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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밉고 서글퍼도 일본과 친해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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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대훈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1국장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일본을 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시선은 사납다. 3·1절 100주년을 전후로 일본을 겨냥한 거친 표현들을 쏟아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많은 부조리를 일제 식민지배에서 끌어냈다. 고질적 이념 갈등, 경제적 불평등 구조, 군림하는 검찰·경찰의 태생적 한계를 죄다 일제 탓으로 돌렸다.

문 대통령, 일본에 깊은 반감 표출 #‘친일’ ‘빨갱이’ 등 대중 정서 자극 #독일 통일 때 프랑스가 변수였듯 #북한 문제에서 일본 역할은 중요 #‘우리끼리’ 한계가 ‘하노이 교훈’ #과거사 갇혀 미래 놓치지 말아야

좌우 이데올로기 충돌은 친일파의 빨갱이 몰이에서 그 기원을 찾았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려고 찍은 이념의 낙인”이 빨갱이라며, “지금도 정치적 경쟁 세력을 공격하는 색깔론으로, 청산해야 할 친일 잔재”라고 했다. 불공정한 부(富) 의 편중과 세습의 한 원인으로 “친일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리고 사는” 세태를 거론했다. 비뚤어진 권력기관의 병폐는 “일제의 칼 찬 순사”로 압축했다. 한마디로 일제는 악의 제국이란 인상을 남겼다.

우리 역사에서 지난 100년은 일제 강점기, 해방과 분단, 냉전과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쟁취 시대를 아우르는 굴곡진 시간들이다. 긴 흐름 속에서 항일독립운동·민주화 진보 세력과 친일파·산업화 보수 세력으로 구분하려는 게 문 대통령의 역사 해석인 듯하다. 그런 이분 프레임을 만들어 현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개인적 소신은 자유라고 치자. 하지만 대통령이 일본의 과거를 몰아치며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행위는 현명치 못하다.

일본은 고약한 이웃이다.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고, 아직도 속 시원한 사죄가 없다. 그렇다고 없어지길 바란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중국에 이은 세계 3대 경제대국으로서 일본의 힘과 외교력은 엄연히 존재한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아무리 장단이 맞아도 일본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30년 전 독일 통일 과정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고대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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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統獨)은 ‘게르만 민족끼리’ 해낸 것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분단된 동독과 서독이 하나가 되려면 미국·영국·프랑스·소련 등 전승 4대국의 승인이 필요했다. 냉전시대 양대 축인 미국과 소련이 키를 쥐고 있었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들에겐 독일도 일본처럼 불편한 이웃이었다. 특히 프랑스와는 19세기와 20세기 네 차례 패권을 겨룬 앙숙이다. 1806년 10월 나폴레옹이 베를린을 함락했고, 보불전쟁(프로이센과 프랑스, 1870~71)에선 프랑스가 무릎 꿇었다. 1차 세계대전(1914~18)에서 프랑스가 이겼지만 2차 세계대전(1939~45)에선 프랑스가 6주 만에 파리를 내주며 히틀러에게 굴욕을 당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을 때 프랑스와 영국은 겉으론 환영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는 게르만의 외침에 전범국 독일의 악몽을 떠올리며 거칠게 반대했다. 콜 서독 총리의 집요한 설득을 거부한 채 프랑스가 끝까지 어깃장을 놨다면 1990년 10월 3일의 통독은 영원히 무산됐을지 모른다.

당시의 동서독-미국-소련-프랑스·영국의 역학관계를 지금의 남북한-미국-중국-일본의 구도에 대입하면 미국을 중심으로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진다. 미국이 협상을 주도하고, 문 대통령과 서독 콜 총리가 중재자로 나서고, 소련과 중국이 동독과 북한을 후견하고, 프랑스와 일본이 캐스팅 보트를 잡는 매우 흡사한 그림이 그려진다.

통독 협상에 프랑스가 그랬듯이 북핵 협상에서 미국은 상수(常數)지만 일본은 상수를 흔들 수 있는 변수다. 하노이 담판의 결렬 이후 미국과 북한은 ‘빅딜’과 단계적 비핵화를 놓고 대치하는 민감한 국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보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해 버리는 기질을 지녔다. 북한과의 딜이 안 풀리면 없던 일로 할 수도 있는 인물이다. 분담금 문제로 시끄러우면 주한미군도 빼버리고 극동 방위선을 일본으로 후퇴시킨 6·25 직전의 ‘애치슨 라인’도 불사할 수 있다.

일본은 판이 깨지거나 한반도에 남북한 8000만의 경제공동체가 형성될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정치경제적 손익을 따지고 있을 것이다. 아베는 트럼프와 같이 골프 치고, 노벨상을 추천해주는 절친이다. 5월로 잡힌 트럼프의 일본 국빈방문 때 아베가 밀담을 나누면서 어떤 훈수를 둘지 궁금하다. 먹고 먹히는 강국들의 정글시대에 왜 선한 사슴을 잡아먹는 포악한 사자가 됐냐고 호통친 일을 후회하지 않길 바랄뿐이다.

우리 땅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조차 ‘우리민족끼리’는 할 수 없는 게 차가운 현실이다. 하노이 회담의 교훈이다. 과거사에 갇혀 한반도의 미래를 놓칠 수 있다. 아무리 밉더라도 일본과도 친해져야 한다. 서글퍼도 그게 국익을 생각하는 지도자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