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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공시가격…알고 보니 직원 1명이 하루 180가구 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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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14일 서울시의 아파트 단지들 [연합뉴스]

지난 14일 서울시의 아파트 단지들 [연합뉴스]

주택 공시가격의 구체적인 산출 근거를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과 학계, 시민단체는 "주먹구구로 공시가격을 정하는 것 같다"며 세부적인 계산 프로세스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550명 넉 달간 1339만 가구 조사 #같은 층 작은 평수가 더 높기도 #“구체적 계산법 공개를” 비판 커져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실은 "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가 정부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한국감정평가학회도 "공시가격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3가지 요소(투명성·전문성·중립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투명성"이라며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나머지 전문성이나 중립성 등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입장문을 내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 국장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공시가격 결정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 14일 열람을 시작한 전국 1339만 가구의 공동주택 공시가격 안에 이해하기 힘든 사례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단지 내 작은 집의 공시가격이 큰 집보다 더 비싸다. 서울 서초구 서초현대 아파트의 전용 53㎡(8층) 공시가격은 5억9100만원으로, 같은 층 이웃인 59㎡보다 3200만원 높았다. 서울시 용산구 용산아크로타워 전용 84.97㎡(30층)의 공시가격은 6억8500만원으로, 옆 동 같은 층 126.3㎡보다 400만원 비쌌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우선 한국감정원의 부실 산정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경우 한국감정원 직원 550명이 지난해 8월 27일부터 올해 1월 11일까지 138일 동안 1339만 가구를 조사했다. 한 사람이 하루에 무려 180가구가량의 공시가격을 계산한 셈이다. 조사 기간에서 쉬는 날을 빼면 1명이 하루에 맡아야 할 가구 수는 180가구 이상이다. 조사 인력 상당수는 비슷한 시기 단독주택 22만 가구의 공시가격 산정 업무도 수행했다.

또한 주택 공시가격은 부동산 가치 평가 전문가로 꼽히는 감정평가사가 아닌 감정원 내 일반 직원을 주축으로 계산되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최첨단 IT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감정평가학회는 "아무리 전산 시스템이 훌륭해도 감정평가사 등 전문가의 평가보다 나을 수 없다"고 반발한다.

한국감정원과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구체적인 공시가격 산정 근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구체적인 계산 알고리즘 등은 감정원만의 고유한 노하우이기 때문에 공개가 불가능하다"며 "다른 공공기관들도 세세한 부분을 다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태욱 감정평가학회장은 "지금처럼 공시가격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선 공시가격에 따라 세금을 내는 국민을 납득시키기가 어렵다"며 "적어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정보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가 '정부3.0'을 표방하며 공공정보를 적극적으로 개방해 국민과 소통을 확대하겠다고 하는 가운데 주택 공시가격만 예외로 둬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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