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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미국 첨단 경비함·국가정보국장 출현의 의미 직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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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 해안경비대 소속 구축함(4500t)급 경비함인 버솔프함이 한반도 근해에 배치돼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 단속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본토 연안을 책임지는 해안경비대 함정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 연안에 배치된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버솔프함은 헬기·무인정찰기에다 고속 잠수정을 탑재해 불법 환적 중인 북한 선박을 나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버솔프함 배치 사실을 밝힌 시점도 주목된다. 2017년 60여 건 수준이던 불법 환적 의심 동향이 지난해 130여 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고 이 중 10여 건을 우리 군이 적발했지만 정보 보호를 이유로 공개를 주저해 온 사실이 드러난 직후이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도 때맞춰 “대북 압박 캠페인은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뿐이 아니다. 미국은 19일 B-52 폭격기를 캄차카 반도 인근까지 전개한 데 이어 20일에는 댄 코츠 미 국가정보국장이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코츠 국장은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등 17개 기관을 통할하는 미 정보기관 최고 수장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공언해 온 사람이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에 해상 봉쇄 수준으로 제재의 고삐를 조여 ‘완전한 비핵화’에 응하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제재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미국은 제재를 강화하면 더 유리한 고지에서 비핵화 협상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런 상황의 엄중함을 직시하고, 미국의 ‘빅딜’ 요구에 응해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 혹여 판을 깨고 미사일 발사 재개 같은 강공을 택한다면 그동안 김정은 위원장이 펼쳐 온 ‘평화공정’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증발하고, 강화된 제재 앞에 고통만 더해질 뿐이다.

우리 정부도 냉철한 대응이 절실하다. 미국이 우리 앞바다에 해안 경비함까지 보낸 건 한반도 인근 해상에서 이뤄지는 북한 선박의 불법 환적 적발에 한국이 미온적이라는 불신도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지 20일이 넘도록 ‘제재 완화’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봉쇄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기조에 보조를 맞춰 미국의 신뢰를 확보하고, 북한에는 진정성 있는 핵 포기만이 체제 보장과 경제지원을 얻어낼 길임을 꾸준하게 설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