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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빅딜 문서 건네자 김영철 '어쩌자는 거냐'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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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빅딜 문서’를 놓고 북·미 간에 감정적 언사가 오갔으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대북 강경론을 주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 소식통이 전한 하노이 회담 #볼턴 아닌 폼페이오가 강경론 #트럼프, 회담 직전 빅딜안 재가 #김영철, 문서 내민 미국 측에 #“어쩌자는 거냐” 강한 불만 제기

16일(현지시간) 복수의 워싱턴 외교 소식통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측근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 주도 아래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돌발적 제안에 말려들지 않도록 미국 측 요구사항을 문서로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굳혔고, 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한다.

미국 측은 하나는 한글, 하나는 영어로 된 문서(paper)에서 “핵·미사일 및 모든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폐기, 영변과 영변 외 지역의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한 신고와 폐기 등 광범위하게 정의된 비핵화를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전반적인 비핵화 로드맵(수순)도 제시해야 한다고 문서에서 요구했다고 한다. 이 문서는 미국 정부 차원의 첫 공식 문서가 되는 만큼 국무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재무부, 에너지부 등의 핵심 관계자들이 모여 누락 사안이 있는지 등을 놓고 수차례 논의를 거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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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노이 회담장에서 이를 받아든 김 위원장은 당황해하며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 북한 측 협상팀도 “정상 간 회담에서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지 (문서로 제시하면) 어쩌자는 거냐”며 불만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특별한 관계’를 활용해 제재 완화 등을 ‘담판’을 통해 얻어내려 했던 북한 측 계산이 어긋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 회견에서 밝힌 ‘김 위원장이 미국의 기이한 협상 태도에 곤혹스러워했다’ ‘미국의 강도 같은 태도가 결국 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하지만 미 국무부 입장에서는 이 문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으로 어정쩡한 타협을 하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고, 나아가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북한을 이 틀 안에 묶어 둘 수 있는 ‘회심의 카드’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소식통은 또 “트럼프 행정부는 앞으로 이 ‘빅딜 문서’에 북한이 어떤 ‘답장’을 보내오느냐에 따라 실무 협상, 제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확대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최선희 부상이 미국 측 협상팀을 급히 찾아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영변 핵시설은 “핵 시설 모두를 포함한다”는 메시지를 전했을 당시 폼페이오 장관은 “이런 딜(deal·협상)을 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고 한다. 존 볼턴 백악관 NSC 보좌관도 “이러는 건 대통령을 우롱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최근 일본을 방문, 일 정부 측에 “하노이 회담이 볼턴 보좌관 때문에 ‘노딜(No deal)’이 된 것처럼 돼 있지만 사실 회담장에서 볼턴보다 폼페이오의 입장이 강경했다. 폼페이오는 향후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이루는 데 북한과의 안이한 타협은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봤다”고 밝혔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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