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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급류 휘말린 보…국민 지갑만 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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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광주광역시 남구 승촌동에 위치한 영산강 승촌보.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광역시 남구 승촌동에 위치한 영산강 승촌보. 프리랜서 장정필

승촌보 문화관의 정부 홍보물 비치대. 왼쪽 홍보물은 과거 정부의 홍보물로 4대강 사업의 성과를 자랑하는 내용이고, 오른쪽 홍보물은 4대강 사업으로 수질 등이 악화됐다고 지적하는 현 정부의 홍보물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승촌보 문화관의 정부 홍보물 비치대. 왼쪽 홍보물은 과거 정부의 홍보물로 4대강 사업의 성과를 자랑하는 내용이고, 오른쪽 홍보물은 4대강 사업으로 수질 등이 악화됐다고 지적하는 현 정부의 홍보물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4일 오후 광주광역시 남구 강변에 위치한 승촌보 영산강 문화관.
1층 홍보물 비치대에는 상반되는 정부 홍보물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정치 급류에 휩쓸린 4대강 보 <상> #짓는 데 1800억, 해체 땐 1910억 #“환경부 결론 내놓고 밀어붙여 #MB 때처럼 현 정부도 졸속 추진 #자기 돈이면 허투루 낭비하겠나”

환경부가 최근 만든 '보 개방 모니터링 바로 알기'라는 제목의 홍보물에는 4대강 사업으로 건설한 보 수문을 개방한 결과, 수질이 개선되고 생태계 복원이 이뤄졌다는 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문답으로 이뤄진 홍보물 내용을 보니 "4대강 사업으로 보가 설치된 후 수질이 더 좋아졌다는데 사실인가요?"라고 묻고는 "4대강 사업 이후 녹조(유해 남조류) 발생은 대부분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달 22일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 기획위원회가 금강·영산강 5개 보 처리 방안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설명과 궤를 같이하는 내용이었다.

정권에 따라 달라진 4대강 사업 평가

4대강 보 설치로 녹조가 늘어났고, 보 개방으로 조류 발생이 줄었다는 내용의 환경부 홍보물. 프리랜서 장정필

4대강 보 설치로 녹조가 늘어났고, 보 개방으로 조류 발생이 줄었다는 내용의 환경부 홍보물.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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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로 옆에 놓인 정보 홍보물 내용은 크게 달랐다.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가 7~8년 전 보 건설 후 직후 제작한 이 홍보물의 표지에는 영산강 승촌보·죽산보 사진과 함께 "홍수와 가뭄을 걱정해야 했던 오염된 영산강이 안전하고 행복한 생명의 강으로 돌아왔다"고 적혀 있었다.

4대강 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영산강 살리기 사업'을 소개하면서 "수질을 개선(2등급 이상 75%)하고 건강한 수생태계 조성(했다)"며 성과를 자랑했다.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개선되고, 수생태계도 건강해졌다고 홍보하는 과거 정부의 홍보물. 프리랜서 장정필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개선되고, 수생태계도 건강해졌다고 홍보하는 과거 정부의 홍보물.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환경부가 보 처리 방안을 제시한 이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비치대에 놓인 상반된 홍보물은 최근의 논란과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환경부가 졸속으로 보 해체 방안을 내놓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영산강 죽산보와 금강의 세종·공주보 일대 주민들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승촌보를 찾은 김진구(59) 씨는 "같은 보를 두고 내린 정부 평가가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냐"며 "환경부가 보를 해체해야 한다고 했는데, 정권이 바뀌면 또 달라질지 누가 알겠느냐"고 했다.

죽산보 인근 주민 임경렬(59)씨는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에 대해 졸속으로 추진한다고 하더니 보를 해체하는 문제를 놓고 (현 정부도) 비슷한 모습"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국민 의견과 참여를 중시한다고 했는데 (보 해체를 기정사실로 만드는 게) 대단히 잘못된 모습 같다"고 했다.

'해체 대상' 보 주변에선 반발 확산

13일 전남 나주시민회관에서 죽산보를 해체하는 영산강 보(洑) 처리방안을 두고 찬반 의견을 나누는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전남 나주시민회관에서 죽산보를 해체하는 영산강 보(洑) 처리방안을 두고 찬반 의견을 나누는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전남 나주시 남내동 나주시민회관에서 열린 '죽산보 해결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200여 명의 시민 중에는 죽산보 해체에 찬성하는 쪽도 있었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보의 수질 개선, 수량 확보 측면과 함께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죽산보 건설 후 영산강 수위가 올라가 약 30년 만에 황포돛배 유람선 운영이 재개됐고, 관광객이 증가하고 돼 영산포 홍어거리 일대 매출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은 손금주(무소속, 나주·화순) 국회의원은 "정부는 경제성 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죽산보 해체가 타당하다고 하지만, 단순히 비용 대비 편익 수치가 죽산보의 현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보 해체 방안에 대해 반발하는 공주보 주민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의 보 해체 방안에 대해 반발하는 공주보 주민들. 프리랜서 김성태

금강 세종·공주보 일대 주민들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동호 공주시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정부가 느닷없이 보를 사실상 철거할 계획을 밝혀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며 "혈세를 들여 보를 쌓아 놓고 이제 와 갑자기 허문다니 자기 돈이면 이렇게 허투루 낭비하겠냐"고 말했다.

공주시 우성면 평목리 윤응진(55) 이장은 "(정부가 주민 의견을 수렴한다지만) 이미 (보 해체) 방향을 결정해 놓고 하는 (경제성) 계산 방식은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세종·공주·죽산보를 짓는 데 1800억원이 들어갔고, 이를 해체하는 데는 다시 898억 원이 들어간다. 또, 수문개방이나 보 해체로 수위가 낮아질 경우 취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개 보에 1012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여당·환경단체 침묵에 곱지 않은 시선

충남 공주시 금강 공주보.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 기획위원회는 지난달 22일 금강·영산강 5개 보 가운데 세종보·공주보·죽산보를 철거하고 백제보·승촌보 2개는 상시 개방할 것을 제안했다. [뉴스1]

충남 공주시 금강 공주보.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 기획위원회는 지난달 22일 금강·영산강 5개 보 가운데 세종보·공주보·죽산보를 철거하고 백제보·승촌보 2개는 상시 개방할 것을 제안했다. [뉴스1]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보 문제를 둘러싼 정부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빠르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 추진 당시 이명박 정부의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비난했던 당시 야당인 지금의 여당과 환경단체가 지금 정부의 섣부른 보 해체 결정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에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동일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환경부 발표만으로는 보 건설로 인해 수질이 나빠졌다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물리·화학·생물학적 지표를 다양하게 분석하지 않고 보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머리가 아프다고 빨간약을 바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수자원 전문가인 박성제 미래자원연구원 연구개발본부장은 "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며 "(환경단체 등이) 과거 4대강 사업 당시 요구했던 것처럼 충분한 모니터링과 함께 합리적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 기획위원회 내부에서도 이런 의견이 나왔다.
기획위 물환경분과위원장을 맡은 이학영 전남대 생물학과 교수는 "보를 만든 뒤 수질이 악화한 건 사실이지만, 주민 동의만 있다면 향후 최소 5년간은 보를 개방하면서 계속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의미 있는 결과물도 얻고,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방현·위성욱·김호·천권필·백희연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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