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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임을 알리고 명품 가방 팔았다, 상표권 침해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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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더,오래] 김현호의 특허로 은퇴준비(18)

이태원 해밀턴호텔 뒷길. 예전에는 당시 유행하던 폴로 티셔츠나 베르사체 청바지 등 가품 매장에 사람들이 몰렸지만 요즘은 클럽이나 라운지바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중앙포토]

이태원 해밀턴호텔 뒷길. 예전에는 당시 유행하던 폴로 티셔츠나 베르사체 청바지 등 가품 매장에 사람들이 몰렸지만 요즘은 클럽이나 라운지바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중앙포토]

요즘 내국인들도 빈번하게 왕래하는 이태원은 내가 대학 신입생 때인 1994년만 해도 생소한 곳이었다. 그 당시 이태원은 정말 외국인의 거리여서 오히려 한국인이 외국인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1995년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태원은 위험한 동네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1년에 2회 정도 저렴한 옷을 사기 위해 이태원에 가곤 했다. 이태원의 해밀턴 호텔 뒷골목에 단골 옷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엔 당시 유행하던 폴로 티셔츠부터 심지어는 국내에는 공식 수입되지도 않던 베르사체의 청바지도 있었다. 물론 짝퉁이었다. 폴로 반소매 티셔츠는 1만원, 베르사체 청바지는 3만원 정도였다. 가격뿐 아니라 품질도 나쁘지 않아 학생 시절 가끔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분명 동일한 가게임에도 방문할 때마다 주인이 바뀌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특허청에서 경찰과 함께 주기적으로 상표권 침해 단속을 벌인 데 따른 것이 아닌가 한다. 처벌을 받게 되면 가게를 내놔야 했고, 그때마다 주인이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짝퉁 시장은 시계, 가방 등의 명품 분야에서 번창하기 마련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홍콩, 중국, 베트남 등 동남아 관광지에 가면 짝퉁 판매상들의 호객 행위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짝퉁 판매는 상표법, 부정경쟁방지법 등에 의한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명품에 책정된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잘못된 욕망으로 인해 짝퉁에 대한 수요는 꾸준하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른다는 것이 오랜 경제적 법칙이다 보니 짝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로렌스’, ‘롤렉스’에 승소

관세청 직원들이 신청공항세관 수출입통관청사에서 환적화물로 가장한 짝퉁 명품 밀수조직의 압수품을 공개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관세청 직원들이 신청공항세관 수출입통관청사에서 환적화물로 가장한 짝퉁 명품 밀수조직의 압수품을 공개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오래전 한 방송사에서 명품 가방을 모방한 짝퉁 판매업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인터뷰에서 그는 적반하장 식의 반응을 보인다. ‘제발 귀찮게 좀 하지 마라, 내가 손님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다. 이거 짝퉁인 줄 알고 사간다. 정품을 살 사람들도 아니다. 그러니 제발 그만 좀 괴롭혀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그런데도 이 업자의 항변은 일부 설득력이 있다. 손님들에게 이것이 정품이라고 속이고 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표법은 상품 출처의 오인·혼동에 따른 수요자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법이다. 따라서 짝퉁이 진품과 아무리 유사하더라도 수요자가 이를 구분해 혼동하지 않는다면 상표권의 침해가 아니다.

명품 시계 브랜드 ‘롤렉스’가 자기 상표와 유사한 국산 브랜드 ‘로렌스’를 상대로 제기한 분쟁 사건에서 법원은 ‘롤렉스’를 구매하려는 수요자가 ‘로렌스’를 롤렉스와 혼동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로렌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롤렉스’가 패소한 것이다.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중인 로렌스 시계. [사진 해당 사이트 화면 캡쳐]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중인 로렌스 시계. [사진 해당 사이트 화면 캡쳐]

또 다른 사례로, ‘스타벅스’의 로고와 유사한 형태의 로고로 가진 ‘스타프레야’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스타벅스는 동일한 이유로 패소했다.

'스타프레야' 로고(좌)와 '스타벅스' 로고(우). 스타벅스는 스타프레야를 상대로 한 상표권 분쟁에서 패소했다. [중앙포토]

'스타프레야' 로고(좌)와 '스타벅스' 로고(우). 스타벅스는 스타프레야를 상대로 한 상표권 분쟁에서 패소했다. [중앙포토]

실제로 짝퉁 판매업자들은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면서 짝퉁임을 공공연히 알리며 구매자를 유인한다. 구매자는 짝퉁이 진품과 얼마나 비슷한지, 가격은 진품 대비 얼마나 저렴한지를 고민한 후에 구매하는 것이 보통이다. 본인이 매우 저렴하게 진품을 구매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직(?)한 짝퉁 판매자들은 상표권 침해에 따른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일까?

유명한 샤넬 백 케이스에서 그 결론이 이미 내려진 바 있다. 짝퉁 판매업자가 샤넬 백의 로고를 부착하지 않고 구매자가 구매 후에 직접 부착하도록 유인해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판매업자는 구매자가 정품 샤넬 백으로 혼동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했다.

한 짝퉁 판매업자는 샤넬 백의 로고를 부착사지 않고 구매자가 직접 부착하도록 유인해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사진 샤넬]

한 짝퉁 판매업자는 샤넬 백의 로고를 부착사지 않고 구매자가 직접 부착하도록 유인해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사진 샤넬]

대법원은 어떠한 판단을 내렸을까? 대법원은 샤넬 백의 최초 구매자는 정품으로 혼동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후 명품백 중고 시장의 재판매 과정에서 2차 구매자가 정품으로 혼동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상표권 침해가 성립된다고 판시했다.

명품로고, 구매자에게 부착 요구하면 불법

대법원은 중고 시장의 명품 수요자 보호를 고려한 것이다. 많은 명품이 중고 시장에서 왕성하게 거래되고 있는 상황에서 짝퉁이 얼마든지 정품과 혼동될 수 있으므로 법원의 판단은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만약 정품이라면 중고 시장에서 재판매하는 행위는 괜찮을까? 시계, 가방 등의 명품 중고 시장이 활성화한다는 것은 명품 기업에는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자동차 제조사는 중고 시장에서 자사 제품의 가치와 평판이 유지돼야 신차 판매에도 유리하기 때문에 중고시장의 활성화를 반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시계, 가방 등의 명품 기업의 입장은 조금 다른 듯하다. 실제로 최근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샤넬은 뉴욕의 빈티지 리셀러 소매업체 WGACA(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를 상대로 뉴욕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핵심 부품 교체와 같은 주요 수리 행위가 없었다면 중고 제품의 재판매 행위를 상표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 상표권자가 최초로 판매한 제품에는 상표권의 효력이 더는 남지 않게 된다는, 상표권의 소진 이론 때문이다.

다만, 명품 가방을 인위적으로 리폼(reform)하는 경우와 같이 단순한 수리를 넘어서 재생산으로 인정되는 행위가 있었다면 이러한 제품의 재판매 행위는 상표권의 침해가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김현호 국제특허 맥 대표 변리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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