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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북한의 연락사무소 철수 17시간 뒤 "추가제재 철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재무부가 21일(현지시간) 내놓은 대북 추가 제재를 만 하루도 안 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제재'를 철회할 것을 지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미 재무부 추가제재→북 연락사무소 철수→추가 제재 취소 #트럼프, 북한과의 협상 동력 유지 위해 추가제재 취소한 듯 #미 행정부 '멘붕', 백악관은 "트럼프는 김정은 좋아해" 해명 #'추가 제재'는 "다음주 발표하려던 대규모 제재"라는 분석도

정부 차원의 대북제재 발표를 철회하는 전례 없는 사태가 일어난 건 22일 낮 1시 22분(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재무부가 오늘 기존 대북제재에 추가적 대규모 제재를 더한다고 발표했다. 나는 오늘 이런 추가 제재의 철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가 중국 해운사 2곳 등에 대한 대북 추가제재를 발표한 것은 하루 전인 21일 오후 2시 3분.

당장 재무부 발표가 '오늘'이라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은 '어제'(21일)의 것을 착오했거나, 혹은 '다른' 추가 제재 방침을 이날 보고받고 이를 막았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무부의 발표 내용을 사전에 보고받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뭔가 '다른 상황'이 생겼기 때문에 트럼프가 마음을 바꿨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실제 21일 미 재무부가 중국 해운사를 제재하는 동시에 국무부 및 해안경비대와 함께 북한의 불법 해상거래 주의보를 갱신하는 조치를 발표한 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미국, 그리고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협력국들은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고, 재무부는 우리의 제재를 계속 이행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과의 불법적인 무역을 가리기 위해 기만술을 쓰는 해운사들은 엄청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존 볼턴 보좌관은 "재무부가 중요한 조치를 취했다. 모두가 북한의 제재 회피에 연루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활동을 재검토해보라"는 '환영' 트윗까지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1대1 단독 정상회담을 하던 중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1대1 단독 정상회담을 하던 중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의 트윗 이후 미 행정부는 벌집 쑤신 듯 소란스러웠다. 미 언론들이 일제히 미 재무부에 입장을 문의했다. 하지만 재무부는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미 국방부도 모든 언론의 질의에 "백악관에 물어보라"고 공을 넘겨버렸다.

CNN은 "여러 백악관 관계자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혼란스러우며 정확히 어떤 것(철회를 지시한 제재)을 가리키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고 보도했다.
플로리다주 휴양지 마라라고로 날아간 트럼프를 대신해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좋아하며 이러한 제재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문을 전달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만에 재무부의 대북제재 발표를 철회한다고 함으로써 자신이 관장하는 행정부처를 약화시키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취임 이후 행정부 내 의사결정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하고 즉흥적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란 해석도 나온다.

CNBC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에서 날짜를 잘못 말하는가 하면 제재 규모가 '대규모'가 아닌데도 '대규모'라는 표현을 썼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트럼프가 언급한 '대북 추가제재'는 전날 미 재무부가 발표한 제재가 아니라 다음주에 발표하기 위해 준비 중인 대규모 제재를 일컫는 것이란 보도들이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정부 소식통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철회한 제재는 중국 해운사 2곳에 대한 제재(21일)가 아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존 허드슨 기자도 자신의 트위터에 "대통령이 언급한 제재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제재"라면서 "트럼프의 모호한 트윗으로 인한 중대한 의사소통 실패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즉 "재무부가 오늘 기존 대북제재에 추가적 대규모 제재를 더한다고 '보고'했다"고 쓰려던 것을 "발표했다"고 잘못 쓴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는 트윗을 수정하지 않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웃으며 작별하고 있다. / 사진: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SNS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웃으며 작별하고 있다. / 사진: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SNS

아직 '추가 대북제재'가 뭘 뜻하는지에 대해 진상은 확실치 않지만 트럼프가 '추가 제재 철회' 결정을 내린 배경으론 최근 북한의 움직임이 거론된다.

첫째는 21일 미 재무부의 제재 발표 이후 뭔가 북한에 '특이 동향'을 감지했을 가능성이다. 북한은 미 재무부의 제재 발표가 나온 지 6시간 후인 22일 오전 9시 15분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북한 측 인원을 전원 철수시켰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지난주 비핵화 협상 중단 및 핵·미사일 실험 재개 가능성을 내비친 이후 중국·러시아·유엔 주재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였다. 북한이 뭔가 극단적 결단을 할 지 모른다는 정보를 접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협상의 동력을 남겨두기 위해 일보 후퇴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입장에선 북한이 핵, 미사일 실험에 나서게 될 경우 하노이 회담으로 얻은 점수를 다 까먹고 "(김 위원장으로부터) 약속을 받았다더니 이야기가 다르지 않느냐"는 집중 포화를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는 추가 제재에는 하노이에서도 부정적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지난달 28일 정상회담 직후의 기자회견 당시 '추가 제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트럼프는 "이미 제재는 강력한 상황이고, 제재를 늘리는 것은 말하고 싶지 않다. 북한에도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그들도 살아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일단 북한으로선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파악한 뒤 차후 대응 방향을 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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