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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표준 치료법 없는 NK·T세포 림프종 면역항암제 개발 눈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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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암은 불치병’이란 인식이 바뀌고 있다. 국가암등록 통계에 따르면 2012~2016년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0.6%로 약 10년 전(2001~2005년)에 비해 16.6%포인트 증가했다. 암 치료율을 높이는 데는 항암제의 역할이 컸다.

진화하는 항암제 #"환자 대상 2상 임상시험 중 #지속적으로 암세포만 죽여 #재발 방지용 치료제로 기대"

1세대 화학항암제부터 최근 주목받는 표적항암제·면역항암제까지 항암제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많은 제약사가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수명 연장에 기여하기 위해 연구에 몰두한 결과다. 국내 대표적 혁신형 제약기업인 보령제약의 연구 성과를 통해 항암제 개발 트렌드를 짚어봤다.

 최근 제약계는 부작용이 없고 재발을 막는 면역항암제 개발이 활발하다. 보령중앙연구소 연구 원이 개발 중인 항암 물질을 관찰하는 모습. [사진 보령제약]

최근 제약계는 부작용이 없고 재발을 막는 면역항암제 개발이 활발하다. 보령중앙연구소 연구 원이 개발 중인 항암 물질을 관찰하는 모습. [사진 보령제약]

암 치료제는 크게 세 종류다. 암세포의 증식과 성장을 억제하는 화학항암제, 암세포의 특정 부위에 작용하는 표적항암제, 몸의 면역 세포를 활용하는 면역항암제 등이다. 화학항암제는 암세포가 무제한적이고 급속히 자란다는 특성을 이용해 증식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암을 치료한다. 하지만 정상 세포도 빨리 증식할 경우 손상을 받아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는 이런 한계를 보완한 치료제다.

암세포 주요 성장·조절 인자 동시 공략

보령제약은 이들 항암제 개발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BR2002’(개발명)는 2016년 한국화학연구원으로부터 도입해 자체 개발 중인 표적항암제이자 면역항암제다.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성 림프종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림프종은 몸의 면역체계를 구성하는 림프 조직에 생긴 종양을 말한다. 악성 림프종은 조직 형태에 따라 호지킨성과 비호지킨성으로 구분하는데 대부분 비호지킨성이다. 연간 국내 환자 수는 4000명 수준이다.

 BR2002는 PI3K·DNA-PK 저해제다. PI3K는 세포 내 신호 전달 과정을 조절하는 효소로 세포의 성장과 증식, 분화, 이동, 생존 등 여러 기능을 조절한다. PI3K가 악성 종양에서 과하게 발현되면 암세포가 증식하거나 전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DNA-PK는 세포의 DNA 손상을 인지하고 수선을 담당하는 효소다. 비호지킨성 림프종 치료제 가운데 암세포의 주요 성장·조절 인자인 PI3K와 DNA-PK를 동시에 공략하는 건 BR2002가 유일하다. BR2002는 올해 안에 미국과 한국에서 비호지킨성 림프종을 대상으로 한 1상 임상시험을 시작한다. 2020년에는 신체의 장기에서 발생하는 고형암 치료제로도 임상시험에 나설 계획이다.

 요즘 항암 치료 시장의 최대 화두는 면역항암제다. 면역항암제는 몸속에 있는 면역 세포를 활용한다. 독성에 따른 부작용 발생 우려가 적고 치료 효과가 뛰어나 글로벌 제약기업이 앞다퉈 개발에 나서고 있다. 보령제약의 자회사인 바이젠셀은 면역항암제 ‘VT-EBV-201’(개발명)을 개발 중이다. 현재 NK·T세포 림프종 환자를 대상으로 2상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약물은 암세포 표면에 결합하는 T세포(면역 세포)를 골라내 배양한 뒤 환자의 몸에 투여해 암을 치료하는 세포 치료제다. 2021년 2상 임상시험을 완료한 뒤 2022년 조건부 허가를 받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NK·T세포 림프종은 엡스타인 바 바이러스(EBV) 감염과 관련이 있다. EBV는 동양인의 약 90%가 감염돼 있을 만큼 흔한 바이러스다. 일반인은 감염되더라도 문제가 없지만 면역체계가 손상돼 있으면 잠복하던 바이러스가 활성화해 암을 유발한다. NK·T세포 림프종은 아시아권에서 많이 발생하며 완치 후 2년 이내 재발률이 75%나 된다.

 바이젠셀은 환자나 건강한 사람의 혈액에서 T세포를 분리해 특정 항원만을 인식하는 세포독성 T세포(CTL)를 배양시키고 표적 항원에 따라 다양한 면역 세포를 생산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CTL은 종양 세포만을 특이적으로 인식하고 제거하는 세포를 말한다. EBV와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종양 세포를 사멸시키려면 CTL 반응이 필수적이다.

투여한 환자 11명 모두 5년 생존율 90%

VT-EBV-201은 환자의 면역체계(세포)를 이용해 암세포만 골라 죽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다. 일부 세포는 일종의 기억 세포로 환자의 몸에 남아서 재발을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해 생존 기간을 연장하는 데 기여한다. 김태규 바이젠셀 대표는 “바이젠셀의 T세포 치료제는 T세포의 살해·기억 세포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며 “초기에는 종양의 크기를 줄이고 치료 후에는 미세한 잔존암을 지속적으로 공격해 암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치료제와 큰 차별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유전자세포치료학회의 공식 학술지(Molecular Therapy, 2015)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NK·T세포 림프종 환자 11명에게 VT-EBV-201을 투여한 결과, 11명 모두가 생존했으며 5년 무병 생존율은 90%에 달했다. 이는 모든 환자를 5년 이상 장기 추적·조사한 결과다. NK·T세포 림프종은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표준치료법이 없는 데다 재발하면 상당수가 사망한다. 기존의 화학 합성 항암제로 치료했을 때 2년 생존율이 26%에 불과하다.

 바이젠셀은 단일 항원이 아닌 다수 항원에 반응하는 T세포 치료제도 준비하고 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뇌종양·폐암 등이 대상이다. 김 대표는 “바이젠셀의 T세포 치료제는 암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치료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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