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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法석]서초동 중앙지검, 밤 10시만 되면 몰리는 택시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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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야단법석(야단法석)'에서는 법조계의 각종 이슈와 트렌드를 중앙일보 법조팀 기자들의 시각으로 재조명합니다. '야단法석'을 통해 법조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세요.

14일 오후 10시에 서울 중앙지검 직원들이 퇴근하기 위해 택시를 잡고 있다. 김민상 기자

14일 오후 10시에 서울 중앙지검 직원들이 퇴근하기 위해 택시를 잡고 있다. 김민상 기자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중앙지검 로비는 밤 10시만 되면 택시들이 긴 줄을 늘어섭니다. 로비 앞 차도는 1차로라서 택시끼리 경적을 울리며 서로 싸우는 경우도 있죠. 택시가 몰리는 이유는 물론 밤늦게까지 일하는 검사와 수사관들의 퇴근길을 책임지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검. 오후 10시가 되자 30~40명의 중앙지검 직원들이 우르르 퇴근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우리 쪽으로 (사건이) 들어왔던데”라며 동료들과 쓴웃음을 나눈뒤 퇴근하는 직원들도 눈에 띕니다.

 이 시간에 통닭이 야식으로 배달되기도 합니다. 로비까지만 배달되는 치킨을 받으러 슬리퍼를 신은 직원들이 종종 걸음으로 내려옵니다.

 5~6년 전부터 이 시간대면 주변에서 대기한다는 택시기사 전모(61)씨는 “오후 10시 이후가 돼야 공무원 카드로 택시비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특히 이 시간대에 많이 퇴근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연초에 정한 야근비 예산이 바닥나는 12월말이 되면 개인 카드도 나옵니다. 그럴 때면 “상관인 검사가 개인 돈으로라도 정산해 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며 카드를 건네는 수사관도 있다더군요.

 다만 전씨는 “새벽 3~4시에도 퇴근하는 검사와 수사관들이 아직도 있다”며 “택시에 타면 대부분 곧바로 졸기 시작하는데 경련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과도한 업무로 인해 피로가 쌓여서 그런 듯하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못된 검사들이 주로 나오지만 택시 안에서 곯아떨어진 검사들을 보면 열심히 일하는 학교 교사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합니다.

 중앙지검에서 근무하는 현직 검사들 중 밤샘근무하고 사우나를 갔던 옛 기억들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인사들이 있습니다. 수사를 잘 마무리짓고 새벽에 목욕과 이발을 한 뒤 검사장에게 자신있게 보고하러 들어가는 표정이 그려집니다. 지금은 심야수사가 줄어들면서 이런 장면도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14일 오후 10시 환하게 불이 켜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정문 앞으로 늘어선 택시들.. 김민상 기자

14일 오후 10시 환하게 불이 켜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정문 앞으로 늘어선 택시들.. 김민상 기자

 주 52시간 근무 시대에 민간 기업 직장인들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검찰 공무원은 주 52시간 근무제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이유가 뭘까요.

주 52시간 근무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지난해 7월부터 '300인 이상 민간 사업장'들만 대상으로 도입됐습니다. 공무원은 아예 적용이 안 되는 거지요. 주 52시간 근무를 공무원에게도 적용하려면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 되는 이유가 있다네요. 들어보니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안전이나 국가 주요 업무를 다루는 직무는 주 52시간 근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소방공무원이 화재진압을 하는 도중에 주 52시간 근무를 지키기 위해 일을 멈추고 귀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는 얘기지요.  이 때문에 대다수 공무원은 월 57시간에 한해 초과 근무 수당 주어지지만 그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제한 규정도 없습니다.

검찰 수사관 온라인 카페에 올려진 글.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검찰 수사관 온라인 카페에 올려진 글.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다른 조직보다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서울중앙지검은 큰 사건에 의지를 보이는 검사들을 제외한 수사관 등 일반 검찰 공무원들에겐 기피 기관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인사철이 되면 '중앙’의 ‘중’자만 써내도 중앙지검으로 발령이 난다는 흉흉한 얘기가 돌기도 하고, 검찰 수사관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에서는 “인생‧가정‧건강을 포기하지 않을 거면 중앙지검 내 근무는 힘들다”는 하소연도 쏟아집니다. “수사는 뼈를 갈아서 만든다”는 자신들만의 '격언'이 만들어졌을 정도입니다.

 지난 2월 인사에서는 기업수사를 비롯한 인지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중앙지검 특수 1~4부에 여검사가 한 명씩 배치됐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격무에 개의치 않고 지원하는 검사도 있지만 업무가 과중한 부서이기 때문에 솔직히 가족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적응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중앙지검 특수 2부는 지난 14일 증권선물위가 고발한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고의 분식회계 의혹' 사건 수사를 위해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본사와 경기 과천시 삼성SDS 데이터센터 등 10곳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이튿날인 15일에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한국거래소를 압수수색해 삼바의 상장 관련 자료들을 확보헀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 시점도 수사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이나 외부 입김에 따라 생물처럼 움직이는 범죄를 포착하기 위해 밤샘 근무도 마다할 수 없다는 얘기겠죠. 여전히 역동적인 한국 사회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중앙지검을 지켜보면 이들에게 '주 52시간 근무 시대'의 도래는 요원해 보이기만 합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14일 오후 10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로비 앞에 택시들이 들어서고 있다. 김민상 기자

14일 오후 10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로비 앞에 택시들이 들어서고 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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