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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 감수성'이 뭐길래…'꽃뱀'과 '피해자'사이의 '피해자다움'

중앙일보

입력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원들이 2일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 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등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울고법은 피감독자 간음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5년의 관련 기관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뉴스1]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원들이 2일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비서 성폭행' 관련 강제추행 등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울고법은 피감독자 간음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5년의 관련 기관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뉴스1]

"피고인을 징역 3년 6월에 처한다"

지난 2월 1일, 안희정 전 충남 지사의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을 뒤집고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이란 항목에 1심 때와 달라진 2심 재판부의 판단 근거를 상세히 썼다. 이 중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였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사회에서 불거지는 여러 문제에 대해서 성차별적 요소를 찾아내는 민감성을 뜻한다. 법정에서는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는 피해자의 성정, 가해자와의 관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그 진술의 증명력을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관점에서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이 대법원 판결문에 등장한 것은 지난 2018년 4월이다. 2015년 여학생 성희롱 의혹으로 해임된 대학교수 A씨가 "해임 처분은 부당하다"며 교원소청심사위를 상대로 소송에서 1심은 A교수의 행동의 성희롱에 해당한다며 학교 측 해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달랐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그 후에도 교수의 수업을 수강한 점을 볼 때 일반·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희롱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으로 가해자와 종전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며 교수와 학생 간 권력 관계 같은 피해자가 처한 특수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일선 법원에서는 현재까지 60건이 넘는 성폭력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언급됐다.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오해와 불만도 늘고 있다. 무고 사건이 증가하는 가운데 피해자의 진술만 중요시하다 보면 억울한 가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옥주 교수(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성인지 감수성이란 용어가 널리 알려져있지 않다 보니 '순전히 판사의 주관에 따른 판단 아닌가', '증거주의에 반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나온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성인지 감수성은 법적 근거와 맥락을 기반으로 성폭력 사건의 한 부분이 아닌 전체를 유기적으로 판단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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