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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한국의 도시재생, 일본의 지방창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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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2014년은 일본의 저출산과 국토 정책의 일대 분수령이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재집권 2년째였다. 쏘시개는 그해 5월 마스다 히로야 전 총무상의 지방 소멸 보고서였다. 마스다는 기초단체 1799곳 가운데 절반인 896곳을 소멸 가능성 도시로 공표했다. 지방의 20~39세 가임 여성이 대도시로 옮겨가 반감(半減)하는 것이 최대 원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도시권 출산율은 지방보다 낮아 전체 인구는 줄 수밖에 없다는 게 보고서 결론이다. 지방 소멸의 끝은 도쿄 소멸, 일본 소멸이라는 경종이었다.

아베, 지방 소멸 쇼크 후 ‘중앙 총론, 지방 각론’ 재생 전략 #우리도 도시 재생사업 넘어 지방 회생의 마스터플랜 짤 때

보고서의 쇼크는 일본 열도를 강타했다. 두 달 후인 7월 전국 지사회(知事會)는 ‘저출산(少子化) 비상사태 선언’을 했다. 선언은 비장했다. “일본 전체가 쇠퇴로 가는 장대한 시나리오가 생기고 있다”고 했다. “도쿄가 인구 감소의 개미지옥”이라는 발언도 나왔다. 아베는 9월에 총리 직속 내각부에 마을·사람·일 창생(創生) 본부를 설치했다. 일자리가 사람을 부르고 사람이 다시 일을 끌어들이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뜻의 조직이다. 본부장은 자신이 맡았고, 전 각료가 참여했다. 인구와 지방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결의였다. 아베는 같은 달 개각에서 지방 창생 장관을 신설하고 정적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을 앉혔다. 이시바는 지방 창생의 전도사가 됐다. 전국을 돌며 국민운동을 벌였다. 캐치프레이즈는 “지방 창생이 일본 창생”이었다. 11월엔 지방 창생법을 제정했고, 연말엔 지방 창생 장기비전과 5개년 종합전략(2015~19년)을 내놓았다. 유례없는 속도전이었다.

장기 비전과 종합전략은 두루뭉술하지 않았다. 장기 비전은 출산율(현재 1.43) 1.8 향상과 2060년 인구(현재 1억2633만 명) 1억명 확보를 내걸었다. 종합전략은 민간의 핵심 성과지표(KPI)를 도입했다. 연간 10만명의 도쿄 전입 해소, 젊은이 지방 일자리 30만개 창출 등을 제시했다. 지방 창생의 구체적 내용은 망라됐다. 외국 관광객 소비 증대 방안에서 어린이의 농산어촌 체험 강화에 이르기까지. 관광은 지방 창생의 핵이다. 2015년엔 지자체가 장기 비전과 종합전략을 마련했다. 의무화가 아닌데도 99%가 동참했다. 중앙은 총론을, 지방은 각론을 맡았다.

지방 창생은 지금 본격적인 실행 단계다. 중앙은 해마다 약 10조원의 사업비를 편성하고 있다. 별도로 지자체의 지방 창생 선도 사업엔 교부금(연간 전체 1조원)을 준다. 사업 분야는 일자리 창출, 지방 인구 유입, 근로 방식 개혁(청년고용대책), 마을 만들기의 네 개다. 목표는 명확하다. 인구 증가와 지방 재생이다. 2016년 이래 2500건의 크고 작은 사업이 지원받았다.

지방 창생의 다른 주목거리는 압축 도시(compact city)다. 지자체가 도시에 산재한 공공시설과 의료·복지, 상업시설을 한 쪽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인구 감소, 공동화의 지방이 살길은 다운사이징과 압축밖에 없다. 도시의 일부 문제에 대한 대증적 요법이 아닌 공간을 재편하는 대수술 작업이다. 압축 도시에 나선 지자체는 440곳에 이른다. 지방 소멸 쇼크는 지금 일본 열도를 개조하고 있다.

우리의 지방도 일본 못잖다. 마스다 보고서 분석 방식대로라면 20년 후 소멸 가능성 기초단체는 30% 정도다. 하지만 여기에 초점을 맞춘 마스터플랜이나 맞춤형 대책이 없다. 2007년 이래 도시재생 사업을 펴왔지만 지방 외에 광역시·거점 도시의 낙후 지역도 대상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사업이 봇물이다. 지난해 99곳에 이어 올해 100곳을 선정한다. 사업비는 2018~22년 5년간 50조원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목표나 효과 검증은 막연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이 보이지 않는다. ‘과제 선진국’ 일본의 지방 창생 이노베이션은 하나의 반면교사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