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위에 돈 있는 증권가, 1년 넘게 여의도 쫓아다녔죠

중앙일보

입력 2019.03.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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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누리 감독의 첫 장편 ‘돈’은 금융사기에 휘말린 주식 브로커(류준열)의 얘기다. [사진 쇼박스]

박누리 감독의 첫 장편 ‘돈’은 금융사기에 휘말린 주식 브로커(류준열)의 얘기다. [사진 쇼박스]

클릭 몇 번에 억 단위 돈이 오간다. 그날 번 중계수수료가 그 사람의 존재 의미가 된다. 20일 개봉하는 영화 ‘돈’은 이런 여의도 증권가가 무대인 금융사기 범죄물. 돈도 빽도 없이 부자의 꿈만 품고 증권사에 입사한 신입 주식 브로커 일현(류준열)은 불법 거래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나 큰돈을 벌며 변화한다.

류준열 주연작 ‘돈’의 박누리 감독
초짜 주식 브로커의 성장담 다뤄

박누리(38) 감독은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 ‘베를린’ 등 조감독을 거쳐 이번 영화가 장편 데뷔작.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각본도 직접 썼다. 그는 “주식 문외한인데도 원작을 재밌게 읽었다”면서 “대단한 능력도, 재주도 딱히 없는 평범한 인물이 큰돈을 벌 기회를 잡으며 변화하는 성장 드라마에 관심이 갔다”고 했다.

영화는 속고 속이는 사기 범죄물의 전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증권가의 단면을 보여주는 묘사가 흥미롭다. 증권가 출퇴근 시간에 맞춰 1년여 동안 여의도로 출근하며 전·현직 브로커, 펀드매니저 등을 취재했다는 감독은 “매수와 매도를 착각해 몇백 억원 타격을 입고 부도난 회사, 금액에 ‘0’ 하나 잘못 찍어 망해버린 브로커도 있더라. 영화 속 상황은 픽션이지만, 금융범죄 처벌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 의도적 실수가 아예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았다”고 했다.

박누리 감독

박누리 감독

주식은 해봤나.
“취재한다는 생각으로 100만원 좀 안 되게 해봤다. 멋모르고 조금 벌었을 땐 제 손에 그 돈이 잡힌 듯했는데, 며칠 뒤 마이너스로 떨어지니 허무했다. 돈이 숫자에 불과하단 생각을 했다.”
주식을 잘 몰라도 영화를 따라가기가 어렵지는 않은데.
“어려운 설명은 최대한 배제했다. 대신 주식 거래 중 일현의 표정이나 손가락 떨림 같은 반응, 음악, 사운드로 상황을 쉽게 느끼도록 유도했다.”
일현이 주식 거래 ‘클릭질’에 핏발 세우는 모습이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오락을 하듯, 정해진 시간 안에 보이지 않는 뭔가를 잡기 위해 맹목적으로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돈의 크기는 나중에나 실감하는 것이다. 류준열씨 얼굴과 손가락이 ‘열일’했다. 홍재식 촬영감독이 인물과 같이 숨 쉬듯 밀착해서 표현해줬다.”
일현 역에 류준열을 먼저 떠올렸다고.
“준열씨는 어떤 장소, 공간이든 자연스레 녹아드는 배우다. 장편 데뷔작 ‘소셜포비아’부터 새로웠다. 일현을 다채롭고 풍부한 캐릭터로 만들어줬다. 극 중 그가 축구선수 손흥민을 언급하는 장면은 실제 두 사람이 친분 있는 줄도 모른 채 썼는데 대본을 본 준열씨가 신기해하더라.”

원작 소설의 장현도 작가는 20대에  법인 브로커로 일하다가 ‘부티크’를 설립, 거금을 운용하다 굴곡을 겪고 금융계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감독은 “영화는 원작의 인물 구도, 큰 줄기만 가져오고 디테일한 흐름과 결말은 바꿨다”며 “원작자를 만나면 영향을 너무 받을 듯해 대본을 완성한 뒤 만났다. 일현처럼 보통 사람의 느낌이었다. 작가님 경험담을 자연스레 들었다”고 했다.

그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눈여겨봐달라고 했다. 첫 출근길 설렌 표정으로 회사를 올려다보던 일현이 마지막에 짓는 미소는 “관객마다 돈에 대한 관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듯하다”고도 했다. “저한테 돈은… 월세 낼 때랑 아메리카노냐, 라떼냐 몇백원 차이를 고민할 때 가장 실감 나죠. 돈이 삶의 수단이지 목적이 되면 안 될 것 같아요.” 박 감독의 말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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