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드래곤, 탑에 이어 승리까지. ‘버닝썬’ 클럽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그룹 빅뱅에서 활동한 승리(본명 이승현)를 대마초 흡연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소환해 조사했다. 대마초는 국내 실정법상 마약으로 분류돼 재배, 유통은 물론 흡연이 엄격히 금지돼있다. 한때 한류 대표그룹이었던 빅뱅은 멤버 5명 중 3명이 잇따라 ‘대마초 게이트’에 연루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국내 네티즌들은 빅뱅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를 “약국(YG)”이라 일컬으며 손가락질하고 있다.
[뉴스 따라잡기] #美 월가 거물들 대마초에 왜 관심갖나 #AI·줄기세포와 함께 새 투자처로 각광
#2. 마리화나는 대마초의 또 다른 이름이다. 캐나다의 마리화나 제조·판매 기업 ‘오로라 캐나비스(Aurora Cannabis)’가 이달 1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의 억만장자 투자가 넬슨 펠츠를 전략 고문으로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펠츠는 ‘트라이언파트너스’라는 투자사를 세워 주주의 경영 참여권을 공격적으로 주장해왔다. 그는 삼성전자·현대차에 맞서 유명해진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 큰 손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월가 거물인 펠츠가 오로라에서 두 번째로 큰 주주가 될 수 있는 스톡옵션도 손에 넣었다며 “월스트리트가 대마초(cannabis)에 빠져들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시기에 두 나라에서 대마초의 명과 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국 유흥가에는 몰락을, 미국 투자시장에는 희망을 가져왔다. 국내 연예인들의 대마초 흡연은 과거 이따금 불거진 일이다. 반면 클럽도 아닌 투자시장에, 그것도 세계 돈의 흐름을 움직이는 미국 월스트리트에 대마초 바람이 분다는 소식은 이례적이다. 대마초가 글로벌 투자처로 각광받게 된 이유는 뭘까. 배경과 앞으로의 전망을 짚어봤다.
캐나다 발(發) 대마초 합법화…투자자 주목
변화무쌍한 투자판을 반짝 지나가는 이색 유행으로 취급하기엔 최근 대마초 투자의 성장세와 주목도가 심상치 않다. 펠츠같은 거물급 인사가 대마초 산업에 본격 뛰어드는가 하면,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가 방송에 출연해 “대마초에 극도로(extremely)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로저스는 지난 4일 인스타그램 동영상 서비스인 IGTV와의 인터뷰에서 “(대마초는) 이미 큰 시장이 형성됐지만 점점 더 커지고 또 커질 것”이라며 낙관론을 폈다. 그는 “미국인의 90%가 이제 합법적으로 대마초를 구입할 수 있다”면서 “모든 캐나다인, 콜롬비아인에 이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대마초 구입 자격을 얻고 있으며 올바른 회사와 적절한 가격을 찾으면 대마초는 훌륭한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 대마초 투자 열풍에 불을 당긴 건 지난해 10월 캐나다 정부가 기호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일이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그간 음성적으로 거래돼 온 마리화나를 양지로 끌어내는 대신, 청소년들의 흡연을 강력히 규제하겠다며 이 같은 조치를 단행했다. 2013년 대마초 전면 합법화를 선언한 우루과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옛 ‘골드 러시’에 비견되는 ‘그린 러시’
주요 7개국(G7) 중 처음으로 캐나다가 의료용과 기호용 모두를 자유롭게 사고팔도록 하면서 대마초 관련 기업들은 주식시장에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 토론토증권거래소(TSX)에서 지난해 12월까지 9개월 간 1억4700만 캐나다달러(1660억원)어치 거래량을 기록한 대마초 생산회사 ‘캐노피 그로쓰(Canopy Growth)’가 대표적이다. 2017년 여름까지 주당 10달러 미만을 기록하던 이 회사 주가는 지난해 크게 뛰어 현재 6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시가총액이 210억 캐나다달러(17조8000억원)에 달한다.
FT는 이 회사가 자국 증시뿐 아니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도 상장돼있다는 점을 상기했다. 이어 “뉴욕거래소와 나스닥은 사법 관할권을 속지주의로 적용해 상장을 허가한다”고 설명했다. 캐나다 기업이 캐나다에서 합법적으로 사업을 영위한다면 미 증시 상장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캐노피 그로쓰 외에도 오로라 캐나비스, 크로노스(Cronos), 틸레이(Tilray) 등 여러 대마초 관련 기업이 뉴욕 증시에서 거래된다.
이들은 연초 대비 많게는 두 배 까지 주가가 올랐다. 대마초 관련 종목을 편입한 상장지수펀드(ETF)도 연초 이후 뉴욕 증시 종합지수(S&P500) 수익률을 2~4배 앞지르는 성과를 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마초 투자 유행을 ‘그린 러시(Green Lush)’라고 부르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19세기 미 서부 금광 개척 행렬을 뜻한 ‘골드 러시’에 빗댄 말로, ‘그린’은 풀(grass), 잡초(weed) 등과 함께 대마초를 암시적으로 일컫는 속어다.
90년대 닷컴 열풍 재현?…“美 대선 지켜봐야”
전문가들은 대마초 투자 열풍이 지속될 근본 요인으로 “없던 시장이 새로 생겨난다”는 사실을 꼽는다. “하나의 거대한 글로벌 산업 시장이 형성되는 초창기에 투자에 뛰어들 기회가 결코 흔치 않고, 지금이 바로 그럴 때”라는 오로라 캐너비스 임원급 간부 캠 배틀리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은 미국 내 대마초 합법화가 얼마나 빨리, 광범위하게 진행될지가 관건이다. 월가에서는 미 정계가 오는 2020년 차기 대선에서 정파를 막론하고 대마초 합법화를 주요 이슈로 제시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 의료용 대마초는 미국 내 30여 개 주에서 합법이다. 기호용은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등 9개주에서만 허용하고 있다. 한때 트럼프 행정부에서 공보 수석으로 일했던 블록체인·암호화폐 전문가 안토니 스카라무치는 올해 투자 컨퍼런스에서 인공지능, 줄기세포와 함께 대마초를 3대 이슈로 선정했다.
다만 차세대 투자처에는 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처럼 대마초에도 투자실패 위험이 따르는 게 당연한 생리다. FT는 “90년대 닷컴 열풍을 타고 등장한 수많은 혜성같은 기업 중 아마존 한 곳만 공룡이 됐듯, 대마초 투자자들 사이에도 명과 암이 분명히 갈릴 것”이라는 전망을 전했다.
국내에서는 ‘대마초=범죄’ 공식이 여전히 견고하단 점도 잊지 않는 게 좋다. 버닝썬 사건 이후 마약류를 향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됐다. 한국 증시에서는 마약과 술, 담배, 도박 등 관련주를 한데 묶어 ‘죄악주’라고 부른다. 빅뱅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연초 5만원대를 바라보다 버닝썬 사건·국세청 세무조사 등 악재가 겹쳐 최근 3만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