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 체험 트럭을 운영하는 브이리스VR은 지난 6일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2~4년 내 법령 정비해 정식 허가, 지연되면 임시 허가로 시장 출시)’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규제가 줄기는 커녕 오히려 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정부・학교・지방자치단체 행사 등 특정한 곳에서만 운영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체관람가 영상물만 상영하도록 제한하면서 “대학 행사를 가도 뽀로로를 틀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12세 이상, 15세 이상 관람가능 영화도 못튼다는 것이다. VR 트럭이 구 단위로 이동할 때 마다 내야 했던 안전성 검사비용 60만원이 3개월에 한 번으로 줄어든 것이 그나마 건진 성과였다.
26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주최로 서울 대치동 현대타워에서 열린 ‘2019 혁신격전지 탐색, 규제 샌드박스’ 행사에서 이승익 브이리스VR 대표는 이런 고충을 털어놨다. 지난 1월 1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의 ICT 규제 샌드박스가 본격 시동을 걸었지만, 이날 행사에서는 업계의 다양한 호소가 쏟아져 나왔다. 이승익 대표는 “VR 트럭을 보지도 않고 체험도 안 해본 사람들이 심사한다니, 알래스카 인이 아프리카 코끼리를 검색엔진으로 검색만 해보고 판단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람도, 국가도, 산업도 변하는데 법만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또 규제 개혁이 대기업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규제 샌드박스 아이템이 기존 대기업, 중견기업이 하기 좋은 아이템이다 보니 저항이 많다. 정작 샌드박스 대상이어야 할 스타트업의 아이템은 간신히 통과해도 자료 준비 비용과 법률적 문제로 잘 진행이 안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정부 지원은 사실상 조족지혈”이라고 말했다.
행정편의적인 샌드박스 신청 절차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ICT 규제 샌드박스 상담센터의 송도영 변호사는 “스타트업은 대기업처럼 충분한 인력과 자금이 많지 않고, 각종 협회와 이익단체와의 싸움으로 이미 지친 경우가 많다”며 “(샌드박스가)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투자 도움을 주고, 서류작성을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30~40장짜리 규제 샌드박스 신청서 작성 자체가 스타트업 종사자들로서는 쉽지 않다”라며 “아직 시장이 없는데 시장분석 자료를 요구하거나, 이용자 보호 방안, 개인정보보호 방안 등 기존 규제를 풀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전제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