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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 정말 모두에게 좋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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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팀장

김원배 사회팀장

올해 초 가끔 가는 동네 빵집에 붙은 ‘제로페이’ 안내 스티커를 봤다. 서울시 주도로 제로페이를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설치된 매장을 보긴 처음이었다. 그래서 “제로페이 하셨네요”라고 주인에게 물었더니 “구청에서 하도 전화가 와서 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 3·1절 연휴 동네 상가에서 제로페이 가입을 권유하는 모습을 봤다. 자신을 구청 직원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상가 점포에 가입신청서를 주면서 제로페이의 장점을 설명했다. 자영업자가 부담하는 가맹점(연매출 8억원 이하) 수수료율이 ‘제로’라는 것과 소비자도 ‘40%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제로페이 홍보를 위해 일선 구청이 난리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휴일까지 이런 줄은 몰랐다.

서울시는 300억원 규모의 교부금을 마련해 제로페이 유치 실적에 따라 구별로 차등 배분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교부금을 더 받으려는 구청에선 직원에게 목표량을 할당했다. 자연히 구청 공무원의 불만도 커졌다. 지난 7일 서울의 한 구청 노조는 ‘제로페이 강제 할당 정당한가’라는 제목의 성명까지 냈다.

공무원 노조가 반발하자 최근엔 모집 요원을 통해 가맹점을 늘린다. 제로페이를 채택하는 가맹점 한 곳을 유치하면 1만5000원의 수당이 지급된다.

서울시는 “가맹점을 일정 수준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런저런 비판이 나오지만 서울시는 계속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가맹점을 늘려야만 제로페이가 활성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맹점 수는 최근 9만여개 정도로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맹점 수가 전부는 아니다. 며칠 전 제로페이 스티커가 붙어 있는 가맹점에서 물건을 사고 결제가 되느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점포 주인은 “제로페이 결제는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현금이나 카드 내면 되지 바쁜데 왜 귀찮게 하느냐’는 느낌이었다.

현재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가맹점의 수수료율은 신용카드 0.8%, 체크카드 0.5%다. 5000원짜리 팔면 25~40원이 수수료다. 자영업자 입장에선 손님이 몰리거나 바쁠 때 결제를 얼마나 빨리하느냐도 중요하다. 지금처럼 손님이 QR코드를 읽어서 결제 금액을 입력하고, 업주가 결제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으론 확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정부는 다양한 수단을 갖고 있다. 얼마 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를 검토한다고 했을 때 제로페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는 없던 일이 됐지만 제로페이를 쓰면 100만원 한도에서 소득공제 혜택을 추가로 주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서울시와 정부도 제로페이의 한계를 보완하겠다고 하니, 세제혜택 등이 뒷받침된다면 지금보다 사용이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제로페이가 ‘성공’하는 과정에서 생길 것이다. 시내 도로에 걸려 있는 제로페이 홍보 현수막엔 ‘모두에게 좋다. 정답은 제로페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정말 그럴까.

어떤 서비스엔 합당한 비용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공평하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누군가의 지갑에서 다른 사람의 계좌로 돈이 이동하는 결제 서비스는 공짜로 이뤄질 수 없다. 결제 수단간, 회사 끼리의 경쟁도 치열하다. 한쪽이 ‘0’이 되면 누군가는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

구청 공무원을 동원한 서울시에 이어 정부가 정책적으로 제로페이 띄우기를 시작하면 시장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민간 사업자가 있는 분야에서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하는 것이 옳다. 영세 자영업자를 지원하겠다면 차라리 직접적인 세제 지원을 늘리는 게 확실하고 간명한 방법일 수 있다.

김원배 사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