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나를)공부시키지 못해 한이 됐다는 말을 남기셨어요. 꼭 졸업장을 들고 산소에 가서 어머니께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선생님, 여러분(졸업할 수 있게)저 좀 도와주세요”
70대 여성의 짧은 자기소개에 교실은 눈물바다가 됐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미어지는 ‘엄마’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이미 손주를 보고 예순과 칠순을 훌쩍 넘은 할머니였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였다.
충남 홍성여중 부설 방통중 60~70대 학생들 #가난 때문에 학업 중단했던 할머니 학생 다수 #평소엔 원격수업, 격주 토요일마다 학교 출석 #쳬육대회·소풍에다 7월·12월엔 기말고사 치러
주말이던 23일 오후 충남 홍성군 홍성여중 본관 2층 3학년 8반 교실에 60~70대 20명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난 9일 입학식을 갖고 중학교 생활을 시작한 홍성여중 부설 방송통신중학교 신입생들이었다. 3학년 8반 교실 문 앞엔 ‘1-2’라는 문패도 붙었다. 방통중 1학년 2반이란 뜻이다.
학생들은 돌아가며 교단에 올라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과 나이를 시작으로 자신이 걸어왔던 고단한 삶을 얘기할 때는 설움에 북받친 듯 참았던 눈물도 흘렸다. 가난에, 맏딸이라는 이유로, 줄줄이 딸린 동생들 때문에 배움을 중단해야 했던 사연들이 드라마처럼 이어졌다.
학생들은 너나없이 손수건을 꺼냈다. “어쩌면 저렇게 나랑 같을까, 우리 어머니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교단에서 묵묵히 제자들의 소개를 듣던 김희정(여·57) 담임교사도 결국 눈물을 보였다.
김희정 교사는 “교직 30년 만에 가장 아름답고 멋진 자기소개를 들었다”며 “서로 격려하고 끝까지 함께 하자는 말을 들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마지막 학생의 자기소개를 끝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눈물바다는 금세 웃음바다로 바뀌었다. 바로 이어진 점심시간,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꺼냈다. 함께 점심을 하며 교실 분위기는 봄바람처럼 따뜻해졌다.
이날은 지난 9일 입학식에 이어 두 번째로 학교에 나온 날이었다. 정식 수업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방통중 학생들은 평소엔 원격으로 수업을 듣고 격주 토요일마다 학교에 나와 ‘출석수업’을 받는다. 이렇게 학교와 집에서 공부하면 3년 후에는 졸업장을 받는다. 홍성여중 부설 방통중 신입생의 평균 연령은 63세다. 최고령은 77세, 막내는 58세다. 두 개 학급에 각각 26명, 25명이 배정됐다.
충남에는 지난해 천안중에 부설 방통중이 개설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지리적 여건으로 충남 서북부나 남부지역 주민은 이용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홍성여중에 방통중이 새로 개교했다. 소식을 접한 만학도 95명이 지원, 2대 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정원이 50명인 탓에 결국 연장자를 우선 선발했다.
입학식에서 대표 선서를 한 임승연(여·77)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제때 공부하지 못한 게 늘 한스러웠다”며 “가까운 지역에 방통중이 생겨 뜻을 이루게 됐고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1시간 넘게 시외버스틀 타고 통학하는 번거로움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점심시간 50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자 컴퓨터 교육(ICT)이 시작됐다. 교재를 들고 컴퓨터실로 이동했다. 커서, 마우스, 탭… ‘인터넷’이라는 단어 말고는 모두가 생소했다.
컴퓨터만 보면 겁부터 나던 학생들은 “제가 하는 때로 따라만 하시면 아무 문제 없다. 걱정하지 마시라”는 강사의 말을 듣고서야 겨우 한 시름을 덜었다. 원격수업을 들으려면 방통중 사이트에 접속해 등록하고 수업 진행과정도 확인해야 한다. 컴퓨터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홍성여중 3학년 학생 5명은 강사의 지시에 따라 할머니·할아버지 사이를 오가며 분주하게 컴퓨터 사용 방법을 알려줬다. 안지현(15)·김서진(15)양은 “엄마·아빠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당황하지 않게 천천히 알려드리라고 하셨다”며 “후배님들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방통중 신입생들은 홍성여중 일반 학생들처럼 모든 교과수업을 받는다.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영어수업’도 거쳐야 한다. 5월엔 체육대회도 열고 10월에는 소풍(현장체험학습)도 간다. 7월과 12월엔 무시무시한(?) 기말고사도 치르게 된다.
마지막 수업인 6교시를 마친 학생들은 담임교사의 지시에 따라 종례와 청소를 했다. 집에서는 지겨울 만큼 했던 청소가 학교에서는 즐거움이었다. 청소라고 해야 책상과 의자를 정리하는 수준이었지만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아쉬운 듯 교실을 떠나지 못했다.
2주 뒤면 다시 만날 사이인데도 “조심히 가요. 토요일에 만나요”라는 인사를 몇 번이나 나눈 뒤에야 교문을 나섰다.
홍성=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