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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엔 "국토장관 부적격자!" 저녁엔 "미안한데 GTX는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5일 열렸던 최정호 국토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마라톤 청문회’였다. 오전 10시에 시작돼 오후 11시쯤에야 끝났다. 야당 의원들은 부동산 투기 의혹을 앞세워 후보자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여당 의원들은 “맷집 좋네. 얼마 안남았다”(서형수 민주당 의원)며 방어에 안간힘을 쓰는 후보자를 다독였다.

 시작은 나름 뜨거웠다. 하지만 주목도가 떨어진 저녁 무렵, 청문회장 분위기는 슬그머니 변하기 시작했다. 여야 의원 일부가 “전문성에는 이견이 없다”며 후보자를 칭찬하더니 곧이어 ‘지역구 민원’이 쇄도했다. 검증을 위한 청문회인지 신임 장관에게 부탁하는 자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지역구 민원 행태를 유형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다.

 ①불도저형=이현재 한국당 의원(경기 하남)은 후보자를 향해 4차례나 서울 지하철 9호선의 미사신도시 연장 문제를 질의했다. “검토해보겠다”는 후보자 답변에 “국가가 계획을 세웠으면 강제해야 된다!”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김철민 민주당 의원(안산 상록을)도 지역 현안으로 후보자를 채근했다. 신안산선 조기착공 사업을 언급하더니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사업이 지연되면 안된다”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②밀당형=민경욱 한국당 의원(인천 연수을)은 ‘나쁜남자’로 컨셉을 잡은 듯 했다. “국토부 장관 부적격자”라며 맹공을 퍼붓더니 마지막 질의 때 돌연 “(기자 시절) 워싱턴 특파원 때부터 알던 사이인데 너무 몰아붙였다”며 사과했다. 후보자 얼굴에 화색이 도는 그 새를 놓치지 않고 민 의원은 “GTX-B 노선 진행 상황을 보고받은 게 있나. 제 지역 송도에서 서울 교통편이 아주 열악하다”며 지역 현안을 챙겼다.

③풀뿌리형ㆍ실적과시형=이용호 무소속 의원(전북 남원임실순창)은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 ‘옥정호수변도로’ 등 지역 사람들이 아니면 생소한 사업을 들고 나와 후보자에게 질의를 이어갔다. 홍철호 한국당 의원(경기 김포)은 청문회 후 “'김포한강선은 최우선 과제'라는 장관 후보자의 답변을 끌어냈다”며 보도자료를 돌렸다. 자신의 ‘청문회 실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현장에서 “청문회가 우리 지역 민원을 부탁하는 자리냐. 위원장이 교통정리를 해달라”(이은권 한국당 의원)는 목소리도 나왔다. 물론 한국당(안산 단원을) 소속 박순자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박 위원장의 서면 질의도 ‘신안산선 복선전철’, ‘반월시화국가산단 재생’, ‘대부도 뉴딜사업’ 등 민원성으로 채워졌기 때문일까.

 청문회는 장관 후보자로서 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자리다. 지역구 민원을 쏟아내라고 청문회를 연 게 아니란 말이다. 한 국토위원은 “국토위에서 제일 보기 싫은 건 인사청문회 때 민원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민원 청문회’가 그만큼 국회 국토위의 고질병이란 의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민원 할 게 산더미인데 미리 좀 잘 보여 두려는 것”이란 다른 국토위원의 담담한 해설을 듣고는 아연실색한다. 청문회는 청문회다워야 한다.

한영익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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