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발 ‘경기침체의 전조’가 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이른바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 유럽과 뉴욕 증시에서 주요 주가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한 데 이어 25일 아시아 주요국 주가지수가 급락했다.
미 장단기 금리 12년 만에 역전 #1~2년 내 경기침체 신호로 읽혀 #어제 한·중·일 증시 2~3% 급락
25일 일본 닛케이255지수와 한국의 코스피, 홍콩 항셍 지수, 중국 상하이·선전 지수는 약속이나 한 듯이 개장과 함께 곤두박질쳤다. 닛케이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01%(650.23포인트) 급락했다. 2만1627.34에서 출발해 2만1000선이 무너진 뒤 2만977.11포인트로 마감했다.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92%(42.09포인트) 하락했다. 홍콩 항셍은 2.03%,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97% 빠지는 등 아시아 투자 심리가 일제히 위축됐다. 글로벌 경기 후퇴에 대한 우려에 지난주 유럽과 미국에서 주요 주가지수가 급락한 여파가 아시아에 상륙했다.
‘R의 공포’가 시작된 직접적인 계기는 뉴욕 채권 시장이었다. 22일 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가 12년 만에 처음으로 역전됐다. 이날 장중 한때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2.42%까지 급락하면서 3개월물 국채 수익률(2.47%)과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장·단기 수익률 곡선 역전은 1~2년 이내에 경기침체를 예고하는 신호로 인식된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1955년 이후 한 번만 빼고 곡선 역전이 경기침체를 선행했다. 2007년 3개월물과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역전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게 한 예다.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은 게 일반적이다. 장기로 돈을 빌리면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단기채보다 수익률이 높다. 하지만 미래 경기 전망이 어두워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장기채 수요가 늘어나면서 채권 가격이 오르고 금리는 내린다. 이 때문에 장기채 금리가 단기채보다 떨어지는 걸 시장은 경기 침체를 예고하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아직 역전이 발생하지 않은 2년물과 10년물 수익률 곡선이 더 광범위하게 쓰이지만, 최근에는 3개월과 10년물 금리 격차가 가장 믿을 만하다는 조사도 있다. 3개월짜리 초단기 국채수익률이 10년물을 넘어서자 충격은 채권 시장을 넘어 증권 시장으로 번졌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나치게 ‘비둘기’적 행보를 보인 것도 장기 금리 하락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일(현지시간) Fed는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연내 기준금리 동결을 시사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12월 제시한 2.3%에서 2.1%로 0.2%포인트 내렸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2.0%에서 1.9%로 낮췄다. 시장은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됐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했다.
유로존 경기의 벤치마크인 독일 10년물이 2016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도 22일 벌어진 ‘사건’이다. 이날 유로존 3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6년 만의 최저치인 51.3이라는 발표가 한몫 거들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경기 침체 우려는 아직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Fed가 금리 동결과 긴축 정책 조기 중단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예고하자 금융 시장이 일시적으로 긴장한 것이지 미국 경기침체를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