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26일 북한 최고위직을 지낸 의열단장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 수여에 대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피 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을 국가보훈 대상자로 서훈할 것인가’라는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문에 “의견을 수렴 중이며 (서훈 수여) 가능성은 있다”고 답변했다.
피 처장은 “지금 현재 기준으로는 되지 않는다”면서도 “우리가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북한 정권에 기여했다고 해서 (서훈 수여를) 검토하지 말라고 하는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북한과 6ㆍ25전쟁을 치렀지만 그런 부분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 의원은 “김 선생의 공이 큰 것은 맞지만, 북한 정권 수립에 직접 기여한 사람이 보훈 대상자가 되면 현실적으로 김일성도 훈장과 보훈연금을 줘야 한다”며 “그 손자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훈연금을 줘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김원봉은 1947년 남로당의 지도자인 박헌영과 함께 월북했다.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해 국가검열상(검찰총장에 해당)에 임명됐고, 노동상(노동부장관)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6ㆍ25 전쟁이 끝나고 북한에서 남로당 계열에 대한 대대적 숙청작업이 진행됐을 때 김원봉도 함께 숙청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김원봉에 대한 복권작업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2015년 8월 15일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김원봉 등을 다룬 영화 ‘암살’을 본 뒤 “이제는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 2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보훈처의 자문기구인 국민중심보훈혁신위원회는 1월 “김원봉처럼 남북에서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는 독립운동가를 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보훈처도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가능한지에 알아보기 위해 정부법무공단 등 3곳의 기관에 법률 검토를 의뢰했다고 한다.
이같은 보훈처의 유공자 지정 움직임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경희 영산대 교수는 “대한민국의 건국은 공산주의와의 투쟁의 산물이다”라며 “당시 공산주의는 반(反)대한민국 노선을 명확히 했다. 종전도 안 됐고 통일도 안 했는데, 친북 인사를 유공자로 지정하는 건 다소 이르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현재 독립유공자 지정방식 변경은 철저히 문 대통령의 선호가 반영되고 있다”며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어도 독립운동을 했다면 다 유공자로 하겠다는 뜻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손혜원 전 의원의 부친인 손용우 씨가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한 이력 때문에 보훈심사에서 6차례 탈락했다가 지난해 7번째 신청 만에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혜의혹이 일자 검찰은 20일 보훈처를 압수수색했다.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은 독립유공자 선정 과정에서 피 처장이 손 의원을 만난 것은 특혜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피 처장이 “이해당사자라기보다는 그런 사항이 있다고 해서 이야기를 듣고, 기준을 완화하고 있으니 다시 신청해보시라고 했다”고 해명했다. “그런 전례가 있느냐”는 질문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