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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 연애소설> 나, 어려운 아이들에게 웃음 주고 싶어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제25회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8시가 다 되었다. 엄마는 누워계셨다.
"어디 아프세요? 식사는요?"
"아니다. 그냥 맥이 좀 없구나."
"엄마, 저 결혼하고 싶은 사람 있어요."

누워 있는 엄마 곁으로 다가가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엄마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저번 너 퇴원하던 날, 그 여자냐?"

즉각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로 볼 때 엄마는 그날 처음 본 장 팀장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아니에요, 다른 여잔데요. 그동안 혼자 고민하느라 한 번도 말씀 못 드렸어요."

누나 얘기 이제 해서 죄송해요
나는 누나에 관한 모든 걸 털어놓았다. 예고편도 없이 갑자기 왕창 쏟아내면서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사흘간 누나 아버지의 상을 함께 치렀다는 소리에 엄마는 내심 서운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동안 한마디도 안 했니?"
"엄마가 물어보지 않았잖아요?"
"뭘 알아야지 물어보지, 얘는 이상한 소릴 다 하는구나."
"아, 그게 아니라……. 저도 확신이 안 서 내내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장인상 치르고 이제야 며느릿감 신고하는 거냐?"
"무슨 장인이고 며느리예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여자라고요."
"결혼할 여자와 좋아하는 여자완 다른 거 아니니?"

나는 미리 말씀 못 드려 거푸 죄송하다고 하고 조만간 인사시키겠다고 했다. 엄마는 누나에 대해 기본적으로 내 의견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도 몇 가지를 언급했다.
"종교문제로 엄마와는 연락이 끊어졌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는 바람에 사실상 고아라……. 하긴 우리 식구도 단둘이니 피장파장이구나. 그리고 이혼은 요즘 흔한 일이 되었고 세상도 관대해졌으니 그렇다 쳐도, 마흔다섯이란 나이는 영 걸리는구나."
"사실 저도 나이에 대해 생각 많이 했어요. 하지만 다른 결론은 찾을 수 없었어요."
나는 엄마의 생각에 일견 동조하면서도 내 생각을 분명하게 전했다.

왜 매사 그렇게 삐딱해요?
한밤중에 누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당연히 자고 있죠?"
"잠이 안 와서 그냥 멀뚱멀뚱…. 사실 아까 집에 오자마자 3시간이나 잤거든."

나는 엄마에게 누나 얘기를 처음으로 다 털어놓았다고 했다. 결혼하겠다는 뜻도.
"결혼? 누구랑 할 건데?"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뭐예요? 왜 그렇게 매사 그래요?"

내가 정색을 하고 소리치자 누나는 일단 미안하다고 했다. 막 아버지 장례를 치른 입장에서 결혼 문제는 당분간 입에 올릴 계제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어차피 그동안 혼자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생각보다 착잡하네.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각 좀 정리하고 싶어……."
누나는 생각이 정리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나는 약간 걱정됐지만 누나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다음날 출근하니 회사는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힘든 시간 보내고 왔겠네. 수고 많이 했어."
장 팀장에게 출근했다고 카톡 했더니 이런 답이 왔다.

양평으로 아예 이사 가려고…….
꼭 1주일 뒤 누나에게서 문자가 왔다.
"마침 논문을 다 쓴 상태에서 아버지상을 치러 다행이었어. 지금 마무리작업을 해야 했다면 의욕도 없었을 텐데."
"다행이네요."
"생각 많이 해 봤는데 앞으론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려고 해."
"어느 지역요?"
"전에 천이도 한번 가본 양평이 될 거야. 아예 그쪽으로 이사를 할까 생각 중이야. 아이들이 좋아, 내 손길이 필요한…. "

누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웃음을 잃지 않도록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웃음을 모른다는 건 행복을 모른다는 거나 같은 거잖아. 나처럼……."
"좋아요. 누나가 그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나는 누나에게 웃음을 잃지 않도록 해 줄 거예요."
"고마워, 정말."

"그런데 아예 그리로 이사를 하려고 한다고요?"
"아직 생각 중이야…."
"그건 내게 꽤 중대한 문제인데 나와는 상의 안 해요?"
"지금 하고 있잖아."
"글쎄, 그런 게 상의인가……."

맥이 탁 풀렸다. 누나는 왜 맨날 이렇게 제멋대로일까. 결혼하고 싶다는데 혼자 양평으로 이사 가겠다고? 누나에게 나의 존재는 뭘까. 엄마에게 언제 인사 올 거냐고 묻고 싶었는데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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