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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60년 경 최악의 태양 폭풍, 지금 지구에 불어닥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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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11년 11월 3일 미국 항공우주국은 태양 표면의 거대한 흑점이 활동기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미지를 공개했다. 태양 흑점의 활동이 높아지면 태양폭풍이 발생해 지구 자기장과 전자장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연합뉴스]

2011년 11월 3일 미국 항공우주국은 태양 표면의 거대한 흑점이 활동기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미지를 공개했다. 태양 흑점의 활동이 높아지면 태양폭풍이 발생해 지구 자기장과 전자장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연합뉴스]

2006년 12월, 지구 상공 600㎞에서 태양을 관찰하던 일본의 제22호 과학위성 ‘히노데’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다. 태양 표면에서 거대한 폭풍이 발생한 것이다. 위력은 원자폭탄 100만 개가 동시에 터지는 것보다 100만 배 더 컸다. 당시 폭풍으로 생성된 에너지는 시속 160만㎞의 속도로 우주로 날아갔다. 가장 빠른 것이 전자파, 두 번째로 빠른 것이 방사선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약 100억t에 달하는 물질이 태양 대기인 코로나에서 재차 폭발했다. 이른바 ‘코로나 물질 분출(CME·Coronal Mass Ejection)’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태양면 폭발이 불을 뿜는 총구라면, CME는 실제로 날아가는 탄환에 비유된다. 만약 강력한 CME가 발생하면 지구는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들의 방사선 피폭량이 증가하고, 지구 주위를 도는 인공위성의 기능이 영구히 파괴될 수 있다. 각 가정에 공급되는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영향을 받는다.

최강 태양폭풍 흔적, 그린란드 빙하 아래서 발견 

역사상 가장 강한 태양풍의 흔적이 그린란드 빙하 밑 500m 지점에서 발견됐다. 사진은 그린란드 일루리삿 빙산. [중앙포토]

역사상 가장 강한 태양풍의 흔적이 그린란드 빙하 밑 500m 지점에서 발견됐다. 사진은 그린란드 일루리삿 빙산. [중앙포토]

그렇다면 지구가 겪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태양 폭풍은 언제 발생했을까. 스웨덴 룬드대 연구진이 12일(현지시각)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시기는 약 2500년 전인 기원전(BC) 660년경으로, 연구진이 그린란드 빙하 밑 500m 지점에서, 당시 생성된 방사능 입자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알아낸 것이다. 이 연구는 같은 날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다.

태양 폭풍의 역사를 관측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관찰법을 병행됐다. 태양 폭풍의 흔적을 담고 있는 사물을 분석하는 ‘간접관측’과 지구 자기장 데이터를 분석하는 등 첨단 장비를 이용한 ‘직접관측’이 그것이다. 먼저 연구진은 지구의 ‘기록 보관소’로 불리는 그린란드 빙하에서 원기둥 모양의 코어 2개를 추출해냈다. 얼음 기둥은 지난 10만년 간 형성된 것으로, 지구 대기와 구성 성분의 변화 등 증거를 포함하고 있어 간접 관찰을 위한 중요 자료로 쓰일 수 있다.

빙하 속 베릴륨(Be) 등 방사성 동위원소 발견...1㎠ 당 양성자 약 10억개 쏟아져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빙하는 지구 대기 현상을 그대로 반영해 간접 분석의 증거로 자주 쓰인다. 사진은 그린란드 누크 부근 피요르드. [중앙포토]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빙하는 지구 대기 현상을 그대로 반영해 간접 분석의 증거로 자주 쓰인다. 사진은 그린란드 누크 부근 피요르드. [중앙포토]

코어를 분석한 결과, 연구진은 내부에서 기원전 660년경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베릴륨(Be)·염소(Cl) 등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발견했다. 태양 폭풍으로 방출된 고에너지 입자는 지구 대기 속 원자핵과 충돌하면서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성하는데, 이를 발견한 것이다. 이들 원소는 대기 중에서는 2년이면 사라지지만, 지상에 닿을 경우 고목의 나이테와 얼음에 흔적을 남긴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를 진행한 레이문드 머스켈러 룬드대 교수는 “(당시 발생한) 태양 폭풍은 지난 70년간 직접 관측한 태양 폭풍 중 가장 강한 것보다 최소 10배는 강력한 것”이라며 “기원후 775년과 994년에 발생한 강력한 태양 폭풍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이 폭발로 1㎠ 당 양성자 약 10억개가 대기 중에 쏟아졌다”며 “특히 현대에서 이 같은 규모의 양성자가 분출되면 위성항법장치(GPS)를 비롯한 위성 기반 기술이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태양풍으로 인해 있을 수 있는 영향. [중앙포토]

태양풍으로 인해 있을 수 있는 영향. [중앙포토]

5단계 RSG 근거한 12시간 예보체계, “강화 필요하다”

김록순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 태양우주환경그룹 선임연구원은 “태양 폭풍으로 전하량이 급격히 증가하면, 용도에 맞게 전기의 압력을 조절하는 변압기에 이상이 생겨 전력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다”며 “특히 병원 중환자실을 비롯한 응급시설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태양풍이 지구 이온층을 불안정하게 만들면, 위성을 기반으로 한 라디오·휴대전화 통신이 불가능해지고 장시간 비행하는 항공기 탑승자의 방사선 피폭량이 늘어나는 등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태양 폭풍 대비책을 현행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영국의 경우 1859년 발생한 강력한 태양 폭풍인 ‘캐링턴 이벤트’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비상 대비책을 세우고 있지만, 오늘날은 당시보다 통신장비 의존도가 큰 만큼 더욱 빠른 예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황정아 천문연 책임연구원은 “세계 각국이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우주환경정보(RSG)를 근거로 이른바 ‘12시간 예보체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 같은 태양 폭풍이 발생하면 이를 18시간으로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RSG는 태양폭풍으로 인한 X선과 고에너지입자, 지구 자기장 교란 가능성을 정도에 따라 5단계로 체계화한 것이다.

지구 자기장이 태양의 고에너지 입자를 막아내는 모습. 파란색 부분 중앙이 지구(왼쪽)과 태양 폭발 장면(오른쪽) [미국항공우주국=연합뉴스]

지구 자기장이 태양의 고에너지 입자를 막아내는 모습. 파란색 부분 중앙이 지구(왼쪽)과 태양 폭발 장면(오른쪽) [미국항공우주국=연합뉴스]

김지영 기상청 기상위성센터 연구관은 “한국 역시 NOAA 위성이 보내온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며 “RSG가 3단계를 넘어가면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항공사들이 항로를 우회하게 되며, 기상위성 역시 안전모드에 들어가는 등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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