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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마크]이완구 "'성완종 리스트' 조작 檢에 끝까지 책임 물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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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월 충남 천안에서 열린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팬클럽 행사인 ‘완사모’는 정치권에서 화제가 됐다. 2015년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갑작스레 국무총리에서 물러난 뒤 정치적 공백기를 가진 이 전 총리가 정치 재개를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충청뿐 아니라 영남 등에서 현역의원 30여명이 참석해 시선을 끌었다.

이 전 총리는 내년 총선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한국당에서도 '이완구 역할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또 충청권에선 JP(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후 사그라든 '충청 대망론'의 불씨를 살릴 후보로 꼽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전 총리는 과연 어떤 포석으로 정치권에 나서려는 것일까. 13일 “전에 같이 일했던 공무원들의 요청으로 잠시 식사나 하러 왔다”는 이 전 총리를 세종시에서 만나 밀착마크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 [중앙포토]

이완구 전 국무총리 [중앙포토]

-10년 전 여당 소속이면서도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 방침에 반발해 충남지사 직을 던졌다. 오늘 와보니 어떤가.
=당시 머릿속에서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첨단도시이자 전원도시의 복합 기능을 가진 도시를 구상했다. 그런데 오늘 와서 보니 과거 서울 근교에 지었던 신도시처럼 난개발이 된 모습이다. 과연 내가 이걸 위해서 막중한 지사직을 던졌나, 이것이 우리가 바랬던 명품도시인가 싶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완구 충남지사가 2009년 12월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세종시특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이완구 충남지사가 2009년 12월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세종시특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 대법원 최종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그러면서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 등 검사 7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어떤 이유인가.
=하늘 아래 그런 일이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보통 정치인은 재론되는 걸 원치 않는다.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나는 정치검찰은 없어져야겠다는 신념, 그리고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편향된 권력남용은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는 소명의식 속에 내 상처를, 아프지만 다시 들춰내기로 했다.

-검찰과 무엇을 따지고 싶은가
=전직 의원이자 직전 총리인 나도 당했을 정도다. 검찰이 자료를 자체적으로 만들고는,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폐기했다. 검찰은 이완구가 아니라 국민에게 왜 수사를 그렇게 했는지 답을 내놔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 국회 들어가면 이 문제를 반드시 국정감사나 청문회를 통해 밝힐 것이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에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에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세종보를 비롯, 4대강 보를 철거하려고 한다.
=졸속 결정이다. 외국의 경우 최소한 십수 년 정도 모니터링 기간을 거쳐 환경영향을 살피고, 보의 순기능과 역기능 등을 고찰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2년도 안 됐는데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철거하겠다는 거 아닌가. 특히 세종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작한 사업이다. 충청에선 '낙동강(영남)이었어도 이렇게 서둘러 보를 없앴겠나'라는 말이 나온다. 민심이 격앙돼 있다.  국정 책임은 결국 대통령한테 간다. 문 대통령이 이곳에 직접 와보셨으면 한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018년 4월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성완종 리스트’ 관련 자신의 의혹을 보도한 신문 복사본을 공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018년 4월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성완종 리스트’ 관련 자신의 의혹을 보도한 신문 복사본을 공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내년 총선엔 어디로 출마하나.
=세종이나 천안, 대전, 홍성·예산 등 여러 곳에서 출마 요청이 있지만,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출마지를 어디로 할지, 최대한 주변 의견을 들을 생각이다. 나의 출마가 동료 후보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시너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 인터뷰에서 충청 대망론과 함께 충청 홀대론도 함께 언급했다.
 =JP 서거 이후 정치적 리더가 없다 보니 충청인 사이에선 헛헛한 마음이 있는 게 사실이다. 또 문재인 정부가 인사 등에서 충청권을 소외하고 있지 않나. SK 하이닉스 유치전에서 유력했던 천안이 탈락한 것도 지역 민심을 악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희망과 기대가 에너지를 창출하는 동인 아닌가. ‘충청 대망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좌절하기보다 미래를 향하자는 의미다.

6·13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이 완패하자 ‘이완구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4월 22일 대전 둔산동 박성효 자유한국당 대전시장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6·13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이 완패하자 ‘이완구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4월 22일 대전 둔산동 박성효 자유한국당 대전시장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 전 총리는 풍부한 공직 경력을 갖고 있다.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경제기획원 사무관과 경찰서장을 거쳐 미국 LA 영사로 근무했다. 이후 충남ㆍ북 경찰청장으로 재직한 뒤 1996년 15대 총선에 도전해 충남 청양-홍성에서 당선됐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을 오가다 재선에 성공하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충남지사에 당선되며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2009년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방침에 맞서며 지사직을 던졌다. 이후 공백기를 거쳐 2013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남 부여-청양에 출마해 77%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2014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2015년 국무총리 임명 등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되면서 총리직에서 70일 만에 사임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한국당은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의 실정이 거듭되다 보니 실망감을 호소하는 여론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하지만 ‘과반을 기대한다’는 등 오만한 모습을 보이면 필패한다. 겸손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보수대통합은 필수다. 지난 지방선거 때 지원 유세를 하러 다니면서 야당이 처한 현실을 목도했다. 민주당 지지율이 내려간다 해도 분열된 야당으로는 힘들다.

 -40여년 공직자의 입장에서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나는 13년 동안 충남을 이끈 심대평 전임 지사에 이어 2006년 충남지사에 취임했다. 당시 나는 심 전 지사를 13년 동안 모신 비서실장을 비롯해 7명의 비서 등 단 한 사람도 바꾸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의 잣대와 기준으로 전임의 치적을 적폐로 몰아가는 자세엔 결코 동의할 수가 없다. 국정운영엔 공과(功過)가 있고, 그것은 국가 지도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문재인 정부가 야당 및 보수진영과 부단한 대화를 통해서 협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국정 동력은 만들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실정이라면.
= 경제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 공무원 증원이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은 물론 세수 증대를 통해서 재정을 확충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1990년대 초 일본과 비슷하다. 일본은 그로 인해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하지 않았나. 실험적인 경제정책은 위험하다.

새누리당 이완구·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13일 국회 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사진기자회 체육대회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새누리당 이완구·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13일 국회 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사진기자회 체육대회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여야 관계가 또 냉각기다.
=2014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박영선ㆍ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 방에서는 짜장면을 여러 번 먹었다. 아무리 양당이 험악해도 우리는 서로 존중했고, 그래서 세월호 특별법도 통과시키고 법정 기한에 맞춰 예산안도 통과시켰다. 협상 파트너끼리는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건 곤란하다. 그래도 여당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문 대통령도 말로만 협치하지 말고 야당과 진정 어린 대화에 나서야 한다.

세종=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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