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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코인의 탈을 쓴 다단계...하늘 아래 안전한 고수익 투자는 없다

중앙일보

입력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다단계 수법을 통해 가짜 암호화폐를 팔아 막대한 투자금을 챙긴 일당이 잡혔습니다. 하나는 한국, 다른 하나는 미국 얘기입니다. ‘옥장판’을 팔던 시절과 수법은 같습니다. 먼저 살 수록, 많이 살 수록 투자금은 불어납니다. 살 수는 있지만, 팔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사기 일당들이 잡히거나 종적을 감춥니다. 피해자는 그제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뻔한 레파토리인데, 도대체 왜 이런 다단계 사기는 사라지지 않는 걸까요.

출처: 비트코인익스체인지가이드

출처: 비트코인익스체인지가이드


원코인 창시자, 미 검찰이 기소
미국 뉴욕 검찰은 최근 불법 다단계회사 원코인의 핵심 멤버인 루자 이그나토바와 콘스탄틴 이그나토브를 송금사기와 증권사기, 자금세탁 혐의 등으로 기소했습니다. 둘은 남매지간입니다. 남동생(콘스탄틴)은 지난 6일 LA공항에서 체포됐습니다. 당국은 아직, 1인자인 이그나토바(누나)의 소재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원코인은 2014년 불가리아에서 만들어진 다단계 업체입니다. 창시자 이그나토바는 법학 박사이자, 경제학자이며, 암호화폐 전문가라고 합니다. 원코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루자 박사’로 통합니다. 워낙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비트코인보다 뛰어난, 무결성의 암호화폐 원코인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조만간 원코인이 달러 패권을 교체할 것으로 믿습니다. 원코인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쇼핑몰(딜셰이커)도 열었습니다. 세계 통화가 원코인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회원들끼리 사고 파는 것 말고는 원코인을 현금화할 방법이 없지만, 조만간 거래소에 상장만 하면 모두 건물주가 될 거라고 상상합니다.
실상은 기존 회원이 신규 회원을 가입시킬 때마다 일정 커미션을 주는 방법으로 투자자를 끌어 모았습니다. 전형적인 폰지 사기죠. 이들은 전세계 회원 수가 350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합니다.

코인업 대표, 경찰이 체포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9일 이른바 ‘캐시 강’ 코인업 대표를 체포했습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입니다.
코인업은 지난해 암호화폐 열풍을 타고 생겨났습니다. 세계 통화가 될 월드뱅크코인(WEC)에 투자하면 금방 500%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조만간 주요 거래소에 코인이 상장될 거라고 장담했고요. 사기 업체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강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내걸었습니다(한눈에 봐도 ‘합성’이라는 게 표가 납니다).“이 정도 인맥이 아니고선 이 사업 못한다”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합성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스케줄 맞추기 힘들어 각자 찍은 뒤 합쳐서 그렇다”고 설명합니다. 가짜라면 어떻게 대통령 합성 사진을 마음대로 걸 수 있겠느냐고 반박합니다.
처음엔 미심쩍다가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믿게 됩니다. ‘거마 대학생’을 아는지요. 10여 년 전 다단계 업체의 꼬임에 빠져 대학생들이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에 모여들었던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단계 업체들은 합숙을 통해 이들을 세뇌시켰습니다. 사기가 아니라 괜찮은 사업이라고.
코인업의 운영 방식도 비슷했습니다. 코인이 잘 되려면 공부해야 한다며 투자자를 매일 사업장으로 나오게 했다고 합니다. 반복 학습을 통해 투자자들이 더 강하게 믿게 되면, 그만큼 돈을 더 집어넣습니다. 한 방송 뉴스에 나온 피해자는 투자금액이 12억 원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출처: MBC 캡쳐

출처: MBC 캡쳐


코인 사기,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코인 사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2017년 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가 급등하자 유사 ‘코인’이 봇물을 이뤘습니다. “비트코인 오르는 거 봤지? 하지만 너무 늦었잖아. 대신 우리에겐 OO코인이 있어”가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멘트입니다. 이런 가짜 코인 사기는 인터넷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고령층이 주요 타깃입니다. 금융감독원은 당시 “유사 코인 투자를 앞세운 금융 피라미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이에 앞서 금감원은 원코인 관련자를 유사수신 등 혐의로 수사기관에 통보했습니다.
코인업은 방송 뉴스로 사기 행각이 알려지기 몇 달 전, 이미 코인 커뮤니티에서 화제였습니다. 요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대통령과 찍은 합성사진을 앞세워 어떻게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느냐, 사기인지 뻔히 들여다보이는데도 그런 데 돈을 갖다 바치는 ‘호구’는 누구냐는 등의 조롱이었습니다. 코인 회사 대표 이름이 어떻게 ‘캐시(현금)’냐는 비아냥도 있었고요. 곧, 코인업이 사기 업체인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습니다.

다 알면서 사기꾼 왜 안 잡을까
인터넷 다단계 사기 피해 카페에 가면 “왜 사기꾼놈들 안 잡느냐”는 성토가 이어집니다. 금감원과 마찬가지로 2년 전인 2017년, 해외에서도 원코인에 대한 문제가 불거집니다. 독일 금융감독청(Bafin, 금감원에 해당)은 원코인의 독일 내 영업활동을 전면 중단시켰습니다. 이탈리아 반독점 규제당국(AGCM)은 원코인 이탈리아 법인을 불법 금융 다단계로 규정하고 영업활동을 중지시켰습니다. 헝가리 중앙은행은 “코인을 활용한 폰지사기(금융 피라미드)에 주의하라”는 자료를 내며 원코인을 예로 들었습니다.
각국 대처 방식에 공통점을 찾으셨는지요.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 당국이 아닌 금융감독기관이 칼을 빼 들었습니다. 수사 당국의 개입은 명백한 범죄 혐의가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혐의 입증입니다. 한 달 만에 두 배로 불려주겠다며 돈을 끌어 모았는데, 이 과정에서 ‘투자’ 행위가 일어나면 유사수신이라고 단정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투자금을 안 돌려줘도 사기가 아니라 투자 실패의 결과라고 발을 뺍니다. 또, 일부는 유사 코인을 가지고 물건을 살 수 있다며, 수신이 아니라 교환일 뿐이라고 빠져나갑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태도입니다. 사기 등 범죄는 피해자가 있어야 성립이 가능합니다. 피해자 스스로 피해 사실을 수사 당국에 알려야 사기꾼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자신이 피해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을 감기도 합니다. 금융 다단계의 특성상 새로운 투자자(호구)가 돈을 넣어야 그나마 먼저 넣었던 내 돈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내 돈만 돌려받고 나면 손 털겠다고 다짐하며 사기 행각을 지켜만 봅니다.

바뀐 뇌 구조, 멈추지 않는 행복회로
원코인의 2인자가 체포됐고, 1인자는 수배 중이라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담당 검사는 “(이들은) 완전히 거짓에 기초한 가상화폐 회사를 만들어 투자자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뜯어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정도면 더 이상 원코인을 믿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2017년 5월 금감원의 수사통보 자료를 바탕으로 원코인 기사를 썼을 땐, 정말 많은 항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기사 똑바로 쓰라고. 원코인의 가능성을 무식해서 몰라 본다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전직 방송 기자였다는 분이 취재 똑바로 하라고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전직 ‘기자’가 보냈습니다.
이번엔 미국의, 그것도 검찰이 나섰다는 뉴스입니다. 아무리 열성 지지자라도 원코인 편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드디어 이들도 원코인이 사기라는 걸 인정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다단계 사기 피해자에게 다단계 업체는 종교와도 같습니다. 그 누구의 말도 믿지 않습니다. 오직 회사 측의 말만 믿습니다. 원코인 밴드(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뉴스가 알려진 뒤 ‘이 모든 게 모함이고 사기다’, ‘이번 위기를 잘 넘기면 기축통화로 우뚝 선다’, ‘미국과 전쟁할 수도 있다’ 등의 아무말 대잔치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코인업 피해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인업의 실체를 알리는 방송 심층 뉴스가 나갔는데도 믿지 않습니다. 투자자들, 곧 피해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는 ‘이번 기사는 엄청난 호재거리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좋네요’라거나 ‘아직 피해자 없고 대통령 사진 나왔어도 폐기처분 안 되고…돈도 많이 준다고 제대로 홍보하고 있네요’ 등의 진정한 아무말이 오갑니다.
진심으로 믿으면, 현실은 바꿀 수 없지만 현실을 인지하는 뇌 구조는 바꿀 수 있습니다. 다단계 사기 피해자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습니다.

출처: 금융감독원의 공식 블로그

출처: 금융감독원의 공식 블로그

다단계 사기, 다시는 안 당하려면

다단계 사기의 역사는 유구합니다. 옥장판에서 시작해서 의료기기로, 부동산 개발에서 비상장 주식 투자 등까지,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진화합니다. 요즘엔 단연 암호화폐, 곧 코인이 대세입니다.
하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원금은 보장하고, 터무니없는 고수익을 약속하며,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수록 수익은 불어나지만, 결코 수익금은 고사하고 원금조차 ‘돈(현금)’으로 찾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단계 사기를 당하지 않는 비법이 있을까요. 한 가지 질문을 추천 드립니다. 다단계 사기의 유혹이 손길을 뻗으면, 혼잣말로 물어 보세요. “그렇게 좋으면 너님이 다 하지 왜 나에게 알려주나요?”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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