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유도 선수 신유용(24)씨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로 시작된 검찰 수사가 11일 마무리됐다. 신씨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한 유도부 코치 A씨(35)가 재판에 넘겨져서다.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자신이 지도하던 유도부 제자 신씨를 10대 시절 성폭행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A씨를 구속기소 했다. A씨는 2011년 고창 영선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신씨에게 강제로 입맞춤하고, 성폭행한 혐의(강간 및 강제추행)다.
신씨 무료 변론 이은의 변호사 인터뷰 #檢, 코치 구속 기소…李 "본격적인 싸움 시작" #본인도 성폭력 피해자…퇴사 후 변호사 변신 #"미투 후 유도회·교육청 책임 회피 급급" 지적 #2차 피해 없도록 재판 대응…"신씨도 치유 과정"
수사는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신씨 변론을 맡은 이은의(45)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본격적인 다툼은 이제부터"라고 했다. 이 변호사도 성폭력 피해자다. 삼성전기 재직 중 성희롱을 당했다가 4년간 법정 싸움 끝에 회사를 상대로 승소했다. 퇴사 후 전남대 로스쿨에 입학해 변호사가 됐다. 유튜버 양예원씨도 그가 변호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신씨)는 고교 시절 가해자(A씨)에게 심한 폭행과 성폭력을 당하고도 세차장에서 일하는 어머니가 알면 걱정하실까 봐 피해 사실을 숨겼다"고 했다. 그는 또 "신씨 미투 폭로 이후 유도회와 교육청은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가 보는 신씨 사건의 본질은 뭘까. 다음은 일문일답.
- 코치가 결국 기소됐다. 소감은.
- "다행이다. 이제 본격적인 다툼이 시작됐다는 생각에 긴장되고 걱정이 앞선다."
- 애초 신유용씨가 언론에서 폭로한 내용보다 검찰 수사 결과는 대폭 축소됐는데.
- "검찰이 기소 범위를 축소한 것은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과 달라서가 아니다. 현재 한국에서 법 적용이 갖는 한계와 문제점을 잘 알기에 (검찰과) 함께 의논해 범죄로서 성립이 분명한 것들로 집중했다. 이미 피해가 막대한 상황에서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란 미명 하에 (검찰 조사에서 당시 피해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피해자가 다시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 이 사건의 본질은 뭔가.
- "미성년자 피감독자(피보호자)에 대한 성폭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무지(無知)를 드러낸 사건이다. 자질 없는 사람들에게 보호·감독자를 맡기고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을 (피해를 본) 아이들에게 묻는 무책임한 사회다."=
- 신씨를 변호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 "끝없는 2차 가해다. 성폭력 발생 당시 만 열여섯 살이었던 피해자를 향해 '연인이었다'는 가해자의 막말이 여과 없이 보도되고, 이를 아는 주변인들은 침묵하거나 가해자 편에 섰다. 심지어 피해자에게 상간녀 소송이 제기됐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성폭행하던 시절 (A코치는) 피해자의 다른 코치와 혼인했다."
- 보람도 컸을 것 같다.
- "마음이 아팠다. 황량한 익산역 앞에 서면 피해자가 스무살 무렵 했을 방황과 좌절이 느껴졌다. (※서울에 사무소가 있는 이 변호사는 신씨가 전주지검 군산지청에서 세 차례 고소인 조사를 받을 때마다 동행했다) 피해자는 다섯 살 때 유도를 시작해서 고3 때까지 유도를 하다가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뒀다. 피해자가 (검찰 조사 때) 세차장에서 일하시는 가난한 어머니 얘기를 하며 '가해자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해도 말할 수 없었다'고 진술하며 울 때 나도 함께 울었다. 아직 보람을 이야기하기엔 이르다. 가해자가 처벌받고 (이 사건과) 관련된 어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이제 하나 열렸을 뿐이다. 끝까지 갈 거다."
- 페이스북에서 유도회와 전북교육청 등을 비판했는데.
- "언론 보도 이후 부랴부랴 사과문을 내고 예방 교육을 한다고 전부가 아니다. 전북교육청에 교육 일선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지침을 내리고, 2차 가해와 관련해 어떤 조치를 했냐고 묻고 싶다. 요식적인 대응을 하는 동안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진즉 전해 들었던 주변인들에게 외면받고, 2차 피해를 당했다. 혼자서 변호사를 찾아 헤매고,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언론 앞에 섰다가 그 과정에서 나도 만났다. 그 후에도 2차 가해는 멈추지 않았다. 가해자 측에서는 성폭력 예방 교육에 나선 강사를 붙잡고 '영선중·고 유도부원들이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건 아느냐'며 되레 항의했다고 한다. 그 트라우마는 누구 때문에 생긴 건가. 해당 강사가 이 일에 대해 전북유도회에 알렸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유도회에서는 뭘 했나."
- '미투 운동'을 두고 찬반양론이 뜨겁다. 남녀 간 성 대결로 번지기도 한다.
- "미투는 성폭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권력에 기반을 둔 폭력 문제다. 이를 피해자 눈높이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굉장한 변화다."
- 아직 재판이 남았다. 어떻게 대응할 건가.
- "더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커지지 않게 대응하겠다. 가해자가 하는 주장이 그 자체로 얼마나 모순되고 문제인지를 객관적 증거와 상식에 따라 밝혀 나가겠다. 피해자도 그 과정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바탕으로 삼을 것이다.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사회의 교훈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