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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문 대통령 3·1절 100주년 기념사, 이념 대립 부추긴 관제 민족주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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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호 10면

정치학계 원로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100주년 기념사에 대해 “관제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의 전형적 모습”이라며 “청산을 모토로 하는 개혁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지에 대해 극히 부정적”이라고 비판했다.

최장집 교수 학술대회서 쓴소리 #“친일 잔재와 보수 세력 결부시켜 #촛불시위 이전 못잖게 갈등 불러” #문정인 “빨갱이논쟁, 이념 넘자는 것”

15일 광화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국제정치학회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학술대회에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부딪혔다. 왼쪽부터 송호근 포항공대 교수, 문 특보, 하영선 서울대 교수, 임지현 서강대 교수, 최 교수. 성지원 기자

15일 광화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국제정치학회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학술대회에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부딪혔다. 왼쪽부터 송호근 포항공대 교수, 문 특보, 하영선 서울대 교수, 임지현 서강대 교수, 최 교수. 성지원 기자

15일 한국국제정치학회(회장 손열)가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3.1 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학술대회에서 최 교수는 ‘한국 민족주의의 다성(多聲)적 성격에 관하여’라는 발제문을 통해 “과거에 대한 청산 작업은 개혁자의 정치적 목적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현 정부의 3·1 운동 100주년 캠페인에 대해 “일제 청산을 목표로 하는 ‘관제 캠페인’은 촛불시위의 정당성을 남북한을 아우르는 한국 전체의 역사적 정통성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겠지만 현대 한국의 지극히 갈등적인 문화투쟁처럼 보인다”이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시도를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와 등치시켰다. 그는 “청산의 대상을 정하려면 민족주의적인 역사교육이 필요한데, 정책프로그램이나 예산을 통해 광범위한 의식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문제는 이미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경험했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관제 민족주의’를 여러 이벤트를 통해서 의식화하고 있는데, 문화투쟁‧이념투쟁의 형태”라고 평가했다.

11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본사에서 최장집이 대담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11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본사에서 최장집이 대담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특히 최 교수는 “3·1절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친일잔재와 보수 세력을 은연중에 결부시키며 이를 청산해야한다고 했다”며 “역사를 굉장히 정치적인 좁은 각도로 해석하는 거다. 사려깊지 못한 표현이자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 “현 정부가 이념적 지형을 자극해서 촛불시위 이전 못지않게 더 심한 이념대립을 불러오고 있다.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기념행사의 태극기가 충돌하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100년 간 정치가 발전할 거 같지 않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정부가 주관해 친일 잔재청산을 내걸고 문화투쟁의 형태로 의식화 과정을 추진한다고 할 때 그것이 가져올 부정적 결과는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에서 절반에 이르는 전반기는 식민지 유산이 인적 요소는 물론 제도와 운영방식, 정치문화 등 여러 면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며 “일제식민잔재 청산이란 말은 성립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일제 청산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거나 행동한다면 그건 위선”이라며 “가능하지도 않는 걸 옳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건 실제로 정치적 목적을 위한 기획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와 함께 토론자로 나선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반박에 나섰다. 문 특보는 “(문 대통령이 거론한)‘빨갱이 논쟁’은 이념 전쟁을 넘어서자는 뜻인데,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현 정부는 민족주의 교육보단 세계시민교육에 오히려 더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국제관계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충돌했다. 최 교수는 “평화공존을 위해선 민족주의 그 이상이 필요하다”며 “민족주의 상대화를 통한 현실주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과 관련, “우리 외교부는 남북 관계와 글로벌 이슈로서의 핵 문제를 혼동‧혼합하고 오해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제도화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두 레벨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으면 진전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문 특보는 “현 정부는 첫째 북한이 1992년 채택된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준수하고, 둘째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 들어가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상시적 사찰을 받아 핵질서를 공고히 하라고 하는 두 가지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며 “외교부만큼 현실적인 정부기관이 없다. 역부족인 건 사실이지만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외교의 이해방식이 남북 간 민족관계로 한정되고, 굉장히 정서적이고 협소하다”며 “특히 지정학적‧문화적으로 중요한 한일관계에 대해 ‘일제 잔재 청산’을 강조하는 것은 외교를 희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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