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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한국 선박 블랙리스트에 처음 올려…한·미 공조 삐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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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호 05면

지난 13일 평양의 한 식품공장 근로자가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작업하고 있다. 생산을 독려하는 현수막이 눈에 띈다. [AP=연합뉴스]

지난 13일 평양의 한 식품공장 근로자가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작업하고 있다. 생산을 독려하는 현수막이 눈에 띈다. [AP=연합뉴스]

미국이 대북 독자제재를 추가로 내놓았다. 북한의 불법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중국 해운업체와 각국 선박 수십 척에 대한 제재다. 미국이 발표한 ‘북한 제재 주의보(North Korea Sanctions Advisory)’엔 한국 선박이 포함돼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한국 선박에 대한 직접 제재는 아니지만 북한과의 불법 거래를 의심하고 이를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경고다. 일각에선 한·미 간 대북 공조가 삐걱거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대북 독자제재 강화한 미국 #석유·석탄 운반 각국 배 95척 공개 #동맹국 선박으론 한국 ‘루니스’ 유일 #김정은 탔던 벤츠 운송사도 제재 #미, 대화와 압박 병행 전략 재확인

므누신 “대북 불법 무역 업체 위험할 것”

미 재무부는 21일(현지시간)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이날 ‘북한 제재 주의보’도 갱신하고, 석유와 석탄의 선박 간 불법 환적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각국 선박 95척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발표된 리스트에 북한 선박 24척만이 올랐던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불법 환적의 틈을 철저히 메우겠다는 조치로 해석되지만, 여기에 동맹국 선박으론 ‘루니스(LUNIS)’라는 한국 선적의 선박이 유일했다.

루니스호는 총 톤수 5412t 규모의 석유화학제품 운반선으로 부산 A해운사가 소유주다. 해양수산부의 올해 1분기 중점관리대상(고위험 선박)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미 정부는 불법 환적 선박의 기항지로 부산·광양·여수항 등 3개 항구도 지도에 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전직 고위 관리는 22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한국 선박이 처음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은 분명한 메시지로 보인다”며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리는 “이 정도 사안이라면 사전 협의를 통해 정리하면 될 텐데 리스트에 올렸다는 것 자체가 우려할만한 상황”이라며 “만약 미국이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거나 발표가 임박해서 했다면 더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여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나가겠다”고만 밝혔다.

한·미 동맹의 이완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미국 쪽에서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북핵 협상의 막후 채널을 맡았던 앤드루 김 전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은 지난 21일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의 면담에서 “핵 협상 동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한·미 간 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미 재무부는 또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혐의로 랴오닝 단싱 국제운송과 다롄 하이보 국제화물 등 2곳의 중국 해운회사를 제재명단에 올렸다고 밝혔다.

랴오닝 단싱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보고서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번호판 없는 벤츠 리무진 차량 운송에 관여했다”고 명시된 업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북 압박을 강화해 북핵 ‘빅딜’을 관철시키겠다는 의도다.

미 재무부는 “랴오닝 단싱은 유럽연합(EU) 국가에 주재한 북한 조달 관련 당국자들이 북한 정권을 위해 물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수시로 기만적 행태를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김 위원장 전용차량 벤츠 조달을 명시하진 않았다. 다만 유엔 안보리 제재보고서는 “이들 벤츠 상당수가 중국 기업가인 조지 마의 지시에 따라 캘리포니아 롱비치항에서 중국 다롄으로 운송됐고, 그 후 랴오닝 단싱의 컨테이너에 선적됐다”고 밝혔다.

다롄 하이보는 미국의 제재대상으로 지정된 북한의 백설무역회사에 물품을 공급하면서 제재 회피를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정찰총국(RGB) 산하인 백설무역회사는 북한산 금속이나 석탄을 수출하거나 구매한 혐의 등으로 이미 제재 대상에 올라있다.

중국에 제재 공조 약화시키지 말라 경고도

이번 미 정부의 대북 독자제재는 올 들어 처음이다.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해 제재와 대화를 병행한다는 미국의 방침이 허언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 중국 정부에 대해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를 약화시키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로도 읽힌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날 “미국, 그리고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협력국들은 북한의 FFVD를 달성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선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이행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면서 “북한과의 불법적인 무역을 위해 속임수를 쓰는 해운사들은 엄청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중국이 올해 북한을 거세게 압박하는 것과 관련해 주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유엔 인권이사회는 이날(현지시간) 북한 인권결의를 투표 없이 컨센서스(합의)로 채택했다. 북한에 대한 또 다른 압박이다. 이번 결의는 기존 결의의 문안을 대체로 유지했으며 앞으로 2년 간 유엔인권최고대표실(OHCHR)의 역량을 강화하는 조치가 새롭게 포함됐다.

서울=차세현 기자
뉴욕·워싱턴=심재우·정효식 특파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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