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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文,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에 국회 아수라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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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전 10시에 시작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고비를 맞았다.

10시 10분쯤 나 원내대표가 문재인 정부를 향해 “20세기에 실패한 사회주의 정책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부활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현실을 두 눈으로 보고도 그 길을 쫓아가고 있다. 정의롭다는 망상에 빠진 좌파정권이 한국 경제를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하자 국회 본회의장 공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는 웅성거림이 나오기 시작했고 한국당 측에선 “잘한다”라는 응원 소리가 나왔다.

10시 15분쯤 나 원내대표의 입에서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은 위헌”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민주당 측에선 “그만합시다” “지금 말이라고 해” “내려와” “이게 무슨 대표 연설이야”라는 고성과 함께 거센 반발이 쏟아졌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은 “들어보세요”라며 맞섰다. 이때 잠시 미소를 지으며 연설을 멈춘 나 원내대표는 다시 발언을 이어갔다. 곧이어 나 원내대표가 “북한의 비핵화는 가짜 비핵화”라고 말하자 민주당 측에선 다시 항의가 쏟아졌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7회 임시회 본회의 나경원 자유한국당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에 항의를 하고 있다. [뉴스1]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7회 임시회 본회의 나경원 자유한국당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에 항의를 하고 있다. [뉴스1]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본회의장 분위기는 10시 20분쯤 나 원내대표가 외교안보라인 교체를 요구하며 “더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는 순간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순간 민주당에선 김태년 정책위의장과 전재수 의원 등 친문 의원들이 일어나 “무슨 소리 하는거냐”는 고함을 쳤고, 일부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 원내대표는 ”외신 보도의 내용“이라고 해명했지만, 소동은 가라앉지 않았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단상으로 이동해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원내대표의 연설을 멈추도록 요청했다. 홍 원내대표가 움직이자 한국당 측에선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가 나와 홍 원내대표를 제지하기 시작했고, 이 순간부터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나 원내대표의 연설이 처음으로 중단됐다.
문 의장의 만류에 홍 원내대표는 돌아가려 했으나 이번에는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단상으로 나오면서 이 의원을 가로막은 한국당 정용기 정책위의장과 언쟁이 벌어졌다.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주당 몇몇 의원들이 나 대표의 발언에 항의하며 본회의장을 나가고 있다.[연합뉴스]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주당 몇몇 의원들이 나 대표의 발언에 항의하며 본회의장을 나가고 있다.[연합뉴스]

10시 25분쯤 문 의장은 나 원내대표에게 “발언을 계속하세요. 안 들리세요? 계속하세요”라고 연설을 재촉했지만, 민주당 의석에선는 “그만해라” “끝내” “들어가”라는 등의 고성이 쏟아져 나 원내대표는 발언을 이어가지 못했다. 한두 차례 연설을 시도하다가 막힌 나 원내대표는 “조용히 하고 좀 들어달라”고 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사과해”라는 말을 합창하며 이를 막았다.

10시 32분쯤 본회의장은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정양석 원내수석, 홍영표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등 3당 원내지도부가 문 의장을 찾아가 각각 항의하기 시작했다. 단상 부근에선 이철희 의원이 다시 “어떻게 (문 대통령을) 수석대변인이라고 부릅니까 이따위 발언을…”이라며 고함을 쳤다.분통을 터트렸다.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이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대표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이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대표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경원 내려가” “사과하세요” 등 야유를 쏟아냈고,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여당 자격이 없어요. 뭐하는 겁니까. 질서를 지키라고요”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전희경 한국당 의원은 “야당의 입을 틀어막냐”고 소리를 질렀고, 장석춘 의원 등 일부 한국당 의원은 민주당 쪽으로 이동해 항의하기 시작했다.

10시 35분쯤 문 의장의 만류에 자리로 들어가던 홍 원내대표는 야당 측에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고, 권성동 한국당 의원은 단상앞으로 내려와 “지금 뭐하는 겁니까”라고 항의했다. 단상에선 홍 원내대표와 권 의원, 이철희 의원 등이 뒤엉켜 난장판이 됐다.

10시 37분쯤 나 원내대표는 “여러분들이 소란스러워서 잘 안 들린 부분부터 읽기 시작하겠다”며 연설을 이어갔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다시 본회의장을 나가기 시작했고, 기동민, 홍익표 의원 등은 일어나서 “사과하세요” “내려오세요”라며 소리를 질렀다. 이채익 의원(한국당)과 표창원(민주당) 의원 등은 의석에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7회 임시회 본회의 나경원 자유한국당 교섭단체 대표연설 발언에 항의를 하며 정양석 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와 몸싸움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7회 임시회 본회의 나경원 자유한국당 교섭단체 대표연설 발언에 항의를 하며 정양석 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와 몸싸움을 하고 있다. [뉴스1]

10시 40분쯤 나 원내대표가 연설을 이어가자 민주당에선 다시 야유가 쏟아졌다. 이에 나 원내대표는 “이 시간은 야당 원내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야당 원내대표 이야기도 듣지 않겠다는 민주당의 독선과 오만”이라며 “제발 제 원고를 듣고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말씀은 정론관에 가서 하라. 제 연설을 마칠 때까지 내려갈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문 의장이 나섰다. 문 의장은 “국회는 이렇게 하는 곳이 아니다. 국회는 민주주의의 본령인데 이건 공멸의 정치다”라며 “품격있게 격조 있게 해야 한다. 참아야 한다.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얘기라도 듣고 그 속에서 타산지석으로 삼는 게 민주주의다. 평가는 국민들이 하는 것”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이때부터 양측의 분위기는 다소 진정됐고 나 원내대표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문 의장이 “내가 볼 땐 (나 원내대표가) 상당한 논란이 될 발언을 했다”고 말한데 대해 “의장님 말씀에는 일부는 동의하지만 역시 민주당 출신 의장님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 뒤 나머지 연설을 이어갔다.

이날 나 원내대표의 연설은 1시간 10여분 동안 이어졌다. 30분 분량으로 준비된 원고였음을 감안하면 40여분이 파행으로 얼룩졌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원내대표 연설에서 이처럼 파행을 겪은 건 처음”이라며 “악화하고 있는 여야 관계를 반증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유성운ㆍ임성빈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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