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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배우 얼굴 하나 만드는 데 드는 노력 생각하니 영화 한 편 허투루 안 보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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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영화 하나 만드는 데 이렇게 세세한 작업을 하는 줄 몰랐어요. 배우 얼굴 하나 만드는 데 한 시간씩이나 걸린다는 것도요.” 양윤서 학생기자가 ‘영화의 얼굴창조전’을 관람한 소감이에요.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를 찾은 노효은·양윤서 학생기자와 백서정 학생모델은 영화 분장팀 ‘하늘분장’의 육은향 분장팀장, 김효진 분장사를 만나 설명을 들으며 전시를 관람했죠. 육 팀장은 2011년부터 특수분장 일을 했고 김 분장사는 일한 지 1년 반 된 신입 분장사예요.

'영화의 얼굴창조전'에서 '분장'을 배우다

영화의 얼굴창조전은 1999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 분장팀 2주 실습으로 시작, 2010년 분장감독으로 데뷔하면서 조태희 감독이 꾸린 팀 하늘분장에서 주최했어요. 김 분장사에 따르면, 현재 소속 인원은 15명입니다. "그럼 다 같이 분장에 참여하시는 거예요?" 백서정 학생모델의 질문에 김 분장사가 답했어요. "영화 현장마다 10~11명이 동행해요. 물론 그보다 많을 때도 있죠. 인원이 부족하면 다른 분장사들을 단기 섭외해 함께 일하기도 하죠." 이어 노효은 학생기자가 질문했어요. "그럼 분장사 분들은 다 쉬지 못하고 일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교대로 일하거든요. 배우 한 명에게 짧게는 한 시간 반에서 길게는 네 시간 반까지 분장할 때도 있어요. 보통 남배우 분장에 시간이 더 걸려요. 여배우는 자기 얼굴을 살리는 메이크업만 하면 충분할 때가 많은데 남배우는 메이크업에 수염까지 붙여야 하니까요.” 영화에 몇 분 등장하지 않는 장면 뒤에는 분장사들의 숨은 노고가 있었던 셈이죠.

분장이 뭔지 잘 모를 친구들을 위해 기본 개념을 살필까요. 분장 즉 메이크업(make up)은 일반적으로 화장이라는 말로 쓰지만, 영화 등 영상매체에서는 메이크업을 등장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도구로 쓰죠. 배우의 얼굴은 캐릭터를 표현하는 도화지이기 때문에 머리 모양과 의상, 액세서리와의 조화를 통해 미적 표현, 사회적 표현을 더 잘할 수 있게 돕습니다. 영화의 상황별 설정에 따른 분장도 배우가 상황에 녹도록 돕는 필수 요소예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얼굴창조전을 통해 주로 배운 특수분장은 영화 등 영상매체에서 주로 쓰는 메이크업의 한 분야고요.

캐릭터를 위해 연구한 배경지식·아이디어·경험·사상 등을 바탕으로 원하는 목적·극본·캐릭터 이미지에 부합되도록 배우의 얼굴을 만들어요. 영화는 대본 순서대로 촬영하지 않거든요. 결말을 시작 전에 촬영할 수도 있고 대본을 세세하게 변경할 수도 있어요. 이 때문에 같은 날 찍지 않더라도 당일 촬영한 것처럼 분장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죠. 예를 들어 여러분이 학교에 가는 날이 배경이라면 새 학기 설렘이 가득한 게 표현되도록 새 가방, 새 구두, 새 옷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옷이 촬영하면서 헤지면 어떻게 할까요. 그냥 찍냐고요. 아니요. 같은 옷을 여러 벌 준비하고 여러분의 얼굴도 첫 촬영 날과 똑같게 분장해요. 작은 것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작업이 필요하겠죠.

영화에서는 1895년 미국 역사 드라마 ‘메리 여왕의 처형(The Execution of Queen Mary)’에서 주인공 머리가 잘려나간 장면을 연출할 때 최초로 특수분장을 했어요. 이후 ‘드라큘라’(1931), ‘프랑켄슈타인’(1931), ‘미이라’(1932), ‘런던의 늑대인간’(1935) 등의 작품에서도 분장기법이 눈에 띄었죠. 1890년대부터 특수분장을 사용한 해외와 달리 국내에선 컬러 TV가 보급되면서 특수분장이 본격 등장했죠. KBS에서 ‘전설의 고향’(1989) 구미호 캐릭터를 만들면서 귀 또는 코에 라텍스를 변형·활용해 국내 특수분장 시장을 열었죠. 이때만 해도 배우의 얼굴에 특수분장을 하기보다 괴물 등 상상 속 존재를 만들 때 특수분장을 사용한 셈이죠. 이어 1990년대에는 국외 특수분장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됩니다. 조태희 분장감독도 90년대 말 특수분장을 배우기 시작했죠.

"영화 분장에서 수염은 한 번에 붙이는 망수염(한 올(망)씩 떠서 붙였다 하여 뜬수염이라고도 함), 한 가닥씩 붙이는 가닥수염 두 종류로 구분해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서 배우 이병헌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든 작업인 가닥수염을 선택했죠. 한 번에 붙이는 수염이 훨씬 쉽고 일찍 끝나지만 배우가 한 가닥씩 붙이는 걸 골라서 4개월이 넘는 촬영 동안 그 방식을 선택한 거예요." 육 분장팀장의 설명에 노효은 학생기자가 물었어요.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예요?" "배우마다 다르지만 개인의 선호를 맞추긴 해요. 영화 제작 기간에 배우별로 피부결, 붙여야 하는 수염, 써야 하는 붓, 핀셋 등이 세세하게 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분장통을 따로 제작해서 개별로 들고 다닙니다. 분장통을 다 챙기는 것도 힘들죠. 이렇게 한 번 보관하기 시작한 '배우 개인용 분장통'은 하늘분장에서 계속 보관해요. 다음 작품에서 같은 배우를 만나면 또 쓰고요." 육 팀장이 답했어요.

이날 학생기자단은 지하 2층 '역린' 코너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는데요. 보호자와 함께 영화를 봤다는 학생기자의 눈길을 끈 건 '역린'의 중전 역을 맡은 한지민 배우 관련 분장 소품입니다. "작품이 끝나고 정말 여기저기에서 문의가 많아 계속 답해야 했어요. 감독님이 고증도 중요하지만 창의적인 분장을 하는 데 힘을 쏟았던 작품이거든요. 영화 자체가 창의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라 판단해, 고증을 참고하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데 집중해 도전했거든요. 한지민 배우는 두상이 참 예뻐서 은색, 절제된 금색 장신구들의 조화로 당시로선 '말도 안 되는 새로운 비녀, 첩지'라는 평을 받은 새 중전 캐릭터를 만든 거예요." 육 팀장의 설명에 노효은 학생기자가 물었어요. "영화 소품이 고증과 달라 항의하는 분들이 많이 있나요?" "그렇죠. 역사 공부하시는 분들이 많이 항의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영화만 보고 '당시 시대상이 저랬구나' 착각할 수 있다는 우려인 거죠." 김 분장사가 답했어요.

소품엔 고증이 철저해야 한다는 것, 고증과 창의성의 균형을 어떻게 조절할지 고민한다는 것. 확인했죠. 그렇다면 앞서 여러 번 언급했던 수염 붙이기 등 특수분장을 배우에게 할 때 뭐가 또 중요할까요. 육 팀장에 따르면, 특수분장용으로 인체에 무해하게 만든 제품이긴 하지만 얼굴에 매일 접착제를 붙이면 사람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요. 이 때문에 장면별 분장을 할 때 기획 단계에서 어떻게 할지 꼼꼼하게 그림을 그리고 배우 개인과 인터뷰해 피해야 할 제품은 없는지, 땀이 잘 나는 편인지 등을 확인합니다. 또, 넓은 수염이 어울릴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길어지는 수염이 자연스럽게 어울릴지에 대해서도 사전 기획 단계에서 스케치, 두상 크기 등을 확보해 연구하죠. "고독하고 힘든 배경을 가진 등장인물에게는 세심하게 기획하기 때문에 배우와 매일 붙어 어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작업을 해요. 불평 한마디 없이 유쾌하게 소화하는 배우들에게는 정말 고맙죠." 육 팀장이 말했어요.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노효은(파주 와석초 6) 학생기자

영화를 볼 때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분장을 하나하나 보지 못했어요. 전시에 와서 10초 분량 영상을 위해 하나하나 뭔가를 제작한다는 걸 처음 배웠죠. 사극 영화를 볼 때면 '아, 의상 예쁘다. 나도 입고 싶네' 정도였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분장 하나하나에 담긴 노력을 느꼈거든요. 예를 들어 '수염은 이럴 때 거친 느낌을 쓰자', '전쟁 중이지만 그래도 임금이니 정돈된 수염을 쓰자' 등 설정을 한다는 생각은 못 했거든요. 무심코 넘어간 장면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 처음 안 거죠. 옷·장신구·가발이 배우에게 어울리게 노력한 분장사들은 대단해요. 앞으로는 영화를 보면서 배우 뒤에 숨은 이들의 노고까지 생각할 거예요.

백서정(용인 모현중 1) 학생모델

소년중앙 학생모델로서 처음 취재라 설레고 많이 기대했어요. 한편으로는 서로 말도 안 해본 친구들끼리 어떻게 다니려나, 전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별의별 걱정을 다 했죠. 하지만 생각과 달리 신기하고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어요. 빨리 친해진 친구들과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고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열심히 제작했는데 영화에 잘 나오지 않아도 아쉽지만 사소한 걸 표현한 스스로에게 뿌듯했다'는 부분이에요. 조태희 감독이 그랬다는 설명을 듣고 사소한 것도 무시하지 않고 더 꼼꼼하게 확인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비녀·관자 등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도 하나하나 의미를 담아 수개월 동안 제작하는 게 멋져 보였고요. 마지막에 가발을 쓰고 사진 찍을 땐 정말 웃겼어요. 좀 내성적인 성격인데, 재밌는 사진을 남겼다는 게 기쁘고 좋았죠. 다음 취재 때도 취재 첫날인 오늘이 기억에 많이 남을 거예요. 함께했던 친구들도요.

양윤서(대전 목양초 4) 학생기자

9기 학생기자가 돼서 첫 취재를 했어요. 무척 설레고 뿌듯했죠. 하지만 마음속 다른 목소리는 '내가 잘할까?'라는 의구심이었죠. 아라아트센터에 있는 분장 소품들을 보고 영화에 나오는 배우를 분장하는 데 많은 정성·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영화 상영은 두 시간 남짓일 텐데 영화에 나오는 배우를 분장하는 시간은 그보다 몇 배 넘잖아요. 앞으로는 '영화를 더 자세하게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영화에 대한 많은 사실 중에서 액션 장면에선 배우의 상투가 풀리지 않게 가방 안에 망을 넣어 두피에 씌워 고정한다는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순은으로 만든 상투도 있었고 영화 '역린'에선 정조대왕을 '포효하는 사자'에 빗대 관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기억에 남아요.

영화의 얼굴창조전

장소: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아라아트센터 지하 1~4층
관람시간: 4월 23일까지, 오전 11시~오후 8시(입장 마감 7시, 휴관일 없음)
요금: 성인 1만5000원, 초·중·고생 1만2000원

글=강민혜 기자 kang,minhye@joongang.co.kr, 사진=이원용(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노효은(파주 와석초 6)·양윤서(대전 목양초 4) 학생기자·백서정(용인 모현중 1) 학생모델, 참고 도서=『특수분장』(마루기획), 『무대의상 디자인』(연극과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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