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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⑮"명품백 있지 않냐고? 성매수 남성 주는 돈 절반도 못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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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 1962년 생겨난 이곳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업소 철거가 진행되는 가운데 성매매 업소 여성 등 40여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벼랑 끝에 선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그 목소리를 들어본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시리즈가 나가는 동안 여성들을 비난하는 독자의 댓글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번 돈은 다 뭐했길래 갈 데가 없나. 번 돈으로 집 구해서 살면 되겠구먼” “수년 동안 방 한 칸 마련할 돈도 못 모으고 뭐했냐” “저렇게 말해도 명품 백은 하나씩 다 있지?”라는 내용이다.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았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20%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세금을 열심히 내면서 살아가는 시민들 입장에선 화가 날 만도 하다.

그러나 옐로하우스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들은 나름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다.

이들은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앞에서 이주 대책 요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놀라운 주장을 했다. 그들이 성매수 남성들로부터 받는 돈의 절반 이상을 업주(포주)에게 빼앗긴다는 내용이다.

여성들은 “포주가 성매매 여성의 수입 60% 이상을 갈취해 호의호식하며 건물주가 되더니 우리를 그냥 내쫓으려 한다”고 호소했다. 탈세 역시 성매매 여성이 아니라 업주가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말대로 수입의 50% 이상을 내주고 있는 것일까.

기자회견 다음 날 옐로하우스에서 만난 여성들은 보다 상세히 설명했다. 여러 여성의 얘기는 비슷했다. 일단 성매수 남성에게서 받는 돈을 업주와 5대 5로 나눈다고 한다. 여기에 방세, 생필품 구입비, 업주 관련 경조사비 등을 더해 수입의 70% 정도를 업주가 가져간다고 주장했다.

옐로하우스 이외 집창촌의 실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관행적으로 업주가 ‘화대’의 절반 이상을 갖는다고 증언했다. 어떤 곳은 업주가 60%를 뗀다. 여성 B씨(53)는 “우리끼리는 ‘차 떼고 포 떼는 사람’이라 포주라 부른다고 할 정도”라며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낮 시간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집창촌 '옐로하우스'의 업소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바로 옆 건물에서 누가 일하는지도 모르던 여성들은 도시 개발과 철거라는 갑작스런 변화 앞에서 함께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낮 시간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집창촌 '옐로하우스'의 업소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바로 옆 건물에서 누가 일하는지도 모르던 여성들은 도시 개발과 철거라는 갑작스런 변화 앞에서 함께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성매매 여성 옥죄는 족쇄, 선불금 

집창촌에는 목돈이 급하게 필요하거나 다방·술집 등에서 쌓인 빚을 갚지 못해 온 여성이 많다. 이들 대부분이 업주에게 목돈을 선불금으로 받아 빚을 지게 된다. 이 선불금은 업주가 여성을 통제하는 족쇄가 된다.

B씨는 “예전엔 업주가 월 이자 5%를 받으면서 불필요한 돈을 자꾸 쓰라고 해 빚이 금방 늘었다”며 “옷값, 수십만원의 방세, 수백만원의 가구비, 부르는 게 값인 굿 비용, 현관 이모(호객)의 알선비를 댈 뿐 아니라 업주 생일과 가족 여행, 업주 외숙모 경조사에까지 돈을 내야 했다”고 말했다.

화장품 같은 생필품은 일반적으로 방문 판매를 이용한다. 시중 가격보다 몇 배나 비쌌다. 지적 장애가 있는 여성들에겐 매달 정산할 때 ‘0’을 하나 뗀 돈을 주는 경우도 목격했다.

업소에서 강요하는 '벌금' 역시 만만치 않다. 여성 D씨(36)는 “몇 년 전만 해도 하루 결근하면 그날 벌이가 가장 좋은 아가씨의 수입 만큼 벌금을 물어야 했다”며 “출근 때 10분만 늦어도 벌금 10만원, 2시간 늦으면 일을 못 하게 하고 벌금 50만~100만원을 빚으로 올렸다”고 말했다.

하루 정해진 할당을 채우지 못하면 5대 5가 아니라 10을 모두 업주가 가져가는 곳도 있다. 손님이 따로 주는 팁도 업주가 가져간다. 택시 기사가 손님을 태우고 오면 성매매 여성이 1만~3만원을 사례하도록 한 곳도 있다. 손님과 마신 술값, 손님이 행패를 부려 환불한 화대 등 웬만한 돈은 모두 여성들 수입에서 차감된다고 했다.

여성 C씨(37)는 “업주들이 도배며, 가구며 하다못해 비타민 한 통까지도 본인이 해주는 것처럼 얘기했다가 정산 때 보면 다 빚으로 올라가 있다”고 토로했다. 15년 전쯤 집에 보낼 200만원을 못 구해 이곳에 온 여성 E씨(40)는 그 이후 선불금을 쓴 적이 없는데도 8년 동안 7000만원가량 빚을 졌다. 일을 계속하는데도 빚은 계속 늘어났다.

성매매 여성 등으로 구성된 인천 집창촌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주대책 및 보상비 요구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성매매 여성 등으로 구성된 인천 집창촌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주대책 및 보상비 요구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성매매 특별법 이후 더 교묘해져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선불금·벌금제 등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D씨는 “법에서 성매매 행위를 위한 선불금이 무효라고 명시하자 업주가 여성에게 직접 돈을 주지 않고 사채업자를 연결해 개인 빚으로 만든다. 업주가 사채업자 명의를 빌려 직접 돈을 대출해주고 높은 이자를 챙기기도 한다”며 “이자를 감당 못 해 여러 곳에 사채를 돌려쓴 여성들은 한 달 내내 일해도 마이너스 수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을 빚더미로 몰아넣은 건 업주만이 아니었다. 몇년 전에는 한 저축은행에서 ‘유흥업소 특화 대출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업주가 업소 여성들에게 선불금 지급 서류를 받아 담보로 내면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업주들은 차량·전세보증금·휴대전화·통장 등을 이용해 다양한 약탈적 대출을 일삼는다. 여성이 업소를 떠나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돈을 갚으라며 민·형사 고소를 하는 사례도 있다.

성매매 여성들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속칭 ‘기둥서방’ 역시 이들을 궁지로 모는 경우가 있다. B씨의 말이다. “서울 청량리나 경기도 평택 집창촌에서 수입이 좋은 아가씨들에게 연예인처럼 잘 생긴 대학 졸업자 남성을 소개해주는데, 심적으로 늘 위축된 여성들이 외로움을 많이 타다 보니 금방 정을 줘요. 이 남성들이 매월 수입의 25%를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 수시로 수천만원씩 빚을 달아놓기도 해요.”

맞보증이나 곗돈 역시 여성들의 발목을 잡았다. 맞보증은 선불금이나 사채를 쓸 때 다른 여성을 보증인으로 내세우면서 서로 보증을 서는 방식이다. E씨는 맞보증을 선 여성이 연락을 끊고 잠적해 돈을 대신 갚아야 했다. 빚이 있거나 붙잡아 두고 싶은 여성을 수천만원 규모의 계에 들게 해 곗돈을 먼저 타게 해주고 남은 곗돈을 계속 갚게 하기도 한다.

업소에서 일하는 이모나 삼촌이 이자를 높게 쳐준다면서 돈을 빌려 간 뒤 갚지 않거나 소액씩 갚아 옭아매는 사례도 있다. 여성들은 “웬만큼 독하지 않고서는 돈을 모아 나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기도 지역에서 10년 넘게 성매매를 하다 도망쳐 나와 공장에서 일한다는 한 30대 여성은 “그곳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돈을 못 모으기는 마찬가지”라며 “다른 일을 하다 돈이 필요해 돌아가는 여성들은 선불금을 받고 또 악순환에 빠진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6일 옐로하우스 성매매 업소 철거가 시작됐다. [사진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제공]

지난 2월 16일 옐로하우스 성매매 업소 철거가 시작됐다. [사진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제공]

업주 “여성들의 억지일 뿐” 

옐로하우스의 성매매 업주들은 중년 여성이 많다. 성매매나 알선을 하다 업주가 된 이들도 있다. 대부분 남편이나 애인과 함께 운영한다. 남성 업주가 많은 집창촌도 있다. 이들 업주가 모두 여성을 착취하는 것은 아니다. 한 여성은 급전이 필요할 때 선뜻 내주는 사람이 업주뿐이었다며 고마워했다.

2000년대 초 5년 정도 성매매 업소를 운영한 어느 전직 업주는 “여성들에게 목돈을 한 번에 갚으라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벌금, 경조사비, 생활비 등 소액으로 나눠서 자주 받는 것”이라며 “이런 행태만 보면 업주가 갑인 것 같지만 수입이 좋은 여성에게는 명품 선물을 안기고, 똑똑한 여성들에게는 쉽게 요구를 못 하는 등 오히려 눈치를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를 마련하거나 부모에게 논밭을 사주는 여성도 봤지만 그 정도로 돈을 모으는 여성은 100명 가운데 1~2명뿐”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지역 한 성매매 업소 업주 역시 “돈을 모으는 여성은 극히 드물다”고 했지만 그는 “착취보다는 여성들의 사치가 심한 탓”이라고 반박했다.

"부모에 논밭 사주는 여성도 있어"

여성인권 지원상담소 느티나무의 손정아 소장은 기고문 ‘성매매 여성의 탈성매매를 막는 경제적 족쇄(2016)’에서 “사채업자의 협박에 전화번호를 바꾸고 도망치기를 거듭하다 20대 초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거둔 여성, 계산하기조차 어렵게 얽혀버린 빚에 눌린 채 이자 한 푼이라도 찍으려고 오늘도 출근하는 여성, 독촉 심한 빚쟁이의 이자라도 돌려 막아보려 ‘조금 더 착한 사채업자’를 찾는 여성 등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성매매 여성이 자신의 몸으로 돈을 버는 것 같이 보이지만 돈은 많은 주변인의 이익으로 흘러 들어가고 정작 여성은 가난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며 “업주와 사채업자는 성매매 여성이라는 낙인을 이용해 돈을 빌려줄 때 채권자 인적사항, 이자 조건 등이 적혀있지 않은 빈 차용증을 제시하거나 온갖 불법 추심 행위로 여성들을 압박한다”고 실태를 전했다.

성매매 피해 지원상담소 이룸에 따르면 2016, 2017년 성매매 여성 상담 결과 빚 문제 상담 건수는 각각 465건(전체 상담 건수의 15%)·282건(11%)이다. 법률·의료건강과 함께 가장 많이 상담하는 문제 중 하나다. 법률 상담의 일부는 빚 관련 문제였다.

이룸은 상담 보고서에서 “업주 혹은 한 명의 일수업자에게 큰 액수를 빌리지 않고 다수의 대부업자에게 소액대출을 받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관련 법적 지원이 늘었다”며 “채권자의 개인정보와 빚 액수가 부정확해 선불금 규명과 추심에 따른 고소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손 소장은 기고문에서 “성매매 여성이 업주를 고소해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여성을 피의자로 보는 경우가 빈번하다. 여전히 감금과 폭행을 당해야 피해자라고 인식하고 자발과 강제의 기준으로 성매매 여성을 구분하려 하는 한계 속에서 법적 지원이 어렵다”며 “여성의 안전이 보장되는 가운데 다른 대안을 찾아 나갈 수 있게 적극적인 사회적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ins.com

<1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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