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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모’라뇨…우승 3년 쉬니 근질근질하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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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만 가지 수를 지녔다 해서 ‘만수’라는 별명을 가진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 그는 개인 통산 정규리그 6회 우승을 달성한 덕분에 ‘기록제조기’로 불리기도 한다. [송봉근 기자]

만 가지 수를 지녔다 해서 ‘만수’라는 별명을 가진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 그는 개인 통산 정규리그 6회 우승을 달성한 덕분에 ‘기록제조기’로 불리기도 한다. [송봉근 기자]

“정규 리그 1위를 확정한 날, 헹가래를 생략했다. 감독과 선수는 물론 팬들까지 이렇게 무덤덤한 팀은 없을 거다.”

정규시즌 1위 ‘만수’ 유재학 감독 #주전 부상에도 시즌 내내 1위 #특정 선수 의존 않는 시스템 농구 #“현 멤버 4년 전 우승 때보다 좋아”

최근 울산에서 만난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유재학(56)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정규 시즌 4경기를 남긴 지난 7일, 1위를 확정했다.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팀 통산 7번째 정규 리그 1위로, 10개 팀 중 최다 기록이다. 올 시즌 한 번도 1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득점(87.8점) 등 공격의 거의 전 부문에서 1위다. 100점 이상 넣은 경기가 일곱 번이다. 실점(78점)은 10개 팀 중 가장 적다.

왼쪽부터 라건아, 함지훈, 양동근, 유재학감독, 이대성, 문태종, 이종현. 울산=송봉근 기자

왼쪽부터 라건아, 함지훈, 양동근, 유재학감독, 이대성, 문태종, 이종현. 울산=송봉근 기자

현대모비스의 호화 멤버는 영화 ‘어벤져스’에 빗대 ‘모벤져스’로 불린다. 시즌 중간에 위기가 없지는 않았다. 가드 양동근(38)이 발목 부상으로 3주간 결장했다. 이대성(29)은 종아리를 다쳐 4주간 빠졌다. 키 2m3㎝의 센터 이종현(25)은 지난해 12월 무릎을 다쳐 시즌 아웃됐다(유 감독은 수술대에 오른 이종현 얘기 도중 울컥했다). 귀화선수 라건아(30)는 잦은 국가대표 차출로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2연패가 가장 긴 연패였다.

유재학 감독에겐 개인 통산 6번째 정규 리그 1위다. 그 원동력을 꼽는다면 단연 위기관리 능력이다. 현대모비스는 미 프로농구(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처럼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 농구’를 했다. 유 감독은 “박경상·오용준·문태종이 빈자리를 메우고, 골 밑에서 라건아와 함지훈(35)이 잘 버텨줬다. 사람이 빠져도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연세대 시절 유재학. 그의 아버지는 교편을 잡았고 형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다. [중앙포토]

연세대 시절 유재학. 그의 아버지는 교편을 잡았고 형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다. [중앙포토]

유재학 감독의 한 고교(경복고) 동창은 “똑똑한 재학이가 농구를 안 했다면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했다. 만 가지 수(手)를 지녔다는 뜻에서 유 감독은 ‘만수(萬手)’로 불린다. 별명은 2010년 이상범 감독이 붙여줬다. 유 감독은 “난 임기응변이 좋을 뿐”이라며 “우리 팀은 2군 선수까지 모든 공수 패턴을 다 외워야 한다. 신인 서명진(20)이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1989년 농구대잔치 MVP 출신인 유 감독은 28세에 무릎수술 후유증으로 은퇴했다. 경복고 시절 밤늦게까지 홀로 슈팅 연습을 할 만큼 독종이었다. 유 감독 스스로 “훈련시간만큼은 (나든 남이든) 나태해지는 모습을 못 본다. 운동을 하루만 쉬면 체중이 2㎏ 늘어나는 함지훈은 ‘이 팀 아니었다면 난 벌써 은퇴했을 것’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1999년 대우 제우스 감독 시절 유재학 모습. [중앙포토]

1999년 대우 제우스 감독 시절 유재학 모습. [중앙포토]

1998년 35세에 대우증권 감독을 맡았다. 2000년에는 신세기 빅스(전자랜드 전신)에서 꼴찌도 해 봤다. 당시 노래방에서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라는 ‘사노라면’ 가사를 듣고 울기도 했다. 그런 시절을 거쳐 지금의 명장이 됐다.

 유재학 감독은 2004 년부터 15 시즌 째 팀을 이끌고 있다. 송봉근 기자

유재학 감독은 2004 년부터 15 시즌 째 팀을 이끌고 있다. 송봉근 기자

유재학 감독은 속도에 맞춰 자동차 기어를 바꾸듯, 시대와 상황에 맞춰 변화를 추구해 왔다. 2004년 현대모비스를 처음 맡았을 당시엔 강력한 수비를 강조했다. 올 시즌에는 7~8초 내에 빠르게 공격하는 ‘얼리 오펜스’로 변화를 줬다.

그는 “2년 전 미국 전지훈련 때 미국인 코치를 초빙했다. 이대성과 라건아처럼 스피드가 좋은 선수가 있을 경우 굳이 5대5 세트 오펜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며 “시즌 중반 줄부상으로 수비에 무게를 두기도 했지만, 부상자가 돌아온 뒤 다시 속도를 끌어올렸다”고 전했다.

 한 농구팬은 현대모비스 선수들과 어벤져스 캐릭터를 합성한 포스터를 만들었다. 양동근을 아이언맨, 함지훈을 캡틴 아메리카, 라건아를 헐크와 합성했다. [농구 커뮤니티]

한 농구팬은 현대모비스 선수들과 어벤져스 캐릭터를 합성한 포스터를 만들었다. 양동근을 아이언맨, 함지훈을 캡틴 아메리카, 라건아를 헐크와 합성했다. [농구 커뮤니티]

지난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는 정규 리그 1위 두산 베어스가 SK 와이번스한테 덜미를 잡혔다. 현대모비스는 4~5위 6강 플레이오프(PO) 승자와 4강 PO에서 만난다. 유 감독은 “4년 전 우승 멤버보다 (현 멤버가) 조직력이 좋고 백업도 강하다”며 “3년 쉬었더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재학 감독은 19일 이대성과 자유투 대결 이벤트를 펼친다. 30초간 자유투 10개를 던져 더 많이 넣은사람이 승리한다. 이대성은 승리해 화려한 플레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획득하겠다고 했다. 유 감독도 승부에서는 무조건 이겨야하는 성격이라 절대 지지 않겠다고 했다. [사진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19일 이대성과 자유투 대결 이벤트를 펼친다. 30초간 자유투 10개를 던져 더 많이 넣은사람이 승리한다. 이대성은 승리해 화려한 플레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획득하겠다고 했다. 유 감독도 승부에서는 무조건 이겨야하는 성격이라 절대 지지 않겠다고 했다. [사진 현대모비스]

‘만수’ 유재학 감독은…

생년 월일: 1963년 3월 2일(56세)
체격: 키 1m80㎝, 몸무게 80㎏
포지션: (선수시절)포인트 가드
소속팀: (선수시절)경복고-연세대-기아자동차
(1989년 농구대잔치 MVP,
28세 부상으로 은퇴)
감독 경력: 대우증권(1998-99), 신세기
(1999-2003), 전자랜드(2003-04),
현대모비스(2004~)
주요 우승: 정규리그 6회(2006·2007·2009·
2010·2015·2019), 챔프전 5(2007·
2010·2013·2014·2015), 아시안게임
금메달(2014·대표팀 감독)
각종 기록: 감독 최초 600승, 최초 1000경기 출전,
플레이오프 최다승(51승)
별명: 만수(萬手·만가지 수를 가졌다 해서)

울산=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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