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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커버스토리 창간 특별 대담] 라종일 교수와 태영호 前 공사가 분석한 김정은의 내면

중앙일보

입력

■ 수령을 신으로 받드는 나라에서 있어선 안 될 오류가 발생
■ 북한의 불안은 안보·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체제 자체의 문제 
■ 트럼프는 처음부터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당근과 채찍 제공
■ 북한, 즉시적 도발 없는 동결 상태에서 실무회담에 나설 것
■ 北에 ‘핵협상 쉽지 않다’는 인식 준 것만으로도 성과, 文도 인내심 필요

“과신한 김정은 북·미 회담 실패로 심적 타격 클 것”

라종일 교수(왼쪽)와 태영호 전 공사는 ’회담의 결렬은 필연적이었지만 북한이 완전히 판을 깨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사진:김현동 기자

라종일 교수(왼쪽)와 태영호 전 공사는 ’회담의 결렬은 필연적이었지만 북한이 완전히 판을 깨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사진:김현동 기자

북·미 회담의 결렬로 북핵문제가 길을 잃은 형국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계제로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어디에 발을 디디고 있으며,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아는 것부터 선행돼야 한다. 이제 북핵문제의 해결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달려있다. 답보상태일수록 나침반 같은 존재가 절실하다. 월간중앙이 창간 51주년 특별기획으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公使)와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의 대담을 마련한 배경이다.

태 전 공사는 2013년 4월 북한이 파견한 외교관 자격으로 영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3년4개월 동안 근무했다. 그는 2016년 8월 가족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귀순했다. 탈북 외교관 중에서 최고위급이었다.

라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뒤 경희대에서 2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김대중 정부 때 국가정보원 1차장을 거쳐, 2001~2003년 영국 주재 한국 대사를 역임했다. 이때 영국에서 태 전 공사와 처음 만났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일본 주재 한국 대사로 일했고, 우석대 총장과 한양대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가천대와 국방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태 전 공사와 라 교수의 대담은 3월 10일 오전, 월간중앙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경호원들과 차량으로 함께 움직이는 태 전 공사가 먼저 도착했다. 그러나 그는 사옥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차장에 정차된 차 안에서 라 교수를 기다렸다. 라 교수가 곧 도착하자 태 전 공사는 차에서 나와 안부 인사를 나눈 뒤, 대담 장소로 같이 자리를 옮겼다. 라 교수를 향한 태 전 공사의 예우였다.

라 교수도 태 전 공사를 만나자 “2001년 런던에서 처음 만났지. 18년 만에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고 반겼다. 태영호 전 공사도 “그러고 보니 남한에 와서 인터뷰는 많이 했지만 이런 식의 대담은 처음”이라며 반가움을 표했다. 북한 바깥에서 북한을 이해하는 데 필생의 공력을 쏟아온 라 교수와 북한 내부에서 체제의 모순을 체감했을 태 전 공사는 상이한 삶의 경로만큼이나 북한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다르리라 여겼다. 그 생각의 차이와 같음을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격랑 속 한국 사회가 역동적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에서 성사된 대담이었다.

“한반도 정세, 18년 전보다 나빠졌다”



두 분이 한국에서 재회하게 된 게 얼마 만인가?

사진:김현동 기자

사진:김현동 기자

라종일_ 2001년 런던에서 처음 만났다. 그땐 희망이 컸었지. 북한을 많이 도와주고 교류하고 화해하고 협력하고 그러는 사이에 궁극적으로 통일까지 이룰 수 있지 않나 했는데…. 태 공사를 18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현실은 그때보다 훨씬 나빠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태영호_ 2000년 남북 정상이 처음 만났고, 6·15 공동선언이 있었으니 당시 북한도 기대감이 컸다. (영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 라 대사께서 내 손을 잡고 ‘진짜 우리(한국)는 공동성명대로 하려고 한다. 남한이 공격한다고 북한에서 걱정하는데 절대 그럴 일 없다. 그 진정성을 알고 가달라’고 말씀한 기억이 난다.

라종일_ 영국 대사 시절 들었던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북한 학자 3명을 초청하도록 주선한 적이 있다. 방문객이 묵을 수 있는 게스트룸에서 밤을 보내도록 했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서 놀라더라. ‘1인용 방마다 한 명씩, 객실 셋을 마련했는데 3명이 한 방에서 같이 잤다고 했다. ‘따로 자면 후일 당국에서 의심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케임브리지 사람들은 몰랐던 것이지. 이렇듯 바깥의 기준으로 보면 북한을 전혀 이해 못 하게 된다. 트럼프도 이런 북한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북·미 협상이) 깨진 것 아니겠나.


예상 밖이다.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렇게 된 원인을 어떻게 보는가?

태영호_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핵화를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결단을 아직 내리지 않았다. 비핵화 의지가 없는데 외부에선 ‘김정은이 비핵화 결단을 했다’고 오판한 거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도 ‘트럼프한테 협상 기술을 잘 쓰면 무언가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오판했다. 결렬이 된 데에는 북한의 잘못도 있지만 한국, 미국의 잘못이 대단히 크다. 북·미 회담 보름 전부터 대한민국에서 스몰딜, 빅딜 얘기들이 나지 않았나. 김정은이 무엇을 내놓고, 무엇을 받아가겠는지, 이런 얘기들 말이다. 이런 말이 자꾸 나오면 북한이 오판할 거라고 내가 계속 말했었다. (북한이 오판할 만한) 그런 환경을 외부에서 만들어 놨다고 생각한다.

라종일_ 내가 운영하는 카톡방이 있는데 하노이 회담 시작 전에 ‘잘 안 될 거다’라고 썼던 적이 있다. 나라고 확실히 알았을까? 태 공사 말씀처럼 (구조적으로) 안 될 수밖에 없는 회담이었다. 서로가 상대를 너무 이해 못 하고 있었으니까. 북한의 안보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북한 정권에 핵이 얼마나 중요한지…. 북한의 불안은 안보, 군사적인 것이 아니다. 체제 자체에 있다. 체제가 이룬 것이 없으니까. 자유, 물질적 풍요, 평등 그 무엇도 없는 나라다. 최은희 배우의 탈출기에 나온다. ‘사회주의국가인데 왜 이렇게 불평등하냐?’라고.

“하노이 회담 결렬은 미국이 기존 흐름으로 돌아온 것”

사진:김현동 기자

사진:김현동 기자

태영호_ 현실적으로 (미국이) 북한과 딜을 할 수 있는 상황까지 북한의 비핵화가 왔느냐? 주고받기를 할 정도까지 오지 않았다. 왜 그러냐면 지난 북핵협상을 뒤돌아보면 항상 북한으로부터 ‘핵을 포기하겠다’란 진정성 있는 발표나 선언을 먼저 받는 것을 중시했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은 노무현 정부 때 6자회담을 통해서 만든 것이다. 그 공동성명의 첫 조항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였다.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그 구체적 로드맵의 첫 번째가 ‘북한은 현존 핵무기와 핵개발을 포기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와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조속한 시기에 복귀한다’ 이게 첫 단계다. 그런데 북한이 2006년 미사일과 핵실험을 했고, 6자회담에서 합의된 이 모든 것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지금 단계에선 우리 희망사항만 얘기하지 말고, 북한으로부터 ‘다시 핵 계획과 핵무기는 포기한다’는 말로나마 공약을 받아내고 ‘시기가 성숙될 때 NPT와 IAEA에 복귀한다’는 선언을 받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트럼프가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을 만났고,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3번 했는데 김정은한테 아직도 이 말을 못 받아냈다.

딜을 할 준비 부족은 미국에도 해당되는 얘기겠다.

태영호_ 미국도 마찬가지다. 교과서대로 진척돼야 한다. 여기서의 ‘교과서대로’란 의미는 1페이지를 다 읽고, 2페이지로 넘어가야 한다는 뜻인데 (이번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은) 그 전 단계를 뛰어넘으려 했다. 이번 회담이 아니었더라도 순서와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런 회담은 다음에라도 꼭 결렬된다.

라종일_ 미국이 ‘핵무기를 없애라’고 한다. 그럼 북한은 뭘 갖고 있게 되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의 가장 큰 변화는 해외여행이다. 북한은 해외에 노동자를 보내서 그 나라 노임보다 싸게 일하게 하고 그 노임까지 착취한다. 나라를 열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핵무기, 군사력이 없으면 어쩔 수 없는 나라인데 트럼프가 ‘핵무기를 포기하라. 그러면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북한이 부자가 되면 국민은 잘 살겠지만 정권이 불안정을 겪어야 한다. 외부 자본이 들어가면 체제 내 온갖 불안정 요인이 활성화된다. 트럼프는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당근과 채찍을 제공한 것이다. 미국인들이 간단히 생각한다. 뭐를 주면 좋아하고, 채찍은 무서워하고…. 당나귀라면 그렇겠지만 사람한텐 당근이 채찍이고, 채찍이 당근일 수 있다. 권력같이 비합리적 요소가 개입되는 데 그런 사고로 접근하면 안 된다. 트럼프가 제공한 것은 (북한이 보기엔) 엉터리다. 김정은 정권의 안전이 보장되는 과정으로 천천히 진행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한꺼번에 해결하려 든 것이 잘못이다.

“최고존엄 김정은, 타격 받았다”

베트남 호치민의 한 식당에서 바라본 야경. 베트남 경제는 미국과 수교 후 성장했지만 김정은이 원하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베트남 호치민의 한 식당에서 바라본 야경. 베트남 경제는 미국과 수교 후 성장했지만 김정은이 원하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프로세스의 조정이 없으면 아무리 만나도 힘들다는 얘기인가.

태영호_ 그렇다. 북핵 협상은 뿌리 깊은 도식이 있다. ‘NPT와 IAEA를 약속해라, 그다음에 빅딜이든 스몰딜이든 구체적 사항으로 가라.’ 북한도 다 안다. 그런데 싱가포르부터 북한도, 미국도 다 뛰어넘으려 했다. 트럼프를 보면 전직 대통령들의 방식을 거부했다. ‘그럼 어떤 게 새로운 방식이지?’ 하고 궁금했는데 싱가포르에서 트럼프가 큰 실수를 했다. 기존 방식을 반대하다 보니까 그런 것이다. 결국 하노이 회담은 기존의 흐름으로 미국이 다시 되돌아온 것이다.

라종일_ 북한도 잘못인 게 미국을 간단히 생각했다. 트럼프를 만났더니 옛날 대통령과 다르다. 한미 연합훈련도 ‘안 한다’고 하고, 북한 구미에 딱 맞았다. ‘잘만 협상을 풀어내면 핵 포기를 안 해도 되지 않겠나. 보니까 잘하면 영변 핵 일부만 포기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중에 보니 영변 핵 전부를 폐기하는 것이 북한의 마지막 카드였다. 그런데 트럼프가 영변 이외 나머지 지역까지 들고 나온 것이다. 북한 요구대로 2016년부터 시행된 대북제재 11개 중에서 핵심 5개를 폐지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게 된다. 그야말로 핵·경제 병진국가를 인정하는 것이 돼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쁜 거래 대신 결렬을 선택한 것이고) 미국이 간단한 나라가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후 행태를 보면 역시 심적 타격이 크지 않았나 싶다.

태영호_ 라 대사께서 명백히 지적했다. 김정은은 톱다운 방식 협상에 자신 있다고 과신한 것 같다. 시진핑을 몇 번 만나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고, 트럼프와 싱가포르에서 만나고 그래서 이번에도 자신감을 가지고 나왔을 거다. (예기치 못한 결렬에 김정은이 충격 받은 이유는) 북한 정치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는 언론과 야당의 비판 속에서 살아간다. 회담을 결렬시켜도 큰 충격이 없다. 그러나 북한의 지도자는 신적인 존재다. 칭송하는 소리만 듣고 살았는데 사상 처음으로 회담장을 박차고 나서며 ‘안 하겠다’고 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지도자가 협상장으로 나올 때 북한 실무자들이 여러 가상 시나리오를 준비했을 것이다. 뜻밖에도 북한이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우라늄 시설 추가 폐기)를 (미국이) 불쑥 치고나온 것이다. 봉투에 가지고 왔다니까 종이 1~2장이 아니었고…. 그러니까 북한이 약간 놀라는 기색이 있었고…. 그리고 사실 여부 확인이 있어야겠지만 트럼프가 회담을 박차고 나가려니까 최선희가 달려와서 “김 위원장의 새로운 메지시가 있다”고 매달렸다는 모습이 있었고….

라종일_ 북한이 우리 군사력 때문에 핵개발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북한한테 위협은 체제 자체의 실패에 있다. 외부와 교류하면 사회·문화적으로 체제에 위협이 되고, 정권 유지가 힘들어진다. 개념적으로 김씨 정권과 북한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되는데 우리나 미국은 그리 안 한다. 반면 북한은 우리 정부와 국민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김씨 정권이 북한을 완전히 통제하지만 개념적으론 정권과 나라 그리고 국민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북한이 적이야?’ 이렇게 물으면 우리 국민들은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니까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안보에선 달라야 한다. 안보나 외교 같은 비합리적일 수 있는 영역에선 낙관과 선의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외교와 정보 능력이 좀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발표 직전까지) 30분 후 북·미 선언문이 나오면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 외교와 정보 라인에서 상당히 반성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앞으로 상당한 실패를 거듭할 거다. 외국 매체에서 ‘이번 북·미 회담 결렬로 최대 패배자는 문재인 정부’란 말이 나오지 않았나.

“발전의 걸림돌이지만 수령 신격화 못 바꿔”

김정은이 역점사업으로 여기는 원산갈마해안 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이 역점사업으로 여기는 원산갈마해안 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태영호_ 북한은 최고존엄이 나와서 한 일을 실패라고 보도 못한다. 노동신문이나 기록영화에서 성공이라고 했다. 그러다 최근 합의문도 못 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련한 지도자라면 처음부터 현실을 인정하고 ‘합의문이 나오지 못했다’라고 했을 것이다. 지난 시절에는 이러한 언론 플레이가 통했는데 해외에 나가있는 9만 명의 북한 노동자가 다 스마트폰을 보고, 외부 뉴스와 비교한다. ‘노동신문은 성공이라 하는데, (외국 신문들은) 결렬이라고 한다. 사기치고 있네’, 이렇게 말이다. 김정은도 ‘100% 성공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선전 부문에서 궤도를 수정한 것이다. 김정은이 톱다운 방식을 해왔는데 이제 자신감이 없어져 뒤로 물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김정은은 최근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가리게) 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신정국가, 왕정국가의 성격이 강한데 김정은은 생각이 다르다는 건가?

태영호_ 북한에서 지난번(김일성, 김정일 통치시기를 지칭)에 없었던 많은 일이 벌어졌다. 첫째로 북한 지도자가 현지지도를 가면 언론이 미화를 했는데 김정은 때에 와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보도한다. 김정은이 분노하고 “일을 이렇게 하느냐?”라고 하는 것도 다 그대로 알려진다. 김정은은 보통 공식 행사 시작 5분 전에 온다. 그런데 언젠가 30분 먼저 도착한 적이 있다. 김정은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바깥의 소리가 다 들렸다. “박수 소리 작다!”, “어깨 위로 박수 치라!” 이를 본 김정은이 ‘그러면 이때까지 나에게 한 것이 100% 리허설이었나?’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결국 당시 행사를 주관했던 부국장이 해임됐다. 2013년 무렵의 일이다.

그래서 리허설이 없어졌느냐? 없어지지 않았다. 행사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잘해야 평가받는데 리허설 없인 절대 안 된다. 설령 목이 날아가도 리허설로 분위기 띄우고, 울고 박수 쳐야 평가받는 구조가 되어있으니….

이는 수십 년 동안 북한 체제의 걸림돌로 자리해온 신격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수령의 신격화, 이 자체가 북한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덩샤오핑이 중국을 개혁, 개방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7:3 이론이다. ‘마오쩌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자. 7개는 잘했고, 3개는 못했다. 잘못도 인정하자.’ 그래서 정책 변화가 가능했다. 북한에서도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평가할 때, ‘99개는 잘했고, 1개는 못했다’ 이런 식으로 단 1개의 오류를 인정하고, 당 정책 이론을 재정립하면 개혁개방이 가능하다. 그러나 수령을 신으로 만들었으니 오류가 있으면 안 되는 나라가 북한이다.

라종일_ 김정은이 수령의 신비화에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인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다. 그러나 현 북한 체제는 신비주의 없이 유지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원래 혁명은 이성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다. 혁명은 비합리적인 현실을 합리적으로 뜯어 고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시민혁명이건 노동계급의 공산주의 혁명이건 근본은 합리성이다. 이게 후퇴하기 시작한 게 구(舊)소련에서 레닌의 미라를 만들면서부터다. 당시 다른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미라를 만드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으나 스탈린이 밀어붙였다. 말하자면 혁명의 수단인 권력과 혁명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다. 고대 이집트와 같은 신정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라는 속성상 반(反)이성적이고 반(反)혁명적이다. 북한에서 정권 차원에서 신비주의적인 풍조를 조장하는 것은 혁명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애초에 북한은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다. 오히려 봉건적인 유습을 타파하는 것이 중요한 노선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수령의 권위를 신비화하고 미라를 만들어 경배하는 식의 신비주의적 요소는 혁명의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가? 지켜볼 문제다.

“文 정부의 ‘H벨트’는 일방적 희망사항”

문재인 대통령 (오른쪽부터)을 보좌하는 정의용 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장관. 한국 정보당국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정보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오른쪽부터)을 보좌하는 정의용 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장관. 한국 정보당국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정보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의 발언에서 변화의 모멘텀을 읽을 수도 있겠다.

태영호_ 김정은이 툭 내뱉은 말이라도 당 정책화와는 거리가 있다. 김정은이 ‘목을 내걸고 해보자’고 하다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하고 마음이 바뀔 수 있으니 (숙청을 두려워하는) 그 누구도 나서서 정책화하려 들지 않는 모순에 빠져있다. 예를 들어 인민군에 내걸린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는 100% 대원수 군복을 입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이 군부대를 현지지도하면서 “할아버지는 한번도 대원수복을 입어본 적이 없다. 군대에서 이런 초상화를 만들었느냐?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대는 것은 선전이 아니다”라는 취지를 밝혔다. 이 얘기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양복이나 인민복 입은 초상으로 다 바꿨다. 김정은은 과도한 신격화를 안 했으면 하는데, 이게 바로 정책으로 자리 잡지는 못하는 것이다.

라종일_ 북한은 신비주의적 요소로 체제를 유지한다. 신비주의를 없애는 것이 긍정적이겠지만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꿨다간 큰 변동이 생긴다. 그래서 김정은 정권이 있는 것은 한반도 안정에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일각에서 북한 혹은 김정은 정권의 붕괴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김정은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도 거의 없지만 붕괴한다면 위기다. 적어도 세 가지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인도주의적 위기, 군사적 위기, 국제정치적 위기다. 그중에서도 군사적 위기가 가장 심각하다. 상비군 6만 명인 동독이 붕괴할 때도 간단치 않았는데 북한은 130만 명이다. 그 외에도 비정규 무장 병력이 있다. 그리고 대량살상무기도 많다. 동독이 무너진 뒤 현지를 많이 방문해서 회견을 했다. 그중 구 동독 군인들과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공산주의 신봉자도 아닌데 “전투 한번 못 하고 항복한 것이 일생의 한”이라고 말하더라. 김정은 정권이 붕괴하는 경우, 누가 사태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국제법적으로 북한이 우리에 속한 것도 아니다. 만약에 김정은이 없어지면 누가 감당하나? 북한 붕괴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김정은이 천천히 개혁해서 정상 국가가 되고, 평화로운 공존으로 가다가 결국 통일로 가야 한다. 100년이 걸려도 그렇다. 미국의 ‘잘 살게 해줄게’, 이 자체가 김 정권에 위협이다. 북한 체제는 어떤 면에서 근대 민족국가의 전형이다. 북한은 일본 제국주의와 투쟁하는 과정에서 그걸 그대로 배운 것 같다. 일본한테 배운 뒤, 더 극단으로 밀고 간 것이다.

태영호_ 라 대사님 생각에 일리가 있지만 나는 생각을 달리한다. 김정은 시스템이 점진적으로 연착륙하면 바람직하다. 그러나 북한 주민을 기본으로 놓고 보면 오래갈수록 사람들의 고통도 그만큼 길어진다. 김정은이 군주로서 북한 사회를 빨리 변화시키면 제일 바람직하겠지만 그렇게 가지 않으면 빨리 체제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정은은 유럽에서 성장했으니 할아버지, 아버지와는 다르다. 이런 사람이 북한을 다원화된 시스템으로 바꿀 것인지, 현 세습체제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려 할 것인지 궁금하다. 나는 김정은이 다원성으로 갈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남한의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이 핵을 가지면 베트남식 적화통일을 도모하리라 우려한다.

태영호_ 너무 지나친 생각이다. 한 나라의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4가지 원인이 결합될 때 가능하다. 첫째, 경제적 침체가 오래 누적될 때, 둘째, 권좌의 지도자가 현실을 보지 못하고 독단적 생각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일 때, 셋째, 주민들이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지속할 때, 넷째가 중요한데 외부로부터의 사례가 있어서 내부에 살고 있는 사람이 그 국가에 대한 신뢰를 접고 외부로 눈길을 돌릴 때다. 북한이 우려하는 것이 네 번째다. 대한민국은 외부 사례와 같다. 같은 문화와 언어로 성공했으니 한국이 발전하면 할수록 북한에겐 위험 요인이다. (북한 주민들이) 대안으로 볼 수 있으니까. 트럼프가 계속 베트남의 도이머이 정책 사례를 꺼냈는데 잘못된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우리 여론도 회담 전까지 ‘베트남이 북한의 미래다’라고 했다. 북한이 받을 수 없는데 받으라 하면, 이를 통해 우릴 무너뜨리려 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된다. 회담의 결렬 요인이라고 본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논리가 이렇게 다르면 앞으로의 회담도 의미가 없지 않을까?

태영호_ 베트남, 중국을 따라 하다간 체제가 붕괴될 것이라는 걸 김정은은 너무 잘 안다. 김정은이 투자와 협력을 받으면서도 시스템은 유지할 수 있는 개성공단 같은 단절형 경제특구로 왜 가려 하는지 우리는 연구해야 한다. 그럼 우린 어떻게 갈 것인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김정은이 올인을 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H벨트’라고 남북 동해안 철로와 군사접경 지역의 개방을 북한에 계속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에선 아직도 좋다는 답을 안 한다. 북한 견지에서 보면 이는 평화적으로 북한을 무장해제시키는 방법이라고 여기게 된다. 북한의 군사력이 동서 해안과 휴전선에 집중돼 있는데 해안방어 시설과 군사시설을 무력화시키자? 이것은 일방적 희망사항이다. 이런 접근법은 오히려 독(毒)이 된다.

“北, 판 깨졌다고 즉시 도발은 안 할 것”

2005년 9월 19일 베이징에서 회동한 6자회담 대표들이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05년 9월 19일 베이징에서 회동한 6자회담 대표들이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갈마지구도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에서 예외는 아닐 텐데.

태영호_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할 때 진정성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김정은이 비핵화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문 대통령이 ‘당신(김정은)의 말은 한반도 비핵화이지만 더 개방하기 전에는 납득하기 힘들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얘기하기 힘들다. 첫 시초 단계에서 여기까지는 내놓자. 내가 돌아가서 트럼프를 설득하겠다’고 김정은에게 말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 접근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김정은이 비핵화 결단을 내렸다고 먼저 얘기하고 다닌다. 외부에서는 ‘뭘 보고 저렇게 생각하느냐’고 갸웃하는데도 말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 연설에서 ‘김정은이 비핵화 결단을 내렸다.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비핵화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외국에선 ‘우리가 판단하기엔 아닌데, 한국은 왜 이렇게 얘기하나? 문 대통령이 김정은 쪽에 너무 기울었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라종일_ 하노이 회담이 실패라고 하는데 긍정적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난다는 생각을 안 했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얘기해야 하는데 미국은 안 했다. 대화하면 북한에 큰 혜택을 입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는 잘했다. 김정은과 둘 사이에 라포르(친밀감)가 생겼을 것이다. 북한도 ‘쉽게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60시간 기차 타고 가면서 생각도 많이 했을 것이고….

태영호_ 트럼프가 회담장 가기 전, 김정은을 치켜세웠다. “경이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위대한 지도자”라고 했더니 김정은이 씩 웃었다. 왜? 김정은은 어려서부터 유럽 다 봤고, 북한이 어떻게 사는지 다 안다. 김정은이 속으로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아마도 ‘이 사람이 나를 초등학생으로 아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생겼을 것이다. 트럼프의 그런 접근법은 잘못된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 재개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전해진다. 나아가 중동 등 해외로의 핵물질의 유출, 판매 우려도 나온다.

태영호_ 패턴을 보면 판이 깨졌다고 바로 도발하지 않고, 전략적 방향을 세울 것이다. 김정은이 ‘(핵 협상이) 쉽게 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게 된 것만도 대단한 성과다. 우리도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북한은 실무회담장에 올 것이다. 이런 실무적 절충도 안 하고 미사일, 위성을 발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종일_ 북한도 유엔 제재는 미국 혼자가 아니라 중국·러시아도 같이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핵 사이클 유지와 핵무기 저장은 경제적 부담을 요하는 일이다. 주민들은 몰라도 북한 지도층은 느낄 것이다. 핵은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전략적 이용만 가능할 뿐이다.

태영호_ 북한은 현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의중을) 던져본다. 미국이 제재를 풀어주지 않고, 코너로 몰면 ‘북한은 우리도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 살 길은 핵 수요자한테 있다’라며 자신들을 고려해 달라고 할 것이다. 이를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스라엘에 오퍼를 던질 거다. ‘미국과 타협하려 하는데 이 방법밖에 없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라종일 북한 미사일은 대기권 재진입 기술도 완성 못 했다. 그럼에도 핵 보유국을 선언한 것은 많은 돈을 들인 핵을 전략, 정책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핵은 못 쓰는 무기다. 쓰는 순간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전쟁이 일어날 때 미국의 개입을 막는 효과는 있을 수도 있겠다.

태영호_ 주한미군의 존재가 전쟁 억지 기능을 한다는 점을 북한도 잘 안다. 하지만 당 강령에 적화통일을 명시해놓고 온 나라를 병영국가, 전시체제로 운영하다 보니 계속 이런 얘기(주한미군 철수)를 해야 체제를 합리화할 수 있다. 이는 국가의 존립기반에 관계된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가 북한의 정책”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웃으며 작별하고 있다. / 사진: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SNS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웃으며 작별하고 있다. / 사진: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SNS

주한미군에 대한 김정은의 속내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나?

태영호_ “주한미군이 있어도 된다”라는 김정은의 말은 남북 정상회담 국면에서 써본 말이다. 정책변경은 있을 수 없다. 9월 남북 정상이 평양공동선언을 한 직후 리영호가 유엔 총회에서 이렇게 분명 말했다. ‘주한유엔군사령부는 미군의 이름을 도용해서 한반도에 불법적으로 와 있다. 남북통일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유엔 총회 발언이 북한의 정책이다. 북한은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라고 할 것이고, 주한미군도 당연히 나가라고 할 것이다.

라종일_ 서울 한번 둘러봐라. 이게 전쟁하는 나라인가. 그러나 북한은 전쟁하는 나라다. 북한은 1950년 전면적인 전쟁 이후 계속 군사적 도발을 했다. 이에 대해 우리는 군사 대응을 한 적이 없다. 전쟁이 나면 남한은 엄청난 손실을 본다. 이제까지 이룬 것이 엉망이 된다. 군사 대응을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이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1·21사태, 아웅산사태·KAL기 격추 때, 한국군이 못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남한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못 움직인다’라고 북한이 여기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은 북한에 대한 억지력이다. 전면전이 나면 미국이 가만있지 않는다. 그리고 미군 주둔으로 발생하는 다른 하나는 한국군이 도발 못하게 제어(restraint)하는 기능이다. 미국이 없었으면 경제 발전이 됐을까. 안보 위기를 주한미군이 메워줘 민주화도 됐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통일’은 엉터리다. 만약 그런 일이 현실화되면 중국만 좋아할 것이다. 주한미군은 붙잡고 있어야 된다.

태영호_ ‘주한미군이 나가면 (북한이 바로) 공격?’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수십 년 주장한 정책 연장선에서 김정은의 최대 업적이라고 선전할 것이다.

라종일_ 안전 보장의 첫째는 상대방에게 무력으로 위협당하지 않을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이 돈 내라면 내고, 하라는 대로 하는 그런 상황은 안 되도록 해야 한다.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가 더 강화되거나 유지되면 정세는 어찌 될까?

태영호_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동결 상태를 유지하는 한, 미국은 더 강화는 하지 않고 유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북한의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은 북한이 도발 안 하고 동결만 유지해도 버틸 수 있는 지원은 해줄 거다. 현 제재가 유지돼도 북한이 정책을 바꾸거나 양보하긴 어려울 것이다.

라종일_ 트럼프의 근본적 오해는 ‘북한은 경제가 잘 되도록 하면 되지 않겠나’란 생각이다. 북한은 안 그렇다. 미국은 솔직히 조용히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북한에 관심이 없다. 미국의 제일 큰 관심은 핵인데 북핵을 인정해주면 핵 국가가 또 생길 것이다.

“조성길 망명에 북한이 반응한 것은 긍정적”

태영호 전 공사는 조성길 전 이탈리아 대사 대리의 망명에 관한 발언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환기시켰다. / 사진 : 김현동 기자

태영호 전 공사는 조성길 전 이탈리아 대사 대리의 망명에 관한 발언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환기시켰다. / 사진 : 김현동 기자

태영호_ 북한은 타협하자고 나올 것이다. 희망적이라면 트럼프의 핵 은폐 의혹 제기에 북한이 긍정도 부정도 안 했다는 사실이다. 결렬됐다고 하면서도 앞으로 어찌할지는 북한도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김정은이 트럼프 앞에서 “(추가 핵시설) 그런 것 없다”고 부인했더라면 회담이 막혔을 것이다. 김정은이 가만있었던 것은 협상 여지를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핵 협상의 패턴을 보면 항상 미국은 핵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그럴 때마다 북한이 부인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일정한 시점을 두고 인정했다. 북한은 핵물질 의혹을 타협하러 나올 것이다.

라종일_ 미국은 핵에만, 일본은 납치문제에만, 우리는 통일에만 관심이 가있다. 북한이 왜 납치를 하는가, 왜 핵을 개발하는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할 수 있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했으면 한다. 그래서 계속 만나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인간관계는 좋은 자산이다. 그러나 이 자산을 현명하게 써야 한다. 우리는 작은 나라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의 외교와 정보 역량을 확실히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느꼈다. 희망과 낙관으로만 현실이 바뀌진 않는다.

최근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에 괴한이 침입하는 묘한 사건이 벌어졌다.

태영호_ 의문이다. 안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고, 싸움이 난 뒤 뭘 가지고 나와 차에 싣고 갔는데 그 사람들이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다. 안에서 난동 부린 이가 북한 사람들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북한 대사관은 도와주겠다는 스페인 경찰에 ‘그런 일 없다’며 문을 닫아걸었다. 북한 대사관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들어갔다는 것은 서로 알고 있는 사람임을 의미한다. 김일성 배지를 달았다는 것을 보면 내부에서 회의를 하다 싸움이 났고, 예전에 제공했던 컴퓨터를 다시 가지고 나가지 않았나라는 추측도 해본다. 외부인의 소행이었다면 북한이 반발했고, 스페인에 항의했을 것이다. 이게 없다는 것은 북한이 오픈을 꺼린다는 것이다. 이건 내부사건이다.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 대리의 망명은 어떻게 봐야 할까?

태영호_ 내가 망명한 조 대사에게 “한국에 오라”고 했고, 조 대사의 딸 강제북송도 터뜨렸다. 외부에서 인권상황을 아무리 떠들어도 북한이 반응 안 하면 무의미하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이 반응을 했다. 과거엔 침묵하거나 조작이라고 반박하던 북한이 우선 인정했다. 조성길 사건을 북한이 상세히 밝혔다. 먼저 조성길이 혼자 (대사관을) 나갔고, 그 후에 부인이 (남편을) 데려온다고 해서 나갔다. 딸을 두고 간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딸을 지적장애인이라고 얘기했는데 이것도 맞다. 딸이 ‘조부모에게 가겠다’고 했고, 북한은 ‘부모가 딸을 버렸기에 북으로 보냈다’고 했는데 이는 인권의 견지에서 문제가 된다. 지적장애인은 자기 의사를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 지적장애인이 ‘조부모에게 가겠다’고 해서 북한에 보냈다? 또 부모가 나타날 수도 있는데 기다리지 않고 2~3일 만에 북한으로 보낸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라종일_ 김정일이 죽었을 때, 장성택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반봉건주의를 담은 해방의 메시지를 앞세웠는데 갈수록 이상한, 퇴행적 국가로 가고 있다. ‘인민’도, ‘민주주의’도, ‘공화국’도 현실하고 다 따로 돌아간다.

- 사회 박성현 월간중앙 편집장 / 정리 김영준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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