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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백석역 온수관 파열 100여 일…사고 현장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2월 4일 오후 8시 43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인근에서 발생한 온수관 파열 사고 지점. 사고가 난 도로가 새로 포장돼 있다. 최은경 기자

지난해 12월 4일 오후 8시 43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인근에서 발생한 온수관 파열 사고 지점. 사고가 난 도로가 새로 포장돼 있다. 최은경 기자

18일 낮 12시 30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근처 4차선 도로. 지난해 12월 4일 오후 도로 아래 묻힌 온수관이 터져 100도에 가까운 뜨거운 물이 솟구치면서 한 명이 숨지고 59명이 다친 ‘온수관 파열 사고’가 난 곳이다.

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장 등 17명 검찰 송치 #난방공사 “조만간 재발 방지 종합대책 발표”

주민들에 따르면 지대가 낮은 곳으로 뜨거운 물이 쏠리면서 사고 지점 차량뿐 아니라 반대 차선 쪽 보행자와 상가 등이 큰 피해를 당했다. 도로는 며칠 만에 새로 포장돼 사고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당시 상황을 묻자 주민들은 여전히 몸서리를 쳤다. 사고로 발에 2도 화상을 입은 인근 건물의 경비원 정모(67)씨는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화상을 심하게 입은 사람들은 아직 병원에 있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희생자 송모(69) 씨가 운영하던 구두수선소에 시민들의 추모 꽃다발과 애도의 글이 붙었다. 임현동 기자

사고 직후 희생자 송모(69) 씨가 운영하던 구두수선소에 시민들의 추모 꽃다발과 애도의 글이 붙었다. 임현동 기자

사고로 숨진 송모(69)씨는 차를 타고 사고 현장을 지나다 갑자기 솟구친 고온의 물줄기에 변을 당했다. 안타까운 사연과 생전의 선행이 알려져 송씨가 운영하던 3~4㎞ 거리의 구두수선소에는 추모의 꽃다발과 메모가 가득 놓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구두수선소는 철거됐다.

이 사고는 온수관 시공부터 점검·관리·대처까지 모두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사고 책임이 있는 관련자 17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과실교통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8일 밝혔다.

한국지역난방공사(이하 난방공사) 고양지사장 A씨(54) 등 난방공사 직원 6명, 온수관 공사 당시 난방공사 본사 공사부장 B씨(64) 등 전직 난방공사 직원 3명과 공사를 맡은 시공사 직원 3명, 시공사 하청업체 직원 2명, 온수관을 점검하는 난방공사 하청업체 직원 3명 등이다. 경찰 조사를 바탕으로 사고 원인과 현재 상황을 짚어봤다.

사고 이튿날 오전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에서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고 이튿날 오전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에서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7년 전 온수관 공사 부실하게 한 시공사 

경찰은 사고의 1차 원인으로 부실 공사를 지목했다. 이 온수관은 1991년 만들어졌다. 시공사는 삼성중공업이다. 경찰이 확보한 시방서대로라면 관을 용접할 때 용접이 불량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선작업’을 해야 한다. 판과 판이 맞닿는 부분을 ‘V’ 자로 파 용접용액이 흘러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파열된 관 시공 시 개선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 상태로 장기간 내부 압력을 받아 용접된 배관 조각이 분리되며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봤다.

공사 감독·관리를 소홀히 한 혐의가 있는 시공사와 하청업체 직원들은 경찰 조사에서 “직접 작업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사실을 몰랐다. 감독·관리를 제대로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은 당시 용접공은 찾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오전·오후 작업장을 옮겨 다니며 작업한 데다 오래전이라 작업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며 “작업자보다 작업을 지시하고 감독한 사람의 책임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평소 점검·관리 소홀히 한 난방공사 고양지사 

사고 지역은 누수감지선이 끊어진 구간으로 난방공사는 점검기준을 강화해야 함에도 형식적으로 관리했다. 난방공사 하청업체 역시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난방공사 측은 경찰 조사에서 “이미 사고 전 전체 점검에서 누수감지선이 끊어진 곳이 많이 발견됐다”며 “신규 공사량이 많은 데다 비용이 많이 들어 우선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해 철저히 관리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지침에 따라 땅이 꺼지거나 수증기가 발생하지 않는지, 뜨거운 물이 넘쳐 흐르거나 고온에 풀이 말라 죽지 않았는지 매일 육안 점검을 해야 한다. 경찰에 따르면 난방공사 고양지사는 이와 관련해 하청업체 교육을 하지 않고 점검 요원을 다른 업무에 차출하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점검상황을 보고받는 등 태만하게 관리했다. 하청업체는 육안 점검을 매일 하지 않았다. 사고 당일도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 당시 온수관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온수로 현장에 수증기가 가득 차 있다. 김성룡 기자

사고 당시 온수관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온수로 현장에 수증기가 가득 차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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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직후 초동조치 잘못해 화 키운 통제실 

사고 발생 직후 소방당국이 “도로에 뜨거운 물이 넘쳐 흐른다”고 난방공사 고양지사 통제실에 수차례 전화로 알렸다. 온수 대량 누출 등 ‘심각 단계’에 해당하는 상황이었지만 통제실은 일반 파열 정도로 여기고 매뉴얼대로 조치하지 않았다. 매뉴얼대로라면 심각 단계가 발생하면 5분 안에 지사장에게 보고하고 최대한 빨리 메인밸브를 차단해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하지만 통제실 담당자는 사고 발생 25분 뒤 지사장에게 보고했으며 메인밸브를 차단하는 데 1시간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파열로 물이 새 압력을 표시하는 수치가 50% 이하로 떨어졌지만 통제실 담당자는 단순히 온수 사용량이 늘었다고 짐작해 오히려 압력을 높인 것으로 조사됐다.

난방공사는 지난해 12월 13일 온수관 파열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하며 파열의 원인이 된 용접부 덮개가 있는 443개 지점을 2019년 3월 말까지 보강·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난방공사 관계자는 “온수관 파열 재발 방지 종합대책을 수립했으며 현재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양=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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