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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간신히 열차표 구해서 탔더니…“어라 빈자리 더 있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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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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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 좌석 할당제로 인해 단거리 승객은 상대적으로 표 구하기가 어렵다. [중앙포토]

구간 좌석 할당제로 인해 단거리 승객은 상대적으로 표 구하기가 어렵다. [중앙포토]

서울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김 모(45)씨는 업무 때문에 고속열차를 이용해 오송역(충북 청주) 부근으로 종종 출장을 갑니다. 주로 스마트폰에 깔아놓은 코레일이나 SR(수서 고속철도)의 열차예매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서 오송역까지 가는 기차표를 구하는데요.

운영사의 ‘구간 좌석 할당제’ #거리 따라 표 할당 비율 달라 #장거리 더 많고, 단거리 적어 #빅데이터 활용, 비율 수시 변동

간혹 대부분의 좌석이 매진돼 어렵게 표를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해당 열차를 타보면 의외로 비어있는 자리들이 눈에 띈다고 말하는데요. “열차 예매 앱에서는 좌석이 없다고 표시되는데 왜 객실에는 빈자리가 곳곳에 있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열차를 이용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간신히 표를 구해서 탔더니 막상 열차 안에는 빈자리가 더 남아 있었던 기억 말입니다.

이런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열차운영 회사들이 시행하고 있는 ‘구간 좌석 할당제’의 영향이 가장 커 보입니다. 구간 좌석 할당제는 쉽게 말해 열차운행 구간을 거리에 따라 몇 개 그룹으로 나눠 판매할 좌석의 비율을 미리 정해놓는 건데요.

좌석 대부분이 팔린 것으로 표시된 SR 앱 화면. [중앙포토]

좌석 대부분이 팔린 것으로 표시된 SR 앱 화면. [중앙포토]

이런 기법을 동원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빈 좌석을 최소화하고 운영을 보다 효율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열차 운행 구간을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로 나눈 뒤 열차표를 각각 30%, 30%, 40%씩 배정해 놓는 겁니다.

이처럼 비율을 나눌 때는 노선과 시간대, 탑승률 등 다양한 빅데이터를 활용한다고 하는데요. 이 경우 앞의 사례처럼 서울~오송 구간은 단거리에 해당해 예매 가능한 표가 전체의 30%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70%의 좌석은 많이 비어있다고 하더라도 구매할 수가 없는 겁니다.

반면 먼 거리를 가는 승객은 단거리 승객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장거리에 40%를 배정했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단거리, 중거리 몫까지 100%의 좌석을 예매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고속철도가 장거리 수송을 목적으로 건설된 만큼 그 취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게 운영사의 설명입니다.

물론 장거리 승객이 지불하는 요금이 더 많기 때문에 운영사의 수입에 보탬이 되는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 중거리 승객은 단거리 몫을 합해 60%의 좌석에서 선택이 가능합니다.

그러다 보니 단거리 승객은 일단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장거리와 중거리 표를 많이 배정해 놓았는데 다 팔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요? 운영사들은 열차 출발을 앞두고 일정 시간이 되면 구간 좌석 할당제를 해제한다고 합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렇게 되면 단거리 승객도 남은 좌석들에 한해서 제한 없이 표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단거리 열차표를 구하기 어려우니까 우선 장거리표로 끊어 놓은 뒤에 열차 출발이 임박해서 반환하고, 그때 풀린 단거리 좌석을 다시 사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도 있으실 거 같은데요.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조금만 더 따져보면 상황은 다릅니다. 우선 열차 출발이 임박해서 표를 반환하면 ‘반환수수료’를 물어야 하는데요. 코레일의 경우 월~목요일에는 출발 3시간 이내에 표를 반환할 경우 요금의 10%를 수수료로 내야 합니다. 만일 서울발 부산행 KTX라면 6000원 가까운 반환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겁니다. 금~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출발까지 3시간 넘게 남았더라도 당일 취소인 경우 반환수수료가 5%나 됩니다. 3시간 이내는 역시 10%입니다.

또 할당제가 풀린 열차표는 순식간에 팔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잡을 확률이 그리 높지도 않다는 게 운영사 측 얘기입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간혹 팔리지 않거나 막판에 반환된 표가 있기 때문에 열차에 빈 좌석이 보이게 되는 겁니다. ‘구간 좌석 할당제’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복잡한 고난도의 기법이 작동한다고 합니다.

최근 몇 달간의 노선별, 시간대별 탑승률과 공실률 등 다양한 빅데이터를 조합해 구간 좌석 할당 비율을 설정한다고 하는데요. 코레일의 경우 하루 3000회가 넘는 열차 운행과 400만 명에 육박하는 승객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매일 쌓인다고 합니다.

이러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전략을 짜기 때문에 같은 노선의 열차라도 그때그때 할당 비율이 달리 적용된다고 합니다. 또 할당제를 해제하는 시간도 수시로 바뀐다고 하는데요. 사실 ‘구간 좌석 할당제’의 세부내용은 운영사들이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영업기밀입니다.

그래서 대략적인 내용도 공개를 꺼리는 게 사실입니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적절한 전략을 쓰느냐에 따라 순식간에 수 억 원의 수익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구간 좌석 할당제 운용을 사내 최고의 에이스 직원에게 맡기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다양한 등급과 조건으로 공급되는 비행기 티켓 못지않게 열차 좌석의 판매에도 상당히 정교한 과학적 기법이 동원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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