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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 킬러, 현찰 5억…영화 같은 ‘청담 주식 부자’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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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씨의 부모가 지난 16일 경기도 평택과 안양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살해 용의자 김모씨가 18일 경기도 안양 동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씨의 부모가 지난 16일 경기도 평택과 안양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살해 용의자 김모씨가 18일 경기도 안양 동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주식거래, 투자유치 혐의로 구속기소된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33)씨의 부모가 살해된 채 발견됐다. 특히 용의자로 지목된 중국동포 3명이 사건 당일 중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확인돼 경찰은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키로 했다.

이희진씨 부모 피살된 채 발견 #5억 증발 … 공범 셋 칭다오로 출국 #경찰 “이삿짐센터 불러 시신 옮겨” #숨진 모친, 아들 증권방송도 진행

18일 경기도 안양 동안경찰서에 따르면 김모(34)씨는 지난달 25일 공범 3명과 함께 안양시 동안구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이씨의 아버지(62)와 어머니 황모(58)씨를 살해했다. 이후 어머니 황씨의 시신은 집 안 장롱에, 아버지 이씨의 시신은 냉장고에 각각 유기했다.

경찰은 17일 김씨를 긴급 체포한 후 공범들의 행적을 추적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공범 3명은 범행 직후인 지난달 25일 오후 6시10분쯤 이씨 부모 자택에서 빠져나와 오후 11시51분쯤 중국 칭다오(靑島)로 출국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 적색수배 후 국내 송환 요청 등 국제 사법공조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경찰에 따르면 주범 김씨는 범행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오전 10시쯤 이삿짐센터를 불러 아버지 이씨의 시신이 든 냉장고를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빼내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한 창고로 옮겼다. 이 창고는 김씨 명의로 빌린 것이라고 한다.

범행 장소인 경기도 안양시의 한 아파트. [뉴스1]

범행 장소인 경기도 안양시의 한 아파트. [뉴스1]

부부의 집에선 이희진씨의 동생(31)이 “차를 판 돈”이라며 부모에게 맡긴 현금 5억원도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 부부의 사망 사실은 20일 뒤인 지난 16일 오후 확인됐다. 이씨의 동생이 “부모님과 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실종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부부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이 아파트에서 단둘이 살아왔다. 장남인 이희진씨는 구속수감 중이고, 형과 함께 불법 주식거래 등을 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지난해 말 구속기한 만료로 출소한 이씨의 동생도 부모와 자주 왕래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들이 살던 아파트단지 안팎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씨 부부를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아들의 신고로 부부의 집으로 출동한 경찰은 장롱 속에 있던 어머니 황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집은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였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확인 등을 통해 범행 시간에 이 집을 드나든 김씨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체포했다.

경찰은 김씨의 진술에 따라 평택의 창고에서 아버지 이씨의 시신이 유기된 냉장고를 발견했다. 냉장고는 문을 열지 못하도록 테이프 등으로 감아 놓은 상태였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숨진 이씨의 아버지가 지난해 초 ‘투자 용도로 쓰겠다’며 2000만원을 빌려갔는데 갚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범행 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중국동포 3명을 고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김씨가 이씨 부부 집에 있는 현금을 노리고 범행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김씨가 별다른 직업이 없는 데다 이씨 부부의 집에서 5억원의 현금을 가지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수감된 이희진씨와 연관이 있는지도 조사 중”이라며 “김씨를 상대로 시신을 왜 평택으로 옮겼는지 등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황씨, 사기 연루 자문사 대표=피살된 황씨는 아들 이희진씨가 주도한 투자 사기에 연루된 회사 K인베스트먼트 대표를 맡았다. 지난해 4월 서울남부지법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황씨는 회사 설립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이씨에게 넘겨주고 이씨는 황씨를 사내이사로 하는 K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이씨는 증권방송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회원들로 하여금 비상장 주식을 매수하도록 권유했다. 황씨는 회원들과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한 다음 주식 매매대금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K인베스트먼트는 150억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장외시장과 이씨 동생이 설립한 A파트너스를 통해 매입한 다음 그 주식을 유료회원들에게 157억원 상당에 매도했다. 총 300억원 규모의 거래가 K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이뤄졌다. K인베스트먼트는 금융위원회로부터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은 업체다. 황씨는 이씨를 대신해 증권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씨는 당시 유료회원에게만 제공되는 증권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검찰은 황씨를 기소유예 처분했지만 황씨가 대표로 있던 K인베스트먼트 법인엔 벌금 5000만원이 선고됐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황씨를 소환조사한 후 당시 전반적 사항을 고려해 기소유예로 처분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씨는 18일 부모의 장례를 위해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에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희진 ‘청담동 주식부자’ 이름 날리다 불법 거래로 구속

이희진씨는 방송과 자신의 SNS에 고급 빌라와 수십억원의 고급 승용차 사진을 올려 유명세를 탔다. [사진 이희진 인스타그램]

이희진씨는 방송과 자신의 SNS에 고급 빌라와 수십억원의 고급 승용차 사진을 올려 유명세를 탔다. [사진 이희진 인스타그램]

이희진씨는 증권전문방송 등에서 주식 전문가로 활약하며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강남구 청담동 고급 주택이나 고가 수입차 사진을 올리는 등 재력을 과시하면서 ‘청담동 주식 부자’로 불렸다. 이씨는 증권방송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회원들로 하여금 비상장 주식을 매수하도록 권유하는 방식으로 불법 주식 거래, 투자유치를 한 혐의를 받았다. 이씨는 이 같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 벌금 200억원, 추징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씨의 동생도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6개월과 벌금 100억원이 선고됐다. 이씨의 동생은 구속기한 만료로 지난해 말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양=최모란·김민욱 기자, 박해리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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