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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 밸리, 판교]방시혁은 'BTS' 키웠고, 방준혁은 'IT 꿈나무'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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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래의 언어 코딩 가르치는 '판교야학'  

판교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보평중학교 1학년생인 이강(14)과 이산(14). 두 형제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2년여 전부터 취미를 부친 교육용 언어인 코딩(스크래치)을 이용해 게임을 만든다. 두 학생은 MMORPG(다중접속역할게임) '뮤 오리진'의 개발사인 웹젠이 분당 판교 청소년수련관과 함께 운영하는 ‘청소년 코딩공작소 위드(with) 웹젠’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코딩을 배웠다. 이강 군은 “원래 회사원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코딩을 배운 이후 게임개발자가 되고 싶어졌다”며 “지금도 혼자서 간단한 슈팅게임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넷마블·웹젠·안랩 등 IT 기업들 #청소년·주민에 무료 코딩 교육 #학생이 개발한 게임 출시하기도

웹젠의 방과후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코딩을 놀이로 배우고 있다. [사진 웹젠]

웹젠의 방과후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코딩을 놀이로 배우고 있다. [사진 웹젠]

판교 테크노밸리엔 배움의 기회가 넘쳐난다. 이곳에 터 잡은 정보기술(IT)기업들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무료 강좌를 열기 때문이다. 지역 내 무료 강좌는 IT기업이 장기로 삼는 첨단 기술과 소프트웨어, 특히 미래의 언어로 불리는 코딩 관련 프로그램이 많다. 개화기 지식인들이 야학을 열어 학생들에게 글자를 가르쳤던 것처럼 IT기업들이 미래의 언어인 코딩을 가르치는 현대판 ‘판교 야학’인 셈이다.

교육도 밥도 모두 공짜 넷마블 무료 코딩학교 

“젊은 세대에게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가장 큰 원동력은 꿈이라고 생각합니다.…(중략)…현대 사회에는 꿈꾸는 청춘이 부족합니다. 희망직업을 묻는 질문에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공무원이라고 답할 정도로 자신의 이상이나 적성보다는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시대입니다. 어떤 대학을 나와야, 어떤 학원을 다녀야, 어떤 자격증을 취득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지식과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본인이 절실하게 이루고 싶은 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이 게임아카데미 전시회 도록에 남긴 인사말 중 일부다. 넷마블은 2016년부터 본사가 있는 서울 구로동 디지털 밸리에 게임아카데미를 개설해 게임개발자를 꿈꾸는 중고교 학생들에게 게임개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개발 공간과 필요한 장비를 제공하고 아카데미에 온 날은 밥도 주지만 전 과정을 무료로 운영한다. 대신 선발 절차가 까다롭다. 서류전형에서부터 면접, 실기시험도 본다. 학교 성적을 보지는 않는다. 지난해 120명 모집에 200명이 지원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왼쪽)과 방시혁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손잡았다. 방 의장의 넷마블은 4일 빅히트에 2014억원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넷마블은 이번 투자로 빅히트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사진 중앙포토·빅히트]

방준혁 넷마블 의장(왼쪽)과 방시혁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손잡았다. 방 의장의 넷마블은 4일 빅히트에 2014억원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넷마블은 이번 투자로 빅히트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사진 중앙포토·빅히트]

선발된 청소년들은 8개월간 코딩 등을 배우며 게임기획에서부터 그래픽 디자인, 프로그래밍까지 직접 경험해본다. 학생들이 언제 와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강사들이 아카데미에 상주하고, 넷마블 게임개발자들이 수시로 특강을 열어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 수료한 학생들이 학교 졸업 후 넷마블에 지원하면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개발한 게임 중 완성도가 높은 게임은 구글플레이를 통해 정식 출시한다. 지금까지 ‘친구들 날아욧!’ ‘런어웨이(Runaway -the war)’ 등 2종의 게임이 출시됐다. 이나영 넷마블 문화재단 사무국장은 “국어 수학 영어는 배울 데가 많지만 게임 개발은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며 “방준혁 의장이 학생들이 개발한 게임 전시회 이름인 ‘미래의 꿈 게임에 담다’를 직접 지을 정도로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넷마블은 이달 중순부터 올해 신입생을 뽑는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친척관계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가 방탄소년단을 키우는 것처럼 방준혁 의장은 게임 개발자를 키우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넷마블 게임아카데미 학생들이 개발한 게임 인어왕자 화면 [사진 넷마블]

넷마블 게임아카데미 학생들이 개발한 게임 인어왕자 화면 [사진 넷마블]

코딩 가르치는 선생님도 양성

코딩강사를 양성하는 무료교육 프로그램 안랩샘에 참가한 수강생들이 경기도 성남시 판교 안랩사옥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안랩]

코딩강사를 양성하는 무료교육 프로그램 안랩샘에 참가한 수강생들이 경기도 성남시 판교 안랩사옥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 안랩]

안랩은 코딩 강사를 양성하는 무료교육 ‘안랩샘’을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한 차례씩 수강생을 모집하며 한 번에 10주씩 강의를 한다. 스크래치를 포함해 파이썬, 앱인벤터, 아두이노 등 4가지 프로그래밍 언어가 기본 이수 과목이다. 40시간의 총 교육과정을 수료한 이들에게는 안랩에 코딩강의를 요청하는 기업이나 초중고교에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지난달 말 모집을 마감한 안랩샘 8기 과정에는 블록체인 전문강사 양성과정도 시범적으로 도입됐다. 강의 장소는 판교 안랩사옥과 부산 신한양직업전문학교로 모집인원은 총 305명이었다. 지난 7기까지 모두 995명이 이곳에서 수업을 들었다. 안랩샘에서 강의하는 강사도 안랩샘 수료생 중에서 선발한다. 안랩 관계자는 “일상생활에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 코딩 강사 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안랩이 전문성을 가진 분야에서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무료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게임 속 상황 해결하는 코딩대회

넥슨은 2016년부터 청소년 대상 코딩대회 ‘NYPC’를 개최하고 있다. 일반 코딩대회와 다르게 넥슨이 서비스하는 인기게임의 콘텐트를 활용하거나, 실제 게임개발 또는 서비스 상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가 많은 점이 특징이다. 예컨대 넥슨의 온라인게임 ‘마비노기’ 내 캠프파이어 콘텐트를 소재로 사용자들이 설치하는 캠프파이어의 간격을 적정하게 유지하는 프로그래밍을 하라거나 모바일게임 ‘야생의 땅: 듀랑고’에서 ‘돌도끼’를 제작하는 과정을 프로그램으로 작성하는 등의 문제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넥슨의 청소년 대상 코딩대회 NYPC 본선에서 참가자들이 코딩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 넥슨]

지난해 10월에 열린 넥슨의 청소년 대상 코딩대회 NYPC 본선에서 참가자들이 코딩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 넥슨]

문제가 재밌다 보니 참가자도 많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3회 NYPC에는 5400여명이 참가했다. 대상 수상자인 경기과학고 윤교준 군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및 장학금 500만 원과 노트북을 받았다. 윤군은 “NYPC는 정답보다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포인트 경쟁이라는 독특한 규칙이 있고 다른 대회에서 보기 힘든 참신한 문제들이 많아 흥미롭다”고 말했다. 코딩대회와 함께 넥슨의 전문가들이 개발 경험 등을 공유하는 ‘NYPC 토크콘서트’도 연다. 김정욱 넥슨재단 이사장은 “청소년들이 코딩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게 관련 기술 분야에서 축적해온 오랜 노하우를 활용해 지속해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교=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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