정도로 한국 여성에 특화된 단어가 됐다. 미국 외교잡지 포린폴리시는 “이번 K팝 섹스 스캔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례”라고 전했다.

대형 기획사 대표나 연출자 등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움직이는 권력은 대부분 남성이다. 황금 시간대 예능 프로그램에 남자 연예인들이 떼로 나와 주말을 점령한 지 오래다. 블룸버그통신은 취재원을 인용해 “여느 나라처럼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보이 클럽”이라고 했다. 놀기 좋아하는 남자들이 모여 만든 클럽이란 뜻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해마다 조사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가운데 7년 연속 최하위다. 남녀 임금 격차(34.6%) OECD 꼴찌도 한국이다. 열악한 여성의 지위, 구성원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버닝썬 사태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K팝이 젠더 불평등을 강화한다는 실증 연구도 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연구팀이 100개국의 K팝 팬 63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콘서트·음원·굿즈 같은 K팝 상품에 돈을 많이 쓸수록 성 평등 인식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 금액과 성 평등 인식 간 상관관계는 성 불평등이 큰 나라일수록 더 높았다. K팝이 성차별적 문화와 가부장적인 성 역할을 강화한다는 결론이다.

문제는 K팝 산업이 한국 경제성장의 중요 동력이란 점이다. 삼성 스마트폰, 현대 자동차 다음으로 마땅한 글로벌 수출 모델이 보이지 않자 정권마다 K팝을 띄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2의 방탄소년단, 제3의 한류”를 언급했다. 대통령 해외 순방에 K팝 스타의 콘서트가 공식 일정으로 잡힐 정도다. 정부가 K팝을 대놓고 후원하려면 정치적 올바름을 먼저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차별을 옹호하는, 후진적인 나라로 인식될 수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21세기 중요한 덕목이다.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