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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마저 등 돌렸다···트럼프, 보잉737맥스 운항중단 명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 세계가 최근 5개월 새 두 번의 추락 참사를 낸 미국 보잉사의 ‘B737 맥스(Max) 8’ 공포에 휩싸였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속속 운항중단을 선언한 가운데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줄곧 ‘안전성을 신뢰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던 미국마저 끝내 이 대열에 합류했다.

“복잡성은 위험” 트럼프, 결국 운항중단 지시 # ‘보잉 보이콧’ 도미노…신기술 막연 공포 키웠나

13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737 맥스 8과 맥스 9의 운항중단을 명령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민과 모든 사람의 안전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면서다. 이 발표는 “시기상조”라던 이웃국가 캐나다 항공당국이 같은 기종 항공기의 이착륙과 캐나다 영공 통과를 금지한다고 밝힌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다. 이날까지 홍콩, 터키, 레바논, 러시아 등이 추가되며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선두로 운항을 전면 또는 일부 중단한 곳은 모두 60여 개국으로 늘었다. 사실상 전 지역서 도미노 보이콧에 나서자 미국이 ‘나홀로 운항’ 입장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

에티오피아 항공 추락 여객기 잔해. [EPA=연합뉴스]

에티오피아 항공 추락 여객기 잔해. [EPA=연합뉴스]

사고 발생 이후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보잉사에 더해 미 연방항공청(FAA)까지 나서 운항중단의 근거가 없다고 밝혔지만 항공소비자들의 우려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상에선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해당 기종이면 타지 않겠다”는 반응이 연일 쏟아졌다. 항공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신이 예약한 항공기가 해당 기종인지 알아보는 방법이 공유되면서 기피현상이 심해진 측면도 있다.

USA투데이 등에 따르면 딸과 함께 5월 말 여행을 계획 중인 안드레아 콜은 “나는 보잉 맥스를 타고 싶지 않다”고 트위터에 썼다. 그러자 항공권을 예약한 사우스웨스트항공 측은 “우리는 운항의 안전에 초점을 맞춘다는 데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댓글로 달기도 했다. 샘 그리난은 “방금 아메리칸항공으로부터 내가 6월에 탈 비행기가 보잉 737로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무서워 죽겠다. 항공기를 바꿔야 하나?”라고 올렸다. 미국에서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이 기종을 34대, 아메리칸항공이 24대 운용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트위터에 보잉 사고와 관련된 우려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비행기들이 조종하기 너무 복잡해지고 있다. 조종사들이 아니라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 과학자가 필요할 지경”이라면서다. 그러면서 “복잡함은 위험을 유발한다. 난 아인슈타인이 내 비행기를 모는 걸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첨단 비행시스템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유능한 조종사와 고도의 훈련과정이 요구된다는 인식도 내비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신형 항공기의 복잡성을 지적했다.[트위터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신형 항공기의 복잡성을 지적했다.[트위터 캡처]

일각에선 비논리적 수준으로 공포가 확산하는 걸 경계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로 비지니스 트렌드와 전략 관련 글을 쓰는 존 개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항공기가 탑재된 컴퓨터에 의존해 조종사를 도울수록 더 안전하다는 것이 데이터로 분명하게 보인다”며 “비행기가 수십 년 전보다 훨씬 덜 위험하단 건 익숙한 사실이지만 반복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항공안전네트워크(ASN)에 따르면 항공기 사고율은 1977년 이륙 100만대당 4건 이상에서 2017년 0.4건 아래로 떨어졌다.

특정 항공기 모델을 일시적으로나마 운항중단시키는 것은 이례적이다. 개퍼에 따르면 앞서 2013년 당시 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배터리 결함 사태 때 정도다.

지난해 12월 미국 시애틀 보잉 딜리버리 센터에서 이륙하는 ‘B737 맥스 8’. [사진 이스타항공]

지난해 12월 미국 시애틀 보잉 딜리버리 센터에서 이륙하는 ‘B737 맥스 8’. [사진 이스타항공]

‘보잉 포비아’의 근원에 신기술에 대한 막연한 불신이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테슬라 무인자율주행차가 인명 사고를 일으켰을 때도 대중의 두려움이 커지며 자율주행 포비아가 확산한 바 있다. 2016년 5월 오토파일럿 차량이 충돌사고를 일으켜 운전자가 사망했을 때 투자분석업체 피치북의 카일 스탠퍼드 벤처 애널리스트는 “기술적 진보는 회의적 시선에 직면한다. 죽음을 기술의 탓으로 돌리는 건 쉽다. 운전자들에게 그것이 너무 생소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한편 보잉사는 737 맥스 기종 전반에 대해 조종제어 소프트웨어를 대폭 수정해 몇 주 내로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이번 사고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 사고 때처럼 보잉이 이 기종에 새로 적용한 ‘조종특성상향시스템(MCAS)’의 오작동이 주원인이 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고 여객기 조종사는 이륙 직후 관제탑에 비행 통제에 문제가 있어 회항하기를 원한다는 보고를 했다고 한다. 미국 조종사들이 최근 몇달 간 비행 중 보잉 737 맥스 8 기종의 제어 문제를 겪었다고 최소 5차례 이상 보고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데니스 뮐렌버그 보잉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항공기의 안전을 확신하며 운항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12일 뉴욕 증시에서 보잉 주가는 6.11% 내렸다. 추락 사고 이후 이틀간 11% 넘게 하락한 것이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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