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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앙숙 인도·파키스탄, 핵 전쟁에 가장 다가갔던 그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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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7일은 숙명의 앙숙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역사상 핵전쟁에 가장 다가갔던 날이었을까? 양국 모두 150발 전후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다.

지구촌 화약고가 된 남아시아의 핵보유국 #한 뿌리 인도-파키스탄, 전쟁만 세 차례 #72년 갈등의 잠무카슈미르 영유권 분쟁 #98년 핵실험, 나란히 ‘사실상 핵보유국’ #2월 폭격에 이어 공중전 벌이면서 격돌 #내부 민족주의 정치도 불길에 기름 부어 #미국-중국 대리전 성격…분쟁 불씨 여전 #핵보유는 평화도, 경제 발전도 보장 못해

1974년 인도의 첫 핵실험 당시 생긴 거대한 함몰 부위.[중앙포토]

1974년 인도의 첫 핵실험 당시 생긴 거대한 함몰 부위.[중앙포토]

2월 27일 이런 인도와 파키스탄이 군사적으로 충돌했다. 21세기의 하늘에서 초음속 전투기끼리 드물게 공중전이 벌어졌다. 파키스탄군은 인도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잠무카슈미르 지역의 통제선(LoC) 부근에서 인도 공군의 미그-21 바이슨을 격추하고 조종사를 사로잡았다. 인도 미디어는 파키스탄 공군의 F-16 전투기도 함께 추락했다고 주장했지만, 파키스탄 측은 이를 부인했다.

 1998년 5월 파키스탄의 핵실험 장면. [중앙포토]

1998년 5월 파키스탄의 핵실험 장면. [중앙포토]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갔던 두 나라

2월 27일 파키스탄의 인도 공군기 격추는 하루 전인 2월 26일 벌어졌던 인도의 공습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뤄졌다. 이날 인도 공군의 미라지-2000 전폭기는 잠무카슈미르 지역의 통제선(LoC)을 넘어 파키스탄 관할지를 폭격했다. 그곳에 테러 캠프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인도가 파키스탄 관할 지역에 있는 ‘테러 캠프’를 공습한 이유도 보복이었다. 2월 14일 잠무카슈미르의 인도 관할지역인 주도 스리나가르 외곽을 지나던 수송 차량 행렬을 대상으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인도 경찰 41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부상했다. 당시 인도 경찰 2500명이 버스 25대에 나눠 타고 이동하던 중 버스 두 대를 상대로 한 폭탄 공격이 발생했다. 이는 양군 간 벌어진 민병대 공격으로는 30연만의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인도는 잠무카슈미르의 파키스탄 지역 민병대가 이 테러를 조직했다고 보고 보복에 나섰고 급기야 폭격과 공중전으로 이어졌다. 국제사회는 냉전 시기에나 있었을 법한 핵 보유국 간에 전쟁 위기를 눈앞에서 보게 됐다. 그것도 핵전쟁 위기를 말이다.

2월 15일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내각 회의에서 강경 대응을 지시하고 있다. [사진 트위터 BJP4India]

2월 15일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내각 회의에서 강경 대응을 지시하고 있다. [사진 트위터 BJP4India]

원한과 증오로 가득 찬 앙숙 관계  

사실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는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앙숙이다. 지금의 인도와 파키스탄을 포함한 영국의 인도식민지는 1947년 독립하면서 분할됐다. 힌두교도가 다수인 인도와 무슬림(이슬람신자)이 다수인 파키스탄으로 나누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백만의 실향민이 발생했으며 사망자도 적지 않게 생겼다. 원한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역별로 인도냐 파키스탄이냐의 선택은 주민이 하지 않았다. 식민지 시대 이전부터 인도의 각 지역을 지배하던 봉건 영주인 라자 562명의 의사에 따랐다. 그런데 인도의 북서쪽, 파키스탄의 북동쪽에 있는 잠무카슈미르 지역은 분쟁의 불씨가 됐다. 이 지역 주민은 무슬림이 80%였지만 지배 영주인 라자는 힌두교도로 인도 귀속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해 10월 지역 무슬림은 파키스탄 귀속을 요구하며 소요 사태를 일으켰으며 10월 21일 파키스탄에서 이 지역을 접수하겠다는 민병대가 이동해 들어왔다. 그러자 라자의 요청으로 인도도 다음 날 군대를 보내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은 1949년 유엔의 중재로 잠무카슈미르 지역을 분할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2월 19일 파키스탄의 임란 칸 총리가 TV 연설에서 "인도가 공격한다면 파키스탄은 보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 트위터 @ABP News]

2월 19일 파키스탄의 임란 칸 총리가 TV 연설에서 "인도가 공격한다면 파키스탄은 보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 트위터 @ABP News]

카슈미르 영유권 문제로 세 차례 전면전

인도와 파키스탄은 그 뒤로도 1965년, 1971년 각각 전면전을 벌였다. 1971년은 잠무카슈미르가 아닌, 당시 ‘동파키스탄’으로 불렸던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인도가 지원하면서 벌어진 전쟁이다. 1999년에는 파키스탄이 잠무카슈미르 지역의 카길을 공격해 점령했다가 인도군의 반격으로 물러난 국지전이 벌어졌다. 2014~2015년과 2016~2018년에도 대치와 부분적인 충돌이 벌어졌다. 잠무카슈미르 지역은 한 마디로 핵 보유국의 화약고가 됐다.

중국도 끼어들어 카슈미르 20% 차지  

중국도 이 분쟁에 끼어들었다. 현재 잠무카슈미르 지역은 인도가 43%, 파키스탄이 37&, 그리고 중국이 잠무카슈미르 지역 북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20%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은 1962년 인도와의 국경 분쟁 당시 이곳을 점령해 계속 점유하고 있다. 현재 파키스탄은 중국이 점유한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잠무카슈미르 지역 전체의 영유권을, 인도는 이를 포함한 전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인도는 1993년과 1996년 협상으로 현재의 중국이 점유한 지역의 통제선은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토 주장은 계속하지만, 경계선은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잠정적인 외교 선언이다. 잠무카슈미르 분쟁이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 간 분쟁을 넘어 국제적인 성격을 띠는 이유다.

2월 28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역에서 파키스탄 전투기에 격추된 인도공군 소속 미그21 전투기의 잔해를 파키스탄 군인이 지키고 있다. [AP=연합뉴스]

2월 28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역에서 파키스탄 전투기에 격추된 인도공군 소속 미그21 전투기의 잔해를 파키스탄 군인이 지키고 있다. [AP=연합뉴스]

카슈미르 갈등과 대립이 핵 경쟁 불러

더욱 문제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잠무 카슈미르의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 와중에 핵 실험을 하고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 됐다는 사실이다. 인도는 1964년 국경을 맞대고 국경분쟁까지 벌인 중국이 핵 보유국이 되자 비밀리에 핵 개발에 나섰다. 인도는 1974년 ‘미소 짓는 부처’라는 암호명으로 첫 핵실험을 한 다음 24년 이상을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 힌두민족주의정당이자 지금 모디 총리의 소속 정당인 BJP의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총리가 집권하던 1998년 핵실험에 나섰다. 서부 라자스탄주의 포크란 핵실험장에서 ‘샤크티(위력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작전’이란 암호명으로 5월 11일 세 발을 연속 터뜨린 뒤 13일 두 발을 추가 실험하는 연속 핵실험을 했다. 언제, 어떤 종류의 핵폭탄도 마음대로 터뜨릴 수 있는 과학적·군사적 능력을 중국과 파키스탄은 물론 전 세계에 보여준 셈이다.
바지파이 총리는 핵실험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선거에 승리했으며 집권한 지 불과 두 달 뒤에 이를 실행했다. 핵 개발은 이미 이전에 완료됐다. 바지파이 총리는 의기양양하게 핵 보유국을 선언하고 정치적인 인기를 한 몸에 모았다. 미국과 일본 등 서방국가가 경제제재에 나섰지만 이를 감수했다. 제재로 경제발전에 필요한 해외 투자가 끊겼지만, 민영화 정책 등을 통해 자본을 모으면서 경제성장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힌두 민족주의자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다.
파키스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인도가 핵실험을 한 같은 달인 5월 28일 서부 발루치스탄의 창가이 지역에 있는 라스코 힐에서 다섯 발의 핵폭탄을 동시에 터뜨렸다. 암호명 ‘창가이1’로 불리는 핵실험이었다. 5월 30일 발루치스탄 하란 사막에서 한 발의 핵폭탄을 추가로 터뜨리는 암호명 ‘창가이2’ 핵실험도 했다. 파키스탄의 핵실험은 국내 이슬람 민족주의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무슬림 국가 유일의 핵보유국'이라는 명성 속에서 이슬람 세계의 지지와 지원이 잇따랐다. 두 차례에 걸쳐 모두 5회의 핵실험을 한 인도와 6회의 핵실험을 한 파키스탄은 핵 능력을 사실상 인정받았다.

인도가 수거한 AIM-120C 암람 공대지 미사일 파편. 이 미사일은 파키스탄군의 F-16만이 발사할 수 있다. [사진 인도 공군]

인도가 수거한 AIM-120C 암람 공대지 미사일 파편. 이 미사일은 파키스탄군의 F-16만이 발사할 수 있다. [사진 인도 공군]

9·11테러로 핵 보유 사실상 인정

파키스탄도 인도와 마찬가지로 핵실험 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를 받았지만, 인도와 마찬가지로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 험하지는 않았다. 냉전 기간 중 미국의 남아시아 동맹국이었던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에 맞서는 무자히딘(무슬림 전사)의 훈련·투입·보급을 하려는 미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파키스탄에 주둔했던 미군은 198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때까지 머물렀다. 냉전 시기 미국을 지정학적 요충지에 있는 파키스탄이 필요했다.
이런 배경에 따라 98년 파키스탄 핵실험으로 인한 미국의 제재는 3년 만에 풀렸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것도 큰 계기였다. 미국이 2001년 10월 7일 탈레반 지배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파키스탄은 군수와 작전의 후방기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탈레반 세력을 공격하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무인기도 파키스탄 남부 발루치스탄주에서 이륙했다. 미국은 파키스탄을 군사적으로 준동맹으로 간주해 왔다. 파키스탄은 이런 상황을 활용해 이번에 인도 공군의 미그-21 바이슨을 떨어뜨린 미국산 F-16 전투기를 사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파키스탄이 중국에 접근하면서 미국과 관계가 멀어지고 대신 인도가 미국과 가까워지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가 2월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4회 서울평화상 시상식에 상을 받기 위해 참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가 2월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4회 서울평화상 시상식에 상을 받기 위해 참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협상 대신 보복 앞세운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은 항상 협상이나 타협 대신 대립과 보복을 앞세워왔다. 이번 사태를 놓고 양국이 벌인 장군 멍군식 설전에서 유화적인 단어는 아예 찾을 수가 없다. 감정과 증오로 가득한 양국 분쟁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 사례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2월 16일 한 집회에서 “테러범을 어떻게 처벌할지는 우리 군대가 결정한다”라며 보복을 암시했다. 양국은 이런 상태가 벌어지면 빠짐없이 ‘피로 피를 씻는’ 방식의 유혈 보복을 가해왔다. 실제로 2016년 9월 잠무카슈미르의 인도 관할지에서 인도군이 공격을 받아 19명이 숨지자 인도는 특수부대를 파키스탄 관할지역으로 투입해 12명을 사살했다. 이런 종류의 사태가 벌어지면 양국 국민도 보복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게 일상화했다.
자살폭탄 공격이 벌어진 당일인 2월 14일 인도는 즉각 “테러 단체가 벌인 공격으로 파키스탄이 지원했다”고 발표했다. 파키스탄 측도 물러나지 않고 “우리 당국은 관여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하고 “인도가 말하는 단체의 창설자가 파키스탄에 있는데 인도가 증거를 제시하면 체포하겠다”라고 나왔다. 인도는 “원한다면 증거를 제공하겠다”라면서도 “대화할 시간은 끝났다”라고 말했다. 피로 보복하겠다는 선언이다.
2월 16일 인도 공군의 미라지-2000의 공습이 이뤄진 직후 인도는 “테러조직만을 겨냥한 공격이었으며 군과 시민은 피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키스탄 측은 “폭격은 정전협정 위반”이라면 “시민들이 부상했으며 이로써 우리에겐 보복할 권리가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봐도 예감이 좋지 않은 분쟁 가속화다.
그 다음날인 2월 27일 파키스탄 공군의 F-16기가 인도 공군의 미그-21 바이슨을 격추하자 인도는 “파키스탄 공군기가 인도 군 시설을 노려 우리가 출격했다”라고 발표했으며 파키스탄 측은 “인도군의 전투기가 우리 측에 침입해 격추했다”라고 상반된 주장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현지시간) 2차 북미정상회담장인 하노이 회담장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나 만찬을 하고 있다. 이날 파키스탄 공군기가 인도 공군기를 격추했다. [백악관 트위터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현지시간) 2차 북미정상회담장인 하노이 회담장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나 만찬을 하고 있다. 이날 파키스탄 공군기가 인도 공군기를 격추했다. [백악관 트위터 캡처]

하노이 북미회담 당일 터진 인-파 사태  

주목되는 점은 바로 이날 베트남 하노이에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은 북미회담에 인도-파키스탄 사태가 겹쳐 상당히 복잡했을 것이다. 사실상의 핵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전 시절 러시아와 전통적으로 가까웠던 인도는 최근 들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군사적으로도 협력하고 있다. 인도는 미국은 물론 일본과도 손잡고 전략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 반면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과 가까워졌던 파키스탄은 최근 들어 다시 중국에 접근해 일대일로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 국가채무가 늘면서 고민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이런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분쟁이 악화하면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파키스탄 공군의 F-16 전투기는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협력 관계를 강화했던 미국이 파키스탄에 ‘테러와의 전쟁’에만 쓴다는 조건 아래 판매한 고성능 무기체계다. 이런 미국산 전투기가 최근 미국과 가까워지고 있는 인도의 미그-21 바이슨을 격추했으니 문제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양국이 공군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며 미국, 중국, 러시아 등으로부터 신형 전투기 등 새로운 무기체계를 다량 들여올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오후 하노이 JW메리어트 호텔에서 합의 결렬 소식을 전하는 기자회견을 마친후 돌아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오후 하노이 JW메리어트 호텔에서 합의 결렬 소식을 전하는 기자회견을 마친후 돌아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베네수엘라와 코언 청문회까지 겹쳐

가뜩이나 남미 최대의 산유국인 베네수엘라 사태로 복잡한 상황에서 인도-파키스탄이 무력 충돌을 벌이면서 전면전 가능성을 우려하는 상황이 되자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에 전력을 다해 신경을 쏟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더구나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하노이에 머무는 동안 미국 워싱턴에선 ‘코언 청문회’가 열려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 정치적으로 난감한 상황이 됐다. 사실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던 날 미국 미디어들은 이 청문회에 더욱 관심을 쏟았다. 청문회에선 ‘트럼프 해결사’로 불렸던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이 미국 하원 감독개혁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트럼프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코인은 트럼프를 ‘인종차별주의자’‘사기꾼’‘범죄자’로 부르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다양한 스캔들과 관련해 거짓말을 해왔다고 증언했다.
코언 청문회에 더해 인도-파키스탄 상황까지 악화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회담 결렬을 선언하고 하노이를 떠났다. 물론 북한과의 협상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회담에서 아무런 합의도 이루지 못한 가장 큰 요인이겠지만, 인도-파키스탄과 베네수엘라 등 트럼프를 둘러싼 다양한 국내외 상황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

3월 1일 파키스탄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이다 격추돼 생포됐던 인도 공군 조종사 아비난단 바르타만 중령이 파키스탄 라호르와 인도 암리차르 사이 국경검문소를 통해 인도로 송환된 모습. [현지 방송영상 캡처=연합뉴스]

3월 1일 파키스탄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이다 격추돼 생포됐던 인도 공군 조종사 아비난단 바르타만 중령이 파키스탄 라호르와 인도 암리차르 사이 국경검문소를 통해 인도로 송환된 모습. [현지 방송영상 캡처=연합뉴스]

조종사 포로 송환하며 사태 일단락

그러던 3월 1일 대반전이 벌어졌다. 파키스탄의 임란 칸 총리가 추락 인도 공군기의 조종사를 석방해 인도로 송환한 것이다. 더는 사태 확대를 바라지 않는다는 사인을 보낸 셈이다.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도 양측은 설전을 이어갔다. 인도는 “조종사 석방이 대화의 시작이 될 순 없다”라며 협상을 거부하고 “우선 파키스탄 측의 테러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파키스탄의 칸 총리는 “(인도 조종사 석방으로) 평화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며 대화를 호소했다. 인도와 파키스탄 양측 모두가 ‘정치적인 주판알’을 튕기면서 실리를 계산하기 바쁜 상황이다.

총선 앞두고 힌두 민족주의 결집 노려  

사실 4~5월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지지 기반인 힌두 민족주의 세력의 결집을 노리고 있는 모디 총리에 이번 사태가 호재가 될 수 있다. 모디 총리는 현재 야당인 국민의회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총선은 박빙의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국민의회는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1889~1964년, 1947~1964년 총리 재임)와 그의 딸인 인디라 간디(1917~1984년, 1966~1977년 및 1980~1984년 총리 재임)와 손자인 라지브 간디(1944~1991년, 1984~1989년 총리 재임)에 이어 증손이자 4대 세습 정치인인 라훌 간디(49)가 이끌고 있다. 인도-카슈미르 분쟁의 불길이 인도의 내부 정치로 인해 더욱 거세지는 형국이다
군부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연약한 총리라는 평판을 들어온 파키스탄의 칸 총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강한 리더십을 보여줘 지지층을 넓힐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칸 총리의 파키스탄은 사태 직후 중국과 보유 전투기 개량사업을 시작했다. 인도-파키스탄 대립이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비화하는 상황이다. 미·중 무역협상 중인 중국이 이번 사태에서 놀랄 만큼 조용했던 것도 관심 대상이다.

핵 보유국간 분쟁 불씨 여전히 남아

다행히 사실상 핵 보유국인 양국 간의 이번 분쟁은 전면적인 충돌로까지 번지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전면전에 핵전쟁까지도 유발할 수 있는 무서운 불씨다. 잠무카슈미르를 둘러싼 양국 국민의 감정 대립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정치인의 노림수, 국제사회의 편 들기까지 겹쳐 70년이 넘은 잠무카슈미르의 갈등은 더욱 꼬여만 간다. 냉전 시대에는 ‘핵무기를 가진 나라끼리는 전쟁이 없다’는 말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하지만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대립은 너무도 감정적이어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안고 불길에 뛰어드는 판단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 보유가 평화도, 안정도, 경제 발전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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