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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제안하면 독일이 결정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28호 21면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폴 레버 지음
이영래 옮김
메디치미디어

재정·난민위기도 독일이 해결 #영국 외교관의 독일 경쟁력 분석 #실용적 교육·연대·근면 강점 #패권국 자리 대신할 나라 없어

“유럽의 제1 철칙은 기계적으로 암기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유럽이 제안하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처리한다.” 2014년 6월 시사지 타임스의 외교 담당 편집장이 쓴 글이다. 유럽에서의 독일의 위상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시사지 뉴스위크는 2014년 7월 독일이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독일의 세기로 들어온 것을 환영합니다’는 제하의 표지기사를 실었다. 독일이 유럽연합(EU)을 주도하는 국가라는 명제는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드라마가 한창 진행 중인 지금 독일을 제대로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해졌다. 독일은 EU 28개 회원국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EU의 정책·의사 결정에 있어서 사실상 절대적인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퇴하는 영국이 앞으로 EU와 어떤 종류의 무역협정을 맺게 될지를 결정하는 경제적 운명도 결국 독일의 손에 달렸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Berlin Rules: Europe and the German Way)』는 2년 전인 2017년 상반기에 출간됐다. 영국이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로 EU 탈퇴를 결정한 지 1년 만이다. 브렉시트 시한인 이달 29일을 앞두고 발행된 한국어 번역판은 한국 독자들이 브렉시트의 향후 행방은 물론 독일이 견인하고 있는 EU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도 효과적인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책이다. EU와 영국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브렉시트라는 태풍의 진로를 추적하는 일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독일의 경쟁력은 탄탄한 경제에서 나온다. 아헨공대 부설 자동차공학 연구소의 새 엔진 개발 장면. [중앙포토]

독일의 경쟁력은 탄탄한 경제에서 나온다. 아헨공대 부설 자동차공학 연구소의 새 엔진 개발 장면. [중앙포토]

저자 폴 레버는 6년간 주독 영국 대사를 지낸 독일통이다. 독일의 역사와 제도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현장감 있고 읽기 쉽게 저술했다.

독일이 EU에서 지배적인 힘을 갖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경제력에 기인한다. 유로존 재정 위기 당시 건실한 경제를 기반으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국가가 독일이었다. 독일은 그리스 등 회원국들과 구제금융 협상을 진두지휘하며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EU의 기본원칙에 바탕을 둔 주장을 펼침으로써 결국엔 성공적인 구조개혁을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난민 유입과 같은 유럽을 강타했던 일련의 위기에서 해법을 마련한 것도 독일이었다. 일단 독일 정부의 태도가 정해지면 보통은 ‘끝난 이야기’가 돼 버린다는 게 저자의 관찰 결과다.

독일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자리를 떠맡은 패권국’이 됐다. 실용적인 교육의 힘, 높은 수준의 사회연대, 근면, 공동결정의 전통 등이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고 저자는 본다. 과거사의 악행을 공개적으로 거듭거듭 사죄하는 몇 안 되는 나라여서 국제적 신뢰도 높다.

헨리 키신저는 “유럽과 통화하려면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브렉시트의 결말을 알고 싶다면 당사국인 영국과 함께 독일과 메르켈의 의중을 제대로 읽어야 할 것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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